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에서 소설 홍길동을 보는 시각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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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국립극장이 만든 마당극 신 홍길동전의 한 장면.
사진은 국립극장이 만든 마당극 신 홍길동전의 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홍길동전>은 허균이 지은 소설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이란 게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사회 문화적으로 홍길동 증후군이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홍길동 증후군 어떤 현상을 말하는지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홍길동은 17세기 우리나라 소설의 주인공 이름입니다. 실제 인물이라고도 하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어떻든 소설의 주인공 홍길동은 서자로 태어나서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못 부르는 신세를 한탄합니다. 홍길동 증후군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 부르는 것처럼 이것을 이것이라 못하고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지요.

소설 홍길동전 내용을 소개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홍길동전>은 허균이 지은 소설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이란 게 중요합니다. 허균은 학식이 풍부하고 글재주가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었지만 기생을 가까이 했다고 파직당하고 불교를 믿는다고 또 파직당하기도 하는데 나중에는 역적모의 혐의를 받고 능지처참당하는 불행한 인생을 산 사람이지요.

<홍길동전> 주인공 길동은 한양 홍판서와 계집종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한을 품고 살다가 집을 떠납니다. 무술을 익히고 활빈당을 조직해서 대장을 하면서 지방 수령들이 나쁜 짓을 해서 모은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줍니다. 8도에서 도적 홍길동을 잡아달라고 올리는 글을 보면 모두가 홍길동이고 재물을 도적 당한 날짜도 일치합니다. 하지만 조정군사도 초인적인 홍길동의 무술과 도술을 당해내지 못하게 되지요. 그 뒤 길동은 고국을 떠나 율도국이란 나라를 세워 이상 사회를 건설하고 다스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서자로 태어난 자식이 차별에 저항하고 이상향을 건설하는 내용인데, 봉건 사회제도를 반대하는 사회소설이지요.

북한에서는 <홍길동전>을 어떻게 봅니까?

임채욱 선생: 길동이 농민봉기 군을 이끌고 율도국을 세워 착취와 압박에서 벗어나서 행복하게 살려는 당시 인민들의 목적지향이 뚜렷이 반영된 소설이라 평가합니다. 그러면서도 길동이 수령으로 의리에 ,끌려 봉건 통치 배들과 타협한다거나 첩의 자식으로 비극을 겪은 그였지만 그 역시 율도국 왕이 돼서는 첩을 거느리는 것을 비판합니다. 결국, 율도국을 세운 것도 인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봉건적인 ‘왕도낙토’를 건설하려는 것뿐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래도 농민봉기 군을 이 소설에 등장시킨 것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합니다. 뭣보다 이 소설이 봉건 통치 배들을 반대한 인민들의 투쟁을 빛나게 한 실재 인물을 소설화했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에선 1985년 문예출판사에서 조선문학선집 시리즈로 원전이 간행됐습니다.

이런 흥미있는 소설이라면 남북한에서도 영화화도 됐겠지요?

임채욱 선생: 분단 이전 일제 강점기에 이미 영화화도 됐지요. 윤백남이 감독하고 김연실 등이 출연한 영화가 1934년에 만들어졌고 광복 후 1967년 한국에서 만화가 신동헌이 만화영화로 작품을 만들어지기도 했지요. 또 1987년 <슈퍼 홍길동>이란 영화가 나옵니다. 이 작품은 17세기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와 과거 세계를 드나들며 무예를 펼치는 홍길동 이야기인데 원작내용과는 많이 다른 영화이지요. 1980년대 한국사회가 민주화로 몸살을 앓던 시기 작품이지만 정치색은 없고 오락성만 짙은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북한에서도 영화화됐습니까?

임채욱 선생:  1986년에 <홍길동>이란 제목으로 나옵니다. 연출은 김길인인데 신상옥이 제작에 관여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신상옥은 1978년 북으로 납치돼서 1986년 탈출할 때까지 북한에서 20여 편의 영화를 제작했지요. 이 작품은 직접 감독하지는 않고 제작에 관여했다고 알려집니다. 이 작품의 무대는 평안도로 설정되고 일본 닌자 패를 등장시켜서 악역을 맡게도 하며 연화란 처녀와의 로맨스도 삽입하고 원작에 있는 병조판서가 되는 장면은 빼는 등 이야기 전개는 약간 다릅니다. 이야기를 작게 시작해서 크게 끝내는 북한영화 형식대로 가정의 서자 차별문제로 시작된 내용이 계급갈등, 봉건사회 모순을 거쳐서 나중에는 평등한 이상 사회로 지향하는 율도국 왕이 되는 구도로 작품화됐습니다.

작품을 평가할 만합니까?

임채욱 선생: 보통의 북한영화들처럼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충실한 영화지만 약간의 오락적 요소도 가미됐습니다. 정승의 딸 연화를 만나지만, 무예를 익히는 사람이 여자를 가까이할 수 없다는 스승의 말에 길동은 연화를 떠나보내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게 장면이나 도술을 쓰는 일본 닌자 패와 싸우는 장면을 크게 부각시키는 장면에서 재미를 추구하려는 면을 봅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부모와의 관계보다 계급 없는 이상 사회를 그리려는 욕망을 표현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은 오늘날에도 하나의 이상향으로 되는 것 아닐까요?

임채욱 선생: 많은 문학작품에서 이상향은 나오지요.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샹글릴라가 가장 대표적일 테지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는 21세기 율도국은 디지털 가상국가라고 합니다. 앞으로는 인류가 가상국가에서 가상화폐를 사용하면서 사는 세상이 된다고 합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한 일이 없던 국가를 세우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이런 가상국가의 국민이 되겠지요.

홍길동증후라고 했는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니까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북한 통치자가 떠오르는군요.

임채욱 선생: 그런 면이 있군요. 할아버지와 찍은 사진 한 장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로 부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데서 오는 콤플렉스가 외디프스 콤플렉스로 연결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군요. 이런 심리는 아버지로부터 탈출을 부추길 것입니다. 북한에서 최근 주체사상에 대한 언급이 약화된 것 같은 것도 그런 현상에서 온 것 아닐까도 싶습니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이겠습니다. 최근 한국의 한 학자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홍길동전> 저자가 허균(1569~1618)이 아니고 황일호(1588~1641)라는 사람이란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전주판관, 진주 목사, 의주 부윤으로 있던 문신인데 청나라를 치려고 모의하다가 청국 병사에게 피살된 사람입니다. 그의 문집인 지소문집에 홍길동 이야기가 <노혁전>이란 이름으로 실려 있다는 주장입니다. 학문적으로야 옳은 것이 밝혀져야겠지만 일반 국민이야 누가 지었던 이야기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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