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한지와 조선종이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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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시 원주한지테마파크에서 이선경 한지개발원 이사(왼쪽)와 김진희 상임이사가 북한에서 '참종이' 또는 '참지'로 불리는 종이를 펼치고 있다.
강원 원주시 원주한지테마파크에서 이선경 한지개발원 이사(왼쪽)와 김진희 상임이사가 북한에서 '참종이' 또는 '참지'로 불리는 종이를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가을 철 입동을 전후한 이맘때가 되면 집집마다 창호지로 방문을 바르는 일이 한창이었어요.

옛날 같으면 지금 한창 한지로 방문을 바르는 일을 할 때지요? 작년 남북정상이 만나던 회담장 인테리어도 전통한지로 장식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지, 북한에서는 조선종이라고 한다지요?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전통한지와 조선종이에 대한 이야기로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합니다.

임채욱 선생: 네, 그렇습니다. 가을 철 입동을 전후한 이맘때가 되면 집집마다 창호지로 방문을 바르는 일이 한창이었어요. 대체로 김장하기 전인데 이때 쓰는 종이가 한지이고 조선종이지요. 문짝을 새 한지로 발라놓으면 방이 환하게 비쳐지면서 마음도 맑아지는 듯 했지요, 한지는 채광면에서도 뛰어나서 한지로 바른 창호는 마음을 밝고 맑게 하며 또 차분하게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졌던 추억들이 우리나라 60대 이상 사람들이면 대개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장 인테리어가 한지로 된 것도 맞습니다. 판문점 평화의 집 회담장에는 큰 금강산 그림과 한지를 바른 창호벽이 회담 테이블 양쪽에 설치돼 있어서 아마도 푸근하고 차분한 마음을 갖게 했을 것입니다.

재래식 기와집에는 방문을 한지 창호지로 발랐던 그런 정서가 그립다고 하지만 세상은 달라지고 지금은 그런 정서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있겠지요. 지금이야 그런 집들조차 찾기가 남북한 어디에도 어렵겠지요?

임채욱 선생: 남북한에도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탈북자 말을 들으면 북한에서도 조선종이 창호지로 문을 바른 것을 봤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시골 한옥 집에는 한지 문종이로 문을 바른 모습을 더러 더러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선 상대적으로 이런 집들이 적다지만 북한에서도 이런 문종이 바르기를 소개한 글이 있는 것을 보면 전혀 없지는 않을 겁니다.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요?

임채욱 선생: 글쎄요, 좀 오래 된 기사인데 ‘전통적인 집 손질 풍습’이란 제목으로 소개(천리마 93. 11.) 한 것을 보면 이렇습니다. 가을이 되면 집집마다 집을 손질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데 지붕 잇기도 하고 온돌수리도 하고 창호지로 문을 바르는 일도 한다고 소개하지요. 창호지는 조선종이가 아주 좋은데 조선종이는 풀을 발라도 변형이 적고 일단 문살에 발라 놓으면 질기고 단단해서 채광이 잘되고 바람을 잘 막아 추위를 막는데도 아주 유리하다고 조선종이 자랑을 늘어놨습니다.

조선종이가 방한효과가 있다고요? 사실입니까?

임채욱 선생: 한 북한자료는 방한효과가 크다고 이런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옛날 무명장사꾼과 조선종이 장사꾼이 함경도 삼수갑산에 가서 하루를 묵게 됐는데 집도 없는 곳이라 별수 없이 무명 장수는 무명을 깔고 덮고 자고 종이 장수는 종이를 깔고 덮고 잤지요. 아침에 보니 무명 장수는 얼어 죽었고 종이 장수는 살아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종이에 대한 자랑이 크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북한에서는 조선종이가 4세기 이전부터 고구려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그 근거로 4세기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 고국원왕릉(안악3호무덤) 벽화에 글을 쓴 흰 종이를 든 사람이 여러 명 있다는 것을 증거로 듭니다. 그리고 5세기경에 만들어 진 종이가 평양 모란봉 기슭에서 발굴되기도 했는데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질되지 않고 본래의 흰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지요. 이렇게 우수한 종이가 610년 담징, 담징이라면 고구려의 유명한 화가로 알고 있지요? 그 담징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고 이로 인해 일본종이가 생산되게 됐다는 것이지요.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자랑할 일이지요. 남북한 공동의 문화, 다시 말해서 남북한 공유문화이기 때문이지요.

