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디자인 문화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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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평양에서 열린 국가산업미술전시회 모습.
지난 2016년 평양에서 열린 국가산업미술전시회 모습.
/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2020년이 밝자 온 세상에서 문화예술분야 새해 행사가 많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서울에서는 디자인 분야 대단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문화예술분야 중에서 디자인 문화를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핀란드 디자인 10000년’이 열리고 있습니다. 1만 년 전 북유럽 핀란드의 디자인이라니 놀랄 일 아닙니까? 또 이탈리아 디자이너 아킬레 카스틸리오니(1918~2002)의 디자인작품 회고전도 열리고 있습니다. 둘 다 디자인 분야에서는 대단한 전시회지요. 그런데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이 올해가 한국에서 디자인이 새롭게 태어난 지 50년이 되는 해라는 겁니다. 그래서 남북한 디자인 문화를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디자인이라면 미술도안을 말하겠는데 그건 50년도 더 됐을 텐데 어째서 50년이라고 할까요?

임채욱 선생: 물론 그렇지요. 디자인이란 것은 전통시대 이후부터 치더라도 멀리는 140여 년 전 개항시기까지 올라가지요. 그때도 책 표지는 나름대로 도안 됐고 종로 거리에 상점 간판도 도안된 것이고 밥을 먹는 식기도 도안된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한국에서는 1960년대가 되면 응용미술이나 공예미술을 공부한 사람들이 활동하면서 가전제품에 의장을 하거나 산업디자인 미술전람회를 열 정도로 관심이 높아갑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디자인이 발전된 것은 서울올림픽이 계기가 되지요. 올림픽 휘장이나 포스터, 안내설치물, 유니폼이 다 좋은 디자인을 통해 등장한 것이지요. 그러나 올림픽에 앞서 수출을 장려하던 필요성 때문에 수출품 디자인에 힘을 기울이면서 디자인과 포장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이 생긴 것이 1970년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50년이 된다는 것이죠. 또 이때 바야흐로 새마을 운동이 벌어지면서 한국의 사회풍경을 바꿔버린 것도 1970년이기 때문이지요.

새마을운동이 디자인과 무슨 관계인지요?

임채욱 선생: 초가집을 없애고 마을 길을 넓힌 것이 새마을 운동의 출발이었지요. 그러나 이것은 한국사회를 근대화하는 풍경의 효시였습니다. 이때로부터 한국사회는 마을풍경이 크게 바뀝니다. 전통시대 곡선으로 나타나던 모습이 직선으로 바뀌었다고 할까요? 꼬불꼬불하던 마을길이 직선으로 바뀌고 초가집 용마루 곡선은 사라지고 함석집 직선으로 바뀝니다. 전통시대 곡선미학은 사라지고 근대의 직선 미학이 등장한 것이지요. 이런 것이 디자인 면에서 보면 확 달라진 것이지요. 물론 획일적으로 직선화된 새마을 모습이 전통을 박제화 시켰다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어떻든 마을과 사회 모습을 바꾼 것은 틀림없는 것이 됩니다.

디자인은 근대 산업혁명시기부터 등장한 미술분야의 중요한 창조작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쪽에서는 디자인이라 하지만 북쪽에서는 도안이라 하고 있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북한에서는 디자인을 도안이라고 합니다. 디자인이냐 도안이냐 하는 문제에서 도안은 일본에서 쓰던 말을 받아들였는데 잘못된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디자인을 프랑스에서는 장식미술, 독일에서는 조형미술, 중국에서는 설계라는 개념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디자인이 초기에 여러 생산품에 미술을 응용한다는 개념에서 시작됐지만, 오늘날에는 산업미학이란 관점으로까지 발전돼서 디자인이 산업미술의 한 분야로 되고 용어도 국제적으로 디자인이 보편적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도안이란 말 보다 디자인이란 말이 적절하지요.

한국에서 디자인은 서울올림픽 때 결정적으로 발전했군요. 그 뒤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겠지요. 지금 한국에서는 건축할 때 의무적으로 미술작품을 설치하게 한다지요? 이런 것이 도시의 디자인을 바꾸고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겠군요.

임채욱 선생: 건물에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것은 1972년부터 하나의 권장 사항이였는데 1995년부터는 의무화됐습니다. 좋은 조형물 작품이 많지요. 서울 신문로 거리에 있는 <망치질하는 사람>이란 제목을 가진 철제설치물이 대표적이지요. 높이 22m, 무게 50톤의 철제 사람이 35초에 한 번씩 망치질을 하는 작품이지요. 사람은 일하는 존재로 ‘호모 파브르’로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지요.

도시의 큰 건물에는 좋은 작품이 설치돼 있겠군요?

임채욱 선생: 글쎄요? 좋은 작품도 있겠지만, 미적으로 좋은 감정을 주지 않는 작품도 많다는군요. 건축비의 일정액을 들여 설치하는 것을 의무화하다 보니 건축비가 많이 들면 거기 따라 작품 설치비도 비싸지지요. 그런데 작품설치가격이 높다고 반드시 그 작품이 좋은 것은 아니겠지요.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세종시에 있는 정부청사에 <흥겨운 우리 가락>이란 제목의 조형물이 세워졌습니다. 한복차림에 갓을 쓴 남자가 춤을 추듯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금속작품인데, 그 남자의 얼굴이 저승사자처럼 무섭다는 민원이 제기돼서 철거됐다고 합니다. 그 작품이 세워진 게 5년 전인데(2015년) 5년도 안 돼 작년 연말에 철거됐답니다. 이런 사례처럼 한국에는 디자인 면에서 미감이 떨어지는 조형물이 도처에 늘려있다고 합니다. 미감이 떨어진 조형물이라면 그건 흉물과 다름없지요. 이런 흉물이 수두룩하다고 하니 이게 한 해 2만 5,000명의 디자인전공자가 배출된다는 한국의 현주소라고 합니다.

북한 디자인도 살펴볼까요?

임채욱 선생: 북한 도안 미술은 산업미술의 한 분야로 발전해왔습니다. 도안에도 형태도안, 장식도안, 장치도안, 선전광고도안 같은 것들이 있지요. 북한 디자인이 한국에 선보인 일이 있었습니다. 영국사람 조너선 반브룩이라는 디자이너가 2004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었던 작품전시회에서 특별히 북한 디자인들을 선보인 일이 있었고 또 다른 영국사람 니콜러스 보너는 북한 그래픽 디자인전을 작년 2월 서울 대학로에서 열었습니다. 앞에 것은 북한 선전물을 디자인이란 관점에서 해석한 것 들이였다면 뒤의 것은 생활용품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니콜러스 보너는 북한전문여행사를 운영하면서 북한을 드나들다가 북한주민들의 생활용품을 많이 수집하고 그 디자인을 담은 책을 내기도 했는데 이 중 그래픽 디자인 200여 점을 전시한 것입니다. 전시내용 중에는 우표, 엽서, 책표지, 제품포장, 각종 티켓이 있습니다. 북한 그래픽 디자인은 감성적 반응을 이끌기보다 상품의 기능을 소개하는 데만 치중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나쁘게 표현하면 좀 유치한 면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 디자인 작품들은 현재 작품들은 아닐 테지요?

임채욱 선생: 오래된 작품들인 것 같습니다. 북한 디자인 문화도 2000년대 이후는 많이 발전되고 있습니다. 특히 상품의 상표가 대체로 발전된 나라의 디자인과 거의 비슷해지고 있다는데 이를 두고 한 편에서는 표절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최근에 생산된 북한 상품 중에서 보리수라는 음료수 상표디자인은 코카콜라와 같고 어린이 성장 음료로 내놓은 우유상표는 한국의 뽀로로와 매우 유사한 상표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늘 해오던 대로 국제사회의 저작권을 무시한 처사를 보이는 것입니다.

디자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남북한의 특징적인 면이 있는지요?

임채욱 선생: 디자인에는 미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공예품도 있고 산업발전과 관련해서 과학기술적 수준이 반영된 산업디자인도 있지만, 공공적인 성격을 띤 상징디자인도 중요합니다. 한국에서는 전통문양 태극 도형을 이용한 도안이 많지요. 국기를 비롯해서 정부상징마크도 3태극문양으로 결정(2016. 3.) 했습니다. 북한에서도 상징도안을 아주 중시해서 노동당 마크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새로 만들었지요. 노동당 마크를 두고 북한에서는 상징도안의 모범이라고 합니다. 노동당 마크는 노동자, 농민, 근로인텔리를 상징하는 망치와 낫, 그리고 붓을 소재로 해서 만든 것인데 조형적으로 조화롭게 구성했다고 자랑합니다. 앞으로 상징디자인 분야는 남북한에서 가장 경쟁적으로 발전시키게 될 분야가 되겠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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