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국어사전 ‘말모이’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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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자 주시경이 1911년 한글 사전 편찬을 위해 쓴 '말모이 원고'.
국어학자 주시경이 1911년 한글 사전 편찬을 위해 쓴 '말모이 원고'.
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한국에서 <말모이>란 영화가 인기 속에 상영되는 것으로 압니다. 말모이란 말이 우리말 사전을 뜻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말 사전 ‘말모이’이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봅니다.

임채욱 선생: 네. 우리나라 최초 국어사전이라 할 사전 이름이 <말모이>였습니다. 그래서 말모이를 우리말 사전을 뜻하는 말이라고 봐도 되겠지요.

최초의 우리 국어사전 이름이 말모이였군요. 그 사전은 어떤 사전이였나요?

임채욱 선생: 주시경선생 아시지요? 한글을 연구하고 우리말을 사랑하는 국어운동을 펼치면서 일제에 항거한 애국자이지요. 1911년 그가 제자들과 함께 우리 말 사전 편찬을 시작합니다. 이 사전이름이 ‘말모이’인데, 불행히도 이 사전은 발간되지 못합니다. 사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죽거나 해외로 망명하는 바람에 원고작업은 거의 마무리 됐으나 출판은 못됐고 현재 그 원고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이 사전 표제가 말모이로 돼 있고 240자 원고지로 153면입니다.

그럼 영화 <말모이>는 이 사전편찬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그렇지 않습니다. <말모이>라는 영화는 이 사전이 바탕이 돼서 주시경의 제자들, 가령 김두봉, 김병제, 최현배 등이 1921년 조선어학회를 만들고 <조선말큰사전> 편찬에 힘을 기우립니다. 영화는 1940년대에 사전이 뭔지도 잘 모르던 주인공이 사전편찬 과정에 심부름꾼으로 가담하면서 말이란 단순히 소통하는 도구가 아니라 민족의 정신을 담는 재산임을 깨닫는다는 내용이지요. 그런데 일제는 <조선말큰사전>편찬을 막으려고 탄압을 합니다. 그래서 조선어학회사건까지 일어나지요.

아! 유명한 그 조선어학회사건 말이지요?

임채욱 선생: 네, 일제가 1942년 10월부터 시작해서 1943년 4월까지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는 조선어학회 회원 48명을 잡아 가두거나 고문을 하고 재판에 넘긴 사건이지요. 재판 중에 두 사람은 감옥에서 순국하기 까지 했지요. 이때 조선어학회에서 만들던 사전원고도 증거물로 압수됐지요. 광복 후 그 원고 행방을 몰랐는데, 글쎄 그 원고가 서울역 한 창고에서 발견됐지요. 기적이지요. 이때 발견되지 못했다고 해 보세요? 오늘 날 번듯한 우리말 사전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원고를 가지고 우리말 큰 사전을 완성했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우리말 큰 사전은 1929년 10월에 조선어학회 중심으로 100여 명이 발기하면서 편찬에 들어갔는데 1942년 조판도 되고 교정이 시작되려던 참에 어학회 사건으로 중단되고 말지요. 글쎄 그때 없어진 원고가 발견됐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이 원고 뭉치를 들고 사전을 편찬하려고 출판사를 찾았으나 그때 사정으로는 이 큰 일을 맡을 곳이 없었지요. 1947년 상반기 사전 편찬 간사장을 맡고 있던 이극로와 몇 사람이 서울 종로에 있던 을유 문화사에 가서 원고뭉치로 책상을 내려치면서 소리쳤다고 하지요. “이 원고를 가지고 일본 놈들한테 찾아가서 사정해야 옳단 말이요?” 이들 한글학자들 열정에 감동한 출판사 측이 사전편찬을 맡기로 했지요. 온 힘을 쏟아 그 해 한글날에 첫째 권을 내고 둘째 권은 다음, 다음 해, 1949년 5월에 나오고 다음 해 1950년에는 셋째 권이 제본되고 넷째 권 조판이 끝날 무렵 6.25가 일어나서 중단됐지요. 전쟁 뒤 다시 시작해서 1957년 한글날에 맞춰서 마지막 6권이 발간돼서 <조선말 큰 사전> 편찬의 큰 사업은 끝나게 됩니다. 올림말 16만 4125개에 이르는 큰 사전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후에는 남북한이 국어사전을 따로 만들게 되겠군요. 북한의 우리말 사전편찬을 살펴볼까요?

