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의 노래, 금강산의 눈물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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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마지막 날인 2015년 10월 26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이 끝난 뒤 북측 가족이 버스에 탑승한 남측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며 오열하고 있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마지막 날인 2015년 10월 26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이 끝난 뒤 북측 가족이 버스에 탑승한 남측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이번에 만나는 이산가족은 쌍방이 다 100명 미만입니다. 남쪽 가족이 북쪽 가족과 만나고 나면 북쪽에서 남쪽 가족을 찾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리게 되지요? 해당되는 이산가족들은 상봉의 기쁨에 겨워서 노래도 나올 것 같군요.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이산가족상봉과 관련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상봉하시는 분이나 가족들은 들떠 있겠죠.

임채욱 선생: 그렇겠지요. 상봉대상자로 뽑힌 사람들이야 노래를 부르고 싶겠지요. 남북한에는 금강산을 상찬하는 노래도 있으니까요. 민족의 명산이라는 금강산에서 노래가 높아지려면 이산가족의 상봉행사가 큰 폭으로 환희에 차서 치러져야 될 것 같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가 십 수만 명인데, 아직 만나지 못한 분들도 수 만 명이라고 하지요?

임채욱 선생: 이번에 만나는 이산가족은 쌍방이 다 100명 미만입니다. 남쪽 가족이 북쪽 가족과 만나고 나면 북쪽에서 남쪽 가족을 찾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이러다 보니 당초 북쪽 가족 상봉을 신청한 남쪽의 10수만 명 중에서 절반만 살아있는데 그 절반이 7만명에 가까우니 이들이 이런 식으로 상봉을 다 하려면 몇 십 년이 걸리겠다는 계산이지요.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을 노래하는 기쁜 모습의 상봉이 되려면 우선 만남이 많아져야 합니다. 지금처럼 소수인원이 그저 만나는 체만 해서는 결코 금강산 노래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인도적 문제인데도 그게 그렇게 더디게 되니 안타깝습니다. 만남의 기회를 더 많이 만들 수는 없나요?

임채욱 선생: 남북한간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에 처음으로 시작되는데 그걸 이뤄내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남북대화가 시작된 1970년대 이후 이산가족상봉은 1980년대나 1990년대 내내 적십자회담이 열렸다 닫혔다 지지부진함에 따라 시원하게 열린 일이 없었지요. 2000년대 들어서서야 이산가족 상봉사업은 간헐적으로 이어지는데 이번까지 20차례가 되니까 지금까지 모두 21차례 이뤄졌고 이번까지 하면 22차례가 되는군요. 앞선 21차례까지 23000여명이 만났습니다. 그래도 갈 길은 너무 멉니다. 상봉장소도 더 만들고 상봉기회도 더 자주 있도록 해야 되는데 남북한 간 정치적 문제가 개재될 때는 그만 상봉사업이 막히고 맙니다.

만남이란 기쁜 것이고 즐거운 것인데 이산가족들 간의 만남은 통곡으로 끝나는 듯합니다.

임채욱 선생: 다음 만남을 기약 못하기 때문이지요. 만나고 또 만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강산의 노래는 환희로 울 텐데 다시 못 만날 헤어짐이니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금강산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이 너무 아쉽습니다. 개별 이산가족 사연사연 마다 얼마나 슬픈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습니까! 금강산의 노래를 즐거이 부르는 상봉이 되려면 우선은 눈물의 상봉이더라도 만남이 많아지고 다음은 한 차례로 끝나는 상봉이 안 돼야지요

금강산이라면 우리민족이면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산 아닙니까? 이 좋은 산에 한이 풀리기보다 보다 더한 한을 안고 헤어짐을 겪어야 하는군요.

