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화가 변월룡 씨 이야기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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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위 주최로 지난 3월 11일 국회 본청 문화샛길에서 열리는 '국회 남북미술전' 개막식.
문화체육관광위 주최로 지난 3월 11일 국회 본청 문화샛길에서 열리는 '국회 남북미술전' 개막식.
사진-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태어난 곳은 러시아 연해주 땅이라고 알려져 있고 부모는 러시아 땅으로 이주한 농부이거나 노동자였겠지요.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주목 받았고 가난했지만 그림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당시 소련의 최고 미술학교인 레닌그라드 미술아카데미에 합격합니다.

요즘 한국의 화랑이나 미술관 전시장에 북한 미술작품들이 걸려 있다고 하지요? 지난달에는 서울에서 북한의 화가 변월룡 작품이 관심을 끌면서 전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변월룡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네, 그런데 변월룡이란 화가는 북한 화가가 아닙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러시아 태생의 고려인 화가지요. 1년 4개월 정도 북한에서 거주하면서 북한 미술계를 지도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국적을 북한으로 바꾸지 않는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쫓겨났지요. 말하자면 숙청된 것입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화가라니까 본래 북한 화가는 아니군요. 그럼 남쪽에서도 그 존재를 알 수 없었겠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월북을 한 화가도 아니고 하니까 알려지지 않지요. 한국에서 변월룡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한국의 한 미술평론가가 1994년에 러시아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그 존재를 추적했기 때문이지요. 그 미술평론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이란 책을 냅니다. 그래서 남쪽에서도 알려지게 되는데, 지금은 그를 아는 사람이 북한보다는 한국에서 더 많겠지요. 북쪽은 그를 버렸고 남쪽에서는 몰랐던 화가지만 그의 존재는 이제 남쪽에서만은 뚜렷해 보입니다.

천재화가라고 소개하는데 좀 더 소개한다면?

임채욱 선생: 변월룡은 1916년생이고 1990년에 타계합니다. 1916년이면 우리가 잘 아는 화가 이중섭과 같은 해에 태어납니다. 태어난 곳은 러시아 연해주 땅이라고 알려져 있고 부모는 러시아 땅으로 이주한 농부이거나 노동자였겠지요.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주목받았고 가난했지만 그림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당시 소련의 최고 미술학교인 레닌그라드 미술아카데미에 합격합니다. 그리고 11년 뒤 그의 나이 35세 때 미술학 박사가 됩니다. 그때가 1951년인데 곧 미술아카데미 교수로도 됩니다만 2년 뒤인 1953년 4월 소련과 북한의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북한으로 가게 됩니다. 아마도 자기가 원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북한에서 평양미술대학 고문 겸 학장으로 추대돼서 과목들을 정하고 교재를 개발하는 한편 교수들 수준을 높이려고 열성적으로 지도하면서 대학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고 합니다.

북한 미술대학의 기틀을 다지고 닦은 그런 사람이 왜 숙청됩니까?

임채욱 선생: 그가 병 치료차 러시아로 간 뒤 북한 국적으로 바꾸라는 북한당국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그러자 그를 다시는 북한 땅을 못 밟게 합니다. 그자신은 북한 땅을 다시 밟고 싶어 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그의 자취가 남은 게 없습니다. 미술관련 자료나 기록으로 남은 게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어떤 사람이 정치적으로 숙청되면 그의 흔적은 깡그리 사라집니다. 변월룡을 두고 북한에서는 민족반역자로 보는지 2005년 남쪽에서 변월룡 작품전시회를 연다니까 민족반역자 전시회를 열지 말라고 압력을 가한 일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못 열었던 모양입니다.

변월룡이 북한 미술계에 준 영향이나 가르침은 어떤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그는 서양미술의 구상주의를 옳게 공부한 화가여서 이것을 북한에 가르쳐 준 것입니다. 북한 미술은 공산주의 미술사조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막 들어오던 때인데 변월룡은 이걸 확실하게 가르쳐줬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인물화에 능해서 많은 인물그림을 남겼는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소설 <닥터 지바코> 작가죠. 이 작가 등 소련 예술가 인물화를 남겼고 레닌과 스탈린 같은 정치인 인물화도 남겼다고 합니다. 북한에 있을 때도 인물화를 그렸는데 유명한 무용가 최승희, 소설가 홍명희, 시인 한설야, 미술가 김용준 등의 인물화를 남겼다고 합니다.

변월룡의 그림이 서울에서 전시되는 것이 남북 미술교류라고는 볼 수 없지만 앞으로 남북한 화가들의 교류는 전망이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변월룡의 그림전시는 한국에서 3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미술평론가가 유족을 만나서 성사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서울에서의 전시는 아주 큰 관심을 끌어 매일 많은 관람객이 그간 알지 못했던 우리 핏줄의 러시아 화가를 만났습니다. 북쪽에서는 거부당하고 있지만 남쪽에서는 그의 발길을 반기고 그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러시아 이름 ‘뺀 봐를렌’이란 화가지만 그의 그림에서는 우리나라 정서가 짙게 나타납니다. 그림의 서명도 한글로 남겼다니까 평생을 아버지의 나라 조선을 그리워한 게 당연합니다. 그런 그가 남북미술교류의 디딤돌은 못되더라도 징검다리라도 되면 좋으련만 ... 그럴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요?

북한 화가의 그림은 한국에서 전시되는 일이 종종 있는 걸로 압니다.

임채욱 선생: 1990년대부터 북한 미술가의 그림이나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북한 미술작품을 가지고 있는 해외 수집가들이 대여해 준 것으로 했지만 어떤 경우 북한에서 직접 들여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작년에 남북한 간 정상들이 만나면서 미술교류가 조금 더 활발해 져서인지 9월에 열린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만수대 창작사에서 제작한 대형그림들을 들여와서 북한미술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교류전시회지 북한 미술작품들을 한국 전시장에 거는 것 밖에는 한국 미술가 작품이 북한에서 전시되는 기회는 없었습니다.

북한 미술작품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색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들일 수 있을 텐데 그래도 남북 교류를 통해 접근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게 무의미 하지는 않겠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 미술에서 초기부터 공산권의 예술작품 창작방법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받아들여 진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때는 조선그림을 민족그림으로 받아들이되 수묵화 그림을 민족전통이라 했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부터 수묵화가 아니라 채색그림을 우리 그림의 형식으로 해야 되겠다고 말합니다. 그 이후로는 주체사실주의가 북한 미술의 전통이 돼서 주체사실주의라는 이념성 틀 속에 갇히는 작품이 양산됩니다. 그러니 이런 그림에서는 체제우월성을 강조하는 의도가 눈에 띄게 됩니다. 가령 고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작업장의 영웅을 그린다든가, 수령의 명령을 따라 덤벼드는 작업돌격대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지요. 이런 작품을 교류라는 이름으로 들여와서 전시할 수는 없다보니 미술교류에서 언제나 제한성이 따랐지요 그래도 교류를 하는 기회라도 가져야 북한 주체미술의 미학적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는 것일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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