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무용교류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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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달 19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 공연에서 무용수들이 빨간 색 천을 들고 공연을 펼치는 모습.
사진은 지난달 19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 공연에서 무용수들이 빨간 색 천을 들고 공연을 펼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가을입니다. 스포츠 활동도 하기 좋거니와 예술활동도 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오늘은 남북한 무용교류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네. 추분이 지났으니 정녕 가을은 오는가 싶습니다. ‘향기롭다 가을바람 몸에 스치네’ 가을 노래의 한 구절이 읊조려지기도 합니다. ‘판문점 선언’ 이후 남쪽 문화예술 각 분야도 남북한 교류를 의식한 준비자세를 갖추려고 하겠지요. 무용분야도 마찬가지고요. 무용계는 ‘통일 춤’이란 이름의 춤을 출 날을 기다릴 것 같습니다.

무용은 공연예술의 한 분야인데 공연교류는 지난번 남쪽 공연단이 평양에서 <봄이 온다>를 공연했고 얼마 안 있어 북한 예술단이 서울에서 <가을이 왔다>를 공연하기로 돼 있지요?

임채욱 선생: 네, 그렇습니다. 이제 곧 서울에서 북한 공연단의 예술종합공연이 예정돼 있어서 그 안에 무용도 당연히 포함되겠습니다만 오늘은 순수무용분야 만에 국한해서 살펴보지요. 북한무용에서 무용소품이나 무용극, 가극 무용이 있지만 이번에 남쪽 대통령이 본 <빛나는 조국>이란 것은 무용만이 아닌 대집단 예술무용이라 하는 종합공연물이었지요. <가을이 왔다>도 음악 위주의 종합공연물이겠지요.

그럼 순수무용분야만을 대상으로 해서 교류문제를 보지요. 먼저 북한 무용과 한국무용에서 특별히 차이난 특징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먼저 한국에서는 연간 크고 작은 무용공연이 3,000건은 된다고 합니다. 강수진을 비롯한 세계적인 무용가가 많지요. 그래서 한국은 국제무용계에서 변방이 아니라 중심국가로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무용은 전통춤, 현대춤, 발레로 나눠져 있지만 북한에선 춤을 분류할 때 예술무용, 군중무용, 체육무용으로 나눕니다. 북한무용 특징을 말하면 군중무용이 활성화돼 있고 체육무용이 주가 되는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군중무용은 거리나 광장에서 군중들이 떼를 지어 춤을 추는 것인데 무슨 행사 때 늘 볼 수 있지요. 전문예술인들의 춤은 아니지요.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은 집단체조에 예술공연을 배합해서 음악, 무용, 그리고 체조가 어우러진 공연이지요. 여기에서 체조라 했지만 단순한 체조가 아니라 무슨 서커스 같은 기교가 필요한 체조이지요. 그것도 얼음 위나 물속에서도 하는 것들이지요. 이런 체조와 공연의 결합은 1987년 <행복의 노래>에 이어 1989년 7만 명 규모로 벌인 <축원의 노래>가 나왔고 2000년 <백전백승 조선노동당>, 2007년 기네스 북에 올린 <아리랑>공연, 또 올해 새로 시작한 <빛나는 조국> 같은 공연물로 이어져 옵니다. 출연자가 몇 만 명에서 10만 명 단위까지 올라가는 대형공연입니다.

북한에서 예술무용은 순수무용에 속하는 것이 되겠군요?

임채욱 선생: 예술무용은 전통무용을 포함해서 현대무용, 발레를 포함하고 있지요. 이를 세부형식으로 나누면 무용소품을 비롯해서 무용극, 가극무용 등으로 나눠지지요. 북한에선 전통춤인 민족무용이 발전돼 있고 발레는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었는데 2000년대 들어와서 선대통치자 강조로 이제 막 꽃을 피워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발레에도 주체성을 살린다고 서양식 발레복이 아니라 조선식 옷을 입은 것을 봅니다. 현대무용은 이른바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시작됐다는 무용으로 각 시기 마다 대표작이 있는데 해방 후에 최승희가 안무한 <김일성장군님께 올리는 헌무>가 첫 대표작품이 됩니다.

최승희가 나왔습니다만 북한 무용형성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최승희지요?

임채욱 선생: 최승희(1911~1967) 존재를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은 없겠지요. 알려진 대로 그에게 붙은 호칭은 반도의 무희, 동양의 무희, 신무용의 선구자, 최초의 근대무용가, 민족의 무용가 등등 이였지요. 이런 무희가 분단 후 남과 북을 선택하는 고민에 빠졌다가 남편 안막을 따라 북으로 갔고 북한에서 김일성 후원으로 무용연구소도 내고 무용가동맹 위원장, 무용학교 교장, 무용극장 총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으로 활동도 했지만 1967년 남로당에 연루되면서 그만 숙청이 됩니다. 그러나 2011년 김정일에 의해 다시 복권돼서 이제는 북한에서 아주 좋은 대접을 받습니다. 김정일은 최승희 춤을 ‘최승희 춤체’라고 이름을 붙이고 2003년에는 묘지도 애국열사릉으로 이장됩니다. ‘최승희 춤체’는 주체춤동작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최승희는 한국에서도 평가되고 있지요?

임채욱 선생: 물론입니다. 월북자이지만 1988년 해금됐으니 30년이 됩니다. 이제는 그 업적이 남북한에서 다 같이 평가를 받고 있으니 남북한 무용교류는 당연히 최승희를 공통분모를 하는 지점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한 무용가는 남과 북의 춤이 알고 보니 같은 춤을 추고 있더란 말을 했는데 이건 최승희가 남긴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일 겁니다.

무용교류는 최승희가 남긴 업적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남북한에서 상호 보완되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춤에는 이데올로기가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겠지요. 하지만 몸으로 표현되는 춤에는 미적인 예술성도 있고 사상성도 포함됩니다. 이걸 외면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 예술성보다 사상성을 더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무용소품은 북한에서 ‘무용창작의 기본형식’이지만 북한에서는 <고지의 기발>(1953), <조국의 아들>(1953),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1997) 같은 작품은 예술성을 바탕으로 한다지만 사상성을 노출시키고 있지요. 더욱이 무용극이라든가 가극무용에 이르면 사상성이 아주 짙어집니다.

북한에서 개발했다는 자모식 무용표기법이 있지요? 이런 것은 교류에 의해 좋은 방향으로 활용 가능하지 않을까요?

임채욱 선생: 자모식 무용표기법으로 어떤 무용작품도 동작, 감정, 소도구 내용까지 표기할 수 있다니 유용하겠지요. 15년간 연구한 결과로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고 표기법 타자기도 개발됐다니까 활용해 볼 기회를 가져야겠지요.

작품위주로 교류를 한다고 하면 어떤 성격의 작품이 선정될까요?

임채욱 선생: 북한무용에서 4대 명작이라 하는 <눈이 내리네> <사과 풍년> <키춤> <조국의 진달래> 같은 것은 남쪽에서도 소화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무용극이나 가극 무용은 사상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 많습니다. 전통춤 작품에서 돈돌라리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돌라리는 함경도 북청사자춤을 출 때 부르는 노래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가 있어서 분단을 극복하고 반드시 통일을 이뤄낸다는 의미로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속초문화원은 함경도 출신 피난민들 정서를 반영해서 이 민요를 복원하는 사업을 착수했습니다. 무엇보다 남북 춤꾼들이 함께 창작해 낸 통일 춤을 덩실덩실 출 날이 있으면 그 아니 좋겠습니까!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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