임채욱 선생: 옛말로 표현해서 ‘일러 무삼하리오’ 아니겠습니까? 금강산이라면 굳이 말 안 해도 될 경치 아닙니까?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아름다운 그 경치를 노래했고 화가들이 그리던 산이 아닙니까? 그 가운데서 한 가지만 소개하지요, 고려시대 이곡(李穀)이란 학자가 말하길 대체로 보는 것은 듣는 것만 못하다고 하는데, 중국 사천성에 있는 아미산(蛾眉山)이나 월남에 있는 보타산(補陀山)이 이름답다 하나 실제 본 사람은 듣기보다 못 하더라 했는데 금강산은 실로 들은 것보다 더 나은 산이 틀림없다고 말했지요. 한마디로 중국사람 조차 고려 땅에 태어나서 금강산 한 번 보고 죽는 것을 소원할 정도의 산 아닙니까?

금강산에 관광시설도 잘 되어 있겠군요.

임채욱 선생: 북한은 2002년 10월 금강산을 금강산관광지구로 지정하고 관광대상지와 시설을 늘렸습니다.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으로 된 금강산 전체를 외금강 11개 구역, 내금강 8개구역, 해금강 2개구역으로 구분하고 각 구역별 관광대상지를 선정하고 있지요. 하지만 등산로라든가 교통시설 등 개발이 필요한 부분은 아직 많지요. 그런데 금강산을 찾는 남쪽 관광객은 원래 금강산 이름과 다른 명칭들을 많이 접하게 될 것입니다. 구룡폭포 부근 물줄기는 본래 이름과는 다른 삼록수가 돼있다든가, 양지대 대신 회상대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든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김일성부자가 금강산에서 120여개의 이름을 새로 짓거나 바꿨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봐야하겠지요. 그보다 김일성,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글귀도 군데군데 볼 수 있지요.

만남장소를 금강산 외에도 여러 곳으로 할 수도 있을 덴 데 그런 것도 합의가 쉽지 않는 모양이지요?

임채욱 선생: 만남의 장소는 금강산뿐 아니라 얼마든지 있지요. 개성도 좋고 문산이나 연천에도 상봉장소를 만들면 되지요. 지금처럼 만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남북가족이 함께 여행도 하고 하면 더 좋지요. 이산가족에 대한 전면적인 생사와 주소를 확인하는 작업과 상봉을 정기적으로 확대하고 서신도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산가족의 한을 반이라도 풀어줄 수 있습니다. 남북한에는 <금강산의 노래>가 있습니다. 민족의 명산 금강산에서 통일을 노래하려면 눈물의 만남이 환희의 만남으로 바뀌어 가야 하지요. 금강산이던 아니던 그리고 그 상봉이 눈물의 상봉이 되던 우선은 많이만 만나도 좋지 않겠습니까?

이산가족은 남북분단 후부터 6.25전쟁을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이산가족이 생기고 있지요? 탈북민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임채욱 선생: 맞습니다. 새 이산가족도 3만 명이 넘습니다. 이들 존재에 대해서는 김정은위원장도 외면하지 않고 한마디 했는데, 이들은 여러 방법으로 북쪽에 있는 가족과 통신을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일입니까? 앞으로는 이들 탈북민들도 이산가족으로 북쪽의 가족과 만나야 됩니다. 하지만 현재로는 이들을 북한당국이 이산가족으로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1세대 실향민 이산가족은 이제 노령으로 만남도 원활치 못하지만 이들 탈북민 이산가족들은 상대적으로 젊기 때문에 남북한관계 변화를 이끌 어떤 역할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임채욱 선생: 이들 새 이산가족들은 남북한에서 교량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할 수 있습니다. 실향민 단체인 이북5도위원회같은 곳에서도 이들 새 이산가족들이 보다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남북한 간 사회적인 교류나 통합문제에서 주도적으로 시멘트 같은 기능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은 탈북민까지 이산가족 범주에 들어가는 그런 상봉이 돼야 진정한 금강산 노래를 부르는 상봉이 될 것입니다. 이산가족은 흘리고 싶은 눈물도 참아온 분들입니다. 이제는 그들이 참고 싶은 눈물은