임채욱 선생: 광복 다음 해 12월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좌우양익 합작으로 통일국가 건설에 힘을 같이 하자”라는 성명을 냈다고 합니다. 민족주의 계통 회원이나 사회주의 계통회원이나 할 것 없이 오직 국어사전 편찬에 관심을 기울이며 한데 뭉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사회주의 계열 학자들은 월북을 합니다. 이극로, 김병제, 유열, 김수경 등등입니다. 6.25 전쟁 중 남북 된 정열모도 있고요, 이들이 북한에서 국어사전을 만들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지요.

북한에서 나온 국어사전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북한정권이 서던 그 해 그러니까, 1948년 10월 사전편찬을 국어학자들에게 위임합니다. 10만 단어를 담은 사전을 인쇄에 들어갔으나 6.25전쟁으로 끝내지를 못했지요. 인쇄에 들어가지 못한 원고들은 강계 인풍루에서 보관을 했습니다. 김일성이 후퇴 때 피신한 곳이지요. 그때 김일성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원고를 잘 간수했다가 전쟁에 이긴 다음에 곧 찍어내자” 그러나 형편이 어려워서 우선 1955년에 한 권짜리 <조선어소사전>을 발간합니다. 그리고는 1957년 가을에 본격적인 사전편찬을 시작해서 1960년 8월에 첫 번째 책이 나오고 이어 1962년 11월까지 6권짜리 <조선말사전>이 완간 됩니다. 17만개 어휘가 실렸지요. 그 뒤로는 이 사전을 보완한 <조선말대사전>이 나오는데 제일 최근 나온 것은 2017년에 40만 어휘를 수록한 증보판 4권이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국어사전이 많이 나왔겠지요?

임채욱 선생: 우선 앞에서 말한 <조선말 큰 사전>을 <한글 큰 사전>로 이름을 바꿔서 낸 것이 으뜸이고 그 뒤 개인이 편찬한 것도 몇 종류가 되지요. 이희승이 편찬한 <국어대사전> (1961)이 유명하고 신기철 신용철 편찬의 <새 우리말 큰 사전>도 있습니다. 이 사전은 <표준국어사전>이란 이름으로 나온 것을 바꿔서 낸 것입니다. 북한처럼 당국에서 만들어라 말아라가 아니라 개인이 낸 것이지요.

작년 9월 남북한 정상은 평양에서 문화와 예술분야 교류를 증진시켜 나가자고 약속했지요. 국어사전 편찬분야에서도 공동사업이 모색될 수 있겠군요.

임채욱 선생: 사전편찬 분야에서는 이미 <겨레말 큰 사전>이 2005년부터 남북공동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지요. 그간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데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는 속도를 못 내고 있지요. 현재 올림말 표제어로 선정된 단어는 27만 여 개~33만 여 개인데 12만 개 정도 단어는 풀이를 남북한이 합의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공동사업이 속도를 낼지 주목됩니다.

기대되는 일이군요.

임채욱 선생: 그런데 이런 공동사업에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말도 아니고 같은 민족의 말인데 그게 다르다고 돈 들여서 사전까지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7,000만 겨레가 사용하는 말은 통일 뒤 표준어가 정해진 뒤 만들어야지 지금 해봐야 사전으로서 쓸모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북쪽 단어를 모르면 북쪽 사전 찾으면 되고 남쪽 어휘가 궁금하면 남쪽 사전 찾으면 되는 것이지 그걸 왜 만드느냐는 논리지요. 그러나 긴 눈으로 보면 공동편찬도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외국의 사례입니다만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나라는 다르지만, 독일어를 같이 쓰니까 독일어 규범을 통합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도 사실 남북한뿐 아니라 중국 조선족,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쓰는 어휘들을 다 모은 사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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