임채욱 선생: 맞습니다. 담징이 일본에 종이제조 기술을 전했다는 것은 역사 사실로 확실합니다. 그러나 안악3호무덤 벽화에 보이는 종이가 고구려에서 직접 제조한 것인지, 서기 105년 경 중국 후한 때 채륜이란 사람이 품질이 좋은 종이를 만들었다니 그런 종이가 수입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불교가 들어올 때 불경이 들어왔으니까 4세기경이면 종이 제조기술도 들어왔지 않았겠느냐는 거지요. 그건 그렇다 치고 중국 송나라에서는 왕에게 올리는 문서지는 고려종이를 가져다 썼다고 하고 원나라에서도 불경편찬을 고려종이로 했다니 우리 선조들 종이 만드는 기술은 아주 뛰어났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문살에 창호지 바르는 가옥이 없어지고 있으니 한지나 조선종이 수요도 없어졌지요. 그 명맥도 없어질 판이군요.

임채욱 선생: 생산량이야 줄어들었겠지요. 한국은 전체 종이생산량은 세계 상위권 안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인쇄용지나 신문용지 같은 문화용지 보다 판지나 크라프트지 같은 산업용지 생산이 크게 늘어났지요. 그러나 한지 생산은 점차 줄어듭니다. 북한에서도 조선종이가 생산되지만 생산량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쪽이나 북쪽이나 한지나 조선종이로 공예품을 만든다든가 하는 일은 있을 것이니까 생산이야 여전히 되는 거지요.

한지공예나 조선종이 공예는 남북한에서 활발합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전주에서 생산되는 전주한지가 유명한데 습기를 유지하는 항습기능이 뛰어나서 로마교황청의 비밀문서에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 판문점 회담장 장식 한지도 전주에서 만든 것이지요. 이런 한지인지라 한지를 이용한 공예작가가 많습니다. 작년 이맘때(2018. 11. 16) 부터 올해 7월(2019)까지 미국 뉴욕에 있는 유명한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한지를 이용한 한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삼각형 또는 사각형 스티로폼을 오래된 책 종이들, 물론 한지로 된 책들이지요. 이 종이 조각들로 싸고 묶어서 한약봉지처럼 포장한 것을 전시했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마치 낯선 행성들을 옮겨온 듯 하다는 평을 했다지요. 한국 미술작가(전광영. 74.) 의 작품이였습니다. 아름답고 울림을 줬다는 이 한지작품에 할리우드의 유명한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도 반했다고 합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전통한지로 오디오 소리를 내는 진동판을 만들어 낸 사람도 있습니다(소목장 소병진, 오디오 명장 김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스피커를 만들어 냈다는 것 아닙니까(동아일보 2018. 11. 29. A25) 서양식 펄프로 만들던 것을 닥나무로 만든 한지로 만들었으니 이것이 세계적인 일이라고 대서특필 되는 것입니다. 한지로 만든 이 오디오 스피커는 낮고 높은 아주 조화롭게 표현해낸다고 합니다.

북한의 종이공예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도 종이공예는 매우 장려돼 왔습니다. 특히 조선종이로 끈을 만든다든가 부채나 우산을 만들 때 활용됐지요. 꽃송이나 꽃바구니 등 행사용 장식품을 만드는데 조선종이 공예가 한 몫 합니다.

“종이와 인쇄가 있는 곳에 혁명이 있다”는 말을 영국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이 말했다지요? 이처럼 종이는 문화발전에 이바지 한 것이지요. 여기에 우리나라 한지, 조선종이고 한 몫 크게 했고 앞으로도 그 가능성을 더 찾았으면 합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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