북한 권력의 상징 바위 글자들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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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치마바위에 새겨진 ‘천출명장 김정일 장군’ 문구.
금강산 치마바위에 새겨진 ‘천출명장 김정일 장군’ 문구.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서는 바위에 글자를 새기는 일이 아주 중요한 일이 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금강산에만 80여 곳에서 4,500자가 넘는다는 것이 북한의 발표 / 북한에서는 천연바위에 글을 새기는 것을 수령의 위대성과 업적을 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한 의의 있는 사업으로 평가하고 오늘까지도 장려하고 있지만, 바깥에서 볼 때에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일 뿐.

한국 언론은 2012년 금강산의 바위 소식을 전한 바 있습니다. 2012년 4월 북한이 박연 폭포 주변 바위에 “영원한 우리 수령 김일성 동지”라는 글귀를 새겼다는 내용입니다. 이 글귀는 총길이는 37m, 글자 개당 높이는 5m, 가로2.9m, 깊이 0.45m이다. 마지막 글자 ‘지’의 모음 ‘ㅣ’에 사람 한 명쯤은 쏙 파묻힐 수 있을 크기입니다. 북한은 경치가 뛰어나거나 유동인구가 많은 곳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조선아 자랑하자 5천 년 민족사에 가장 위대한 김일성 동지를 수령으로 모시었던 영광을”과 같은 문구를 새겨 넣는 글발 사업 지난 1970년부터 진행해왔으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은 90년대 들어 이른바 ‘노동당시대의 강원팔경’이라는 것을 새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찬미한 관동팔경(關東八景)을 연상케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강원팔경’에는 ‘명승에 새겨진 만년대계의 글발’이라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북한 전역의 명승지 천연바위에 새긴 갖가지 찬양구호 가운데 강원지역의 명산에 새긴 구호바위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8대 명승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체제선전의 차원을 넘어 이를 예술적•미적 차원까지 비약시키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남한에도 등반하다 보면 바위 글 새겨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북한에 새겨진 글귀와는 다릅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2014년 이런 기사도 있습니다. 낙화암 바위글씨에 붉은 페인트 ‘덧칠’ 제목의 기사인데요. 백제설화서린 부여 백마강변 자온대 조룡대 등 흉물로 변해, 유람선 업자가 글씨 잘 보이게 하려고 했다는 기사 내용입니다. 남한에서는 자연 훼손행위는 주민들이 직접 고발해 법에 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북한 권력의 상징 바위 글자’ 에 대해 알아봅니다.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은 자신의 서울문화 평양문화 통일문화 책 내용 중 산천각자(山川刻字) 소제목의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남쪽에서 간 금강산 탐승객들은 구룡각 건너편 구룡폭포 쪽에 있는 김일성 부자에 관한 자연 바위 글발들을보게 된다. 무심히 보려 하겠지만, 그래도 잔상으로는 남을 수 있다. 북한 당국은 금강산에 널려 있는 이른바 자연바위글발들을 남쪽 관광객들에게 보인다는 것도 하나의 성과로 계산했을지 모른다. 결코, 주된 성과는 아니겠지만, 부수적인 성과로 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럼 북한의 바위글자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인지 임채욱 선생의 설명입니다.

임채욱 선생: 바위에 글자를 새기는 것을 옛사람들은 암석 각자, 또는 산천 각자라고 했지요. 남한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북한에서는 바위에 글자를 새기는 일이 아주 중요한 일이 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금강산에만 80여 곳에서 4,500자가 넘는다는 것이 북한의 발표였지요. 다음은 백두산입니다. / 백두산에는 김정일 친필로 1992년 2월에 새긴 ‘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이 유난히 눈길을 끕니다. 다음은 묘향산입니다. / 묘향산에도 김일성을 추모하려는 듯이 금강산에 있는 글발과 똑같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1994. 7. 8. 새김”이 있고 김정일의 친필로 “묘향산은 천하 절승입니다.”라는 글발 외에 전문 석공이 세긴 “조선의 영광 민족의 자랑 김정일” 같은 찬양 글발도 곳곳에서 보입니다. 칠보산 / 칠보산에는 ‘김정일 장군의 노래’ 가사가 새겨진 글발 바위가 있지요. 김일성, 김정일 어록만 있는가? / 그렇지는 않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어록뿐 아니라 구호도 있고 노래 가사도 있습니다. 금강산에서는 ‘사상도 기술도 문화도 주체의 요구대로’ 같은 구호도 있고 또 ‘김일성 장군의 노래’도 새겨져 있습니다.

금강산이 정치적으로 훼손된 것에 대한 임채욱 선생의 지적입니다.

