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포스터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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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다시 보는 이달의 6·25전쟁영웅전' 전시에서 관람객이 6·25전쟁 영웅 12명의 공적내용과 포스터를 관람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다시 보는 이달의 6·25전쟁영웅전' 전시에서 관람객이 6·25전쟁 영웅 12명의 공적내용과 포스터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서는 광고나 홍보보다는 선전에 중점을 두지요. 포스터를 북한에선 선전화라고 못을 박습니다.

최근 한국의 보훈처가 6.25영웅을 기린다고 만든 포스터에 중공군이 등장해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한 장의 포스터가 주는 영향도 클 텐데, 어떤 포스터인지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네, 6.25전쟁 때 수도고지를 공격하던 육군하사를 기린다고 만든 6.25영웅 포스터인데, 정작 공격하는 장면은 6.25때 참전한 중공군 사진을 싣고 있습니다. 국가기관이 이렇게 실수를 하다니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지요. 이런 포스터가 한 달이나 게시됐다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바로 지난달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났군요. 오늘은 포스터의 기능이나 영향력 같은 것을 한 번 살펴보지요.

임채욱 선생: 포스터는 비록 한 장의 그림 종이지만 잘 된 내용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포스터는 오늘날처럼 영화, TV, 인터넷 같은 영상매체가 발전하기 전에는 보도내용이나 홍보내용, 또는 선전, 광고내용을 널리 알리는데 아주 좋은 수단이었지요. 지금 온갖 새로운 매체가 나온 뒤로는 뒷전으로 밀리는 수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당국의 정책내용이나 어떤 정치적 내용을 전달하는 데 여전히 활용성이 있습니다. 더욱이 문화로서의 포스터는 그 효용성이 아주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남북한에서도 포스터를 많이 활용해 왔을 터인데, 우선 남북한에서 말하는 포스터의 성격이나 기능은 어떤 것인지요?

임채욱 선생: 포스터는 본래 “전달하려는 내용을 알리기 위한 모든 시각적 형식”(민족문화대백과사전)인데 전달하려는 내용은 홍보나 광고, 또는 선전내용이 되지요. 그리고 이런 내용들을 전달하는 시각적 형식에는 문자, 그림, 사진들이 사용되지요.

북한에서도 같은 기능이나 개념으로 씁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광고나 홍보보다는 선전에 중점을 두지요. 포스터를 북한에선 선전화라고 못을 박습니다. 포스터는 북한에서 분류상 출판미술의 한 분야입니다. 출판미술에는 선전화, 삽화, 판화 등이 포함되는데 선전화가 바로 포스터인 것이지요. 그러니까 선전화는 출판미술의 한 부분으로 주로 대중정치선전에 이용되는 그림으로 규정됩니다. 따라서 선전화는 기동성과 호소성, 선동성을 그 기능과 사명으로 합니다.

북한의 포스터, 다시 말해서 선전화를 먼저 알아볼까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선전화는 대중선동이나 선전에 매우 중요하기에 김정일도 그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선전화가 여러 분야에서 의의있는 현상이나 대상들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형식이라고 지적했다는 겁니다.(김정일선집 12권 p136)

북한에서 선전화는 그 연원이 1930년대로 올라갑니다. 김일성이 만주에서 활동할 때 <조선동포들에게 격함>이란 제목의 선전화를 1932년에 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해 1933년에는 <나팔수>라는 제목의 등사그림을 제작해서 뿌렸다는 것입니다. 또 1940년에는 <거덜난 토벌>이란 제목의 만화를 통해서 일본군을 조롱했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런 연혁을 갖고 광복 후부터 포스터를 이용한 선전활동은 많았고 6.25전쟁 기간, 전쟁 후 복구건설 시기, 사회주의 건설시기를 이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포스터 작품이 생산됐지요. 그 가운데서 잘 되었다는 포스터는 1951년 정관철이 그린 <인민군 장병들이여! 원쑤를 갚아다오>, 1958년 곽홍모가 그린 <동무는 천리마를 탔는가? 보수주의와 소극성을 불사르라!>, 1977년 이선형이 그린 <신념은 철쇄를 끊는다> 등등입니다. 또 <8.15해방10주년 기념만세>라는 포스터에는 “쏘련을 향하여 배우자!”라고 강조되고 있어서 사고와 가치, 그리고 행위의 준거점을 모두 쏘련에 두자는 정책방향이 뚜렷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그밖에 특별한 것들도 있을 테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구호는 정치적 선전을 뒷받침해 주는 기능을 하는데 포스터에는 구호가 그림내용을 집약해 보이고 있지요. 가령 “미제의 각을 뜨자”, “원수들의 가슴팍에 복수의 총창을 박는 멸적의 투지로!” 같은 전투적 구호를 나타내는 것들이 있지요. 뿐만아니라 간첩을 적발하자, 경비를 강화하자 휴지도 다시보고 버리자, 자물쇠를 철저히 잠그자 같은 방첩포스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전투적 포스터나 정치적 포스터만 있지는 않습니다. <기차를 조심하시오>(1965)라는 포스터는 철길에 기차가 달려오는 그림에 ‘주의!’ ‘확인!’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고 <려행질서를 자각적으로 지키자>((1989)라는 포스터는 여자 안내원이 마이크를 들고 질서유지를 하는 그림이 있거나 <학습은 학생들의 첫째가는 임무>라는 포스터는 책장에 꽂힌 책을 배경으로 해서 공부하는 모습의 그림으로 구성돼 있기도 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한국 포스터를 살펴볼까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도 광복 이후 정부수립이나 6.25전쟁을 겪으면서 정치포스터나 전쟁포스터가 많이 제작됐고 5.16군사혁명 이후 근대화 과정에는 산업포스터가 많이 제작됐지요. 방첩포스터, 금연포스터, 인구계획포스터 외에도 불조심이나 교통질서 지키기 포스터 들이 있었지요. 그러다가 88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하면서 제작된 올림픽포스터로부터 문화포스터가 꽃을 피우게 되지요. 서울올림픽포스터는 여러 종류가 제작되는데 엠블럼 포스터는 삼태극 문양과 올림픽 마크를 조합한 것으로 1912년 스웨덴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최초로 제작된 올림픽 포스터 이래로 가장 장 됐다는 호평을 받았지요. 또 호돌이가 상모를 돌리는 포스터도 아주 인기를 끌었지요. 공식 포스터는 컴퓨터 그래픽 기법으로 제작했고요. 한국 포스터 제작수준은 이때 크게 높아졌지요.

그런데도 보훈처 당국은 그런 실수를 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군요. 끝으로 남북한 포스터의 특별한 면을 한 번 살펴봐 주시죠.

임채욱 선생: 무릇 북한 미술품은 인민을 교화하기 위한 선전과 선동을 의도해서 제작된다고 하지요. 그래도 순수미술과 선전미술인 포스터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지요. 포스터는 메지시를 시각적으로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으니 선전에는 순수 미술보다는 아무래도 더 중요한 기능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도 느낌표와 정치용어 구호로 점철된 포스터가 여전합니다. 무엇보다 구성과 드로잉, 그리고 색깔이 단순하다는 특징을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포스터 제작기술은 높아지는데 도안(디자인) 수준은 아직 고루한 장식미술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 태극문양을 이용한 정부 상징도안이나 몇 년 전 대통령 취임 때 선보인 오방색으로 된 주머니 같은 것이 흉물이었다고 하는 비판도 보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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