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코로나19와 남북한 민족 공조 심리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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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5일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예방하기 위해 "한 순간도 각성을 늦추지 말고 방역 사업을 더욱 줄기차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은 신문에 실린 김정숙평양제사공장 직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5일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예방하기 위해 "한 순간도 각성을 늦추지 말고 방역 사업을 더욱 줄기차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은 신문에 실린 김정숙평양제사공장 직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아시아 지역을 휩쓰는 신형 코로나19 병원균이 북한에는 들어가지 않았다지요? 확진 환자가 단 한 사람도 나온바 없다는 것이 북한의 발표입니다. 그런데도 남쪽 한국정부는 국제사회나 북한의 요청이 있으면 보건의료 장비나 기구를 지원하겠다고 하고 있지요? 그래서 오늘은 민족공조 제목으로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네, 북한발표를 그대로 믿어야 할지요? 지난 2월 중순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한 김정은이 일행과 떨어져서 절을 했다지요? 아마도 코로나 감염을 의식한 것이 아니겠나 싶지요. 북한당국은 코로나발병에 대한 보도를 다른 때와 달리 매우 부지런히 하고 있습니다. 발병국인 중국뿐 아니라 한국의 발병소식을 하루 몇 차례나 하고 있습니다. 대남비난 효과도 노리겠지만 오히려 주민들에게 경종을 울리려는 것이 아닐까 싶군요. 이건 코로나를 매우 위험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말하죠.

북한은 1980년대에 한국이 수해를 입자 수재물자를 보내기도 했지요? 이러니까 한국으로부터 보건분야 지원을 받아도 될 텐데요?

임채욱 선생: 아, 네 1984년 여름이지요. 그 때 한국에서 물난리가 나서 수해를 크게 입었지요. 이게 8월인데 9월에 들어서자 북한에서 수재물자를 보내겠다고 했지요. 남쪽에서는 이미 수해복구가 끝났지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할 의도로 받아들였지요. 그래서 쌀 5만석과 옷 지을 천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사실 양쪽 다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역사가 있음에도 지금 북한은 한국에 손 내밀 생각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금강산 관광사업이나 개성공단 재가동, 그리고 북한개별관광을 추진하려 하고 있지요? 전 같으면 민족공조라는 입장에서 받아들일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군요.

임채욱 선생: 북한이 코로나 감염을 비상한 상황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의 대북지원에 반응을 안 보이는 것은 그간 얕봐왔던 대로 지금의 한국정부로서는 북한이 원하는 민족공조를 실현시키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겠지요.

북한이 원하는 민족공조는 어떤 것이 될까요?

임채욱 선생: 북한이 원하는 민족공조는 한마디로 대미국관계에서 작동되는 논리입니다. 남북한이 힘을 합쳐 민족공조를 하자고 합니다만 그 대상은 미국에 대한 것이지요. 말이 좋아 ‘우리는 하나’라면서 민족공조를 하자지만 이게 뜻하는 바는 함께 미국에 덤비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남북관계에서 필요할 때만 등장합니다.

그간 민족공조가 작동된 양상은 어떠했습니까?

임채욱 선생: 먼저 북한에서 내세우는 민족공조 논리는 이렇습니다. “오늘 북과 남은 다 같이 미국으로부터 엄중한 침해와 위협을 받고 있다. 남이 불편할 때 동족인 북이 편안할 수 없고 북이 불편할 때 동족인 남이 편안할 수 없다.” 무슨 일란성 쌍둥이 몸이 붙어 있는 형상 같지요. 언제 작동되기 시작했느냐 하면 그것은 2002년 10월입니다. 2002년은 여러모로 많은 일이 있던 해지요. 그 해 6월 한국에서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렸고 9월에는 부산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려서 북한도 참가했습니다. 이 때 북한응원단도 왔는데 주로 여성들로 구성돼서 미녀응원단이라 했지요. 이들 응원단의 구호가 ‘우리는 하나다’였지요. 이들은 한국 사람의 호응을 이끌어 낸다고 ‘우리는’하고 외치면 남쪽 사람들이 ‘하나다’라고 화답했지요. 사실상 스포츠 무대에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날린 셈이지요. 남쪽 사람들이야 민족적인 감정에서 ‘우리는 하나다’란 말에 현혹되는 거지요. 당국에선 그 의미를 알아도 말리지 않았고요.

그렇군요. 그런데 스포츠무대에서 끝났다면 아무런 문제도 안 될 것 같은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지요. 그 해 10월에 북한은 핵개발시설이 가동되고 있음을 공표합니다. 그래서 1994년 이후 동결됐던 핵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핵위기가 닥칩니다. 그 때 미국은 강경했고 한국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하려 했습니다. 이에 북한은 남쪽을 향해 반전, 반미를 내세우면서 민족공조를 하자고 합니다. 다음해 1월, 그러니까 2003년 1월이 되면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합니다. 그리고는 대남호소를 합니다.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핵 문제를 둘러싸고 남쪽이 외세와 공존하기보다 북과 공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댔지요. 서울에서 열린 3.1민족대회에 참가한 북한대표는 민족공조를 외쳐대고 무슨 회의 때마다 ‘남북은 하나’, ‘우리민족은 하나’, ‘우리민족끼리’를 열렬하게 외쳤습니다.

북한이 핵을 두고 민족공조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남북한이 하나의 민족이란 논리에 근거해 있군요.

임채욱 선생: 설령 논리적으로는 남북이 하나의 민족일지 모르지만 심리적으로는 어떻게 하나일 수 있습니까? 한 핏줄이고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역사에 같은 문화를 가졌지만 심리적으로는 같을 수가 없지요. 우리나라 분단은 처음에 지리적 분단으로 시작됐지만 곧 이념적 분단이 이어졌고 오랜 시간 뒤에는 심리적 분단으로 됐으니 남북간의 거리는 아주 멀어진 것이 현실이지요.

그렇군요 민족공조에는 민족의 논리가 아니라 민족의 심리가 있군요.

임채욱 선생: 민족공조가 말 그대로 민족화해에 기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화해 속에서 교류협력을 하고 이런 교류협력을 한 결과로 문화적 동질화도 이루고 이 동질화를 하다가 결국 민족통합을 가져온다면 누가 민족공조를 거부하겠습니까? 하지만 북한의 주장에서 자기들 수령의 탁월성에 영향을 받아 우리민족 심리가 형성됐다고 말하니 이를 받아들일 남쪽주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핵을 둘러싼 문제인데, 이에서는 남북한 이해가 다르지 같을 수가 없지요. 이런 현실 바탕 위에서는 민족제일주의가 아니라 국가제일주의가 옳은 태도지요. 지금 국가제일주의를 북쪽에서도 찾고 남쪽에서도 찾게 된 현실이 이런 심리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민족심리를 같이 할 수 없는 사람들끼리 한 민족이란 명분으로 무조건 민족공조의 틀 속에 넣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남쪽에서 북쪽에 코로나 위생방역을 위한 지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남쪽에 있는 국민이 원해서 정부가 하는 것이지 남쪽에 사는 같은 민족이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남북간은 통일이 되기 전 까지는  서로 돕는 상조는 할 수 있어도 대외적으로 공조해야 할 운명공동체는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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