임채욱 선생: 지금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있습니다만 남한 사람들이 금강산을 찾았을 때 옛사람들이 새긴 바위글자도 더러 보았지만, 금강산을 찾은 북한 통치자가 새긴 것들도 보게 되었지요. 외금강 온정리에서 옥류동으로 향하다가 눈에 부닥친 커다란 너럭바위에 한 자 크기가 2m가 되는 ‘금강산 김일성’이란 바위글자를 본 남한의 한 시인은 “금강산은 누구의 금강산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란 것입니다. 이건 분명히 금강산이 정치적으로 훼손된 것을 보인 현장이지요.

자유아시아방송의 칼럼니스트 탈북자 출신 김현아 교수는 북한이 천연바위에 글을 새기는 것과 관련해 외부 세계가 보는 견해입니다.

김현아 교수: 북한에서는 천연바위에 글을 새기는 것을 수령의 위대성과 업적을 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한 의의 있는 사업으로 평가하고 오늘까지도 장려하고 있지만, 바깥에서 볼 때에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일 뿐입니다.

김현아 교수는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설명합니다.

김현아 교수: 금강산을 관광한 남한의 한 청년은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붉은 글씨로 새긴 바위를 보고 “저 바위를 직접 보았을 때, 난 바위가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글자가 새겨진 곳 주변의 하얀 부분이 눈물 자국으로, 붉은 글씨가 핏방울처럼 보이는 정말 고약한 낙서다. 위의 노래대로 표현한다면 그야말로 ‘피어린 자욱’이다”라는 글을 인터네트에 올렸습니다. 또한 한 주민은 “저렇게 굵고 깊게 바위에다 선명하게, 자연유산인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또 다른 주민은 “북한의 산들은 바위 글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정영 기자는 바위에 글을 세기다 죽어나가는 사람도 많다고 말합니다.

정영 기자: 이게 깊이가 사람 어른 키보다 더 깊고요. 그리고 그걸 또 글자 한 개 길이가 뭐 6미터에서 어떤 것을 10미터까지 너무 크거든요. 그리고 어떤 지방에서는 음각이 있고 양각이 있데요. 그런데 음각으로 하면 눈이 쌓이면 그게 메워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양각으로 새기는데 글자가 도드라지도록 새기거든요. 그래서 그걸 새기느라 석공들이 아슬아슬한 절벽에 밧줄을 타고 내려가서 글자를 새기다가 죽은 사람도 많은데 이런 것들은 앞으로 통일되고 한반도 세세연년 이어가면서 이거 어떻게 처리해야 되느냐 그런 문제도 상당히 고민해야 할 문제인데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하신 말씀은 어떻게 하겠어요. 고강도 시멘트로 메워버리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이야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임채욱 선생은 우리 옛사람들이 바위에 글씨를 새긴 암석 각자에 대해 설명합니다.

임채욱 선생: 우리 조상들은 바위에 글자를 새기는 것을 좋아했던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말이 나온 금강산만 보더라도 옥류동 계곡 바위에는 글씨 잘 쓰기로 유명했던 양사언의 글씨가 많이 보이지요.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구룡폭포 왼쪽 큰 바위에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크게 새긴 ‘彌勒佛’(미륵불)이란 한문글자이죠. 그런데 이 글자를 몰랐던 남쪽 관광객 한 사람이 이 글자가 무슨 글자냐고 물었다가 북한 관계자에게 큰 곤욕을 치르게도 된 일도 있었지요. 양사언뿐이 아니고 많은 옛 선비나 고을 수령들은 바위에 자기 이름 석 자를 새기는 일을 좋아했는지 곳곳에 이름들이 눈에 띄지요. 금강산뿐이겠습니까? 묘향산, 수양산, 삼각산 등 우리나라 온 산천에 있는 바위란 바위에는 옛사람들의 새겨진 글자를 보게 됩니다.

임채욱 선생은 우리의 산천을 있는 그대로 지키지 못함을 한탄하는 조선조의 문인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임채욱 선생: 이런 짓을 좋게 보지 않던 사람들이 남긴 글들도 많아서 조선조 문인 이상수(1820~1892)는 “금강산에 갔더니 바위에 이름과 시문들을 하도 많이 새겨놔서 장안사 입구에서부터 명경대를 거쳐 만폭동에 이르기까지 빈틈없이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나에게 허락기회를 준다면 쓸 만한 것만 남겨 두고 어지간한 것은 모두 도끼로 찍어 없애고 묵으로 뭉갠 후 찬물로 사흘간 씻어 없애버리겠다”고 말했지요. 이어서 속된 선비가 명산대천을 더럽히는데도 법이 이를 금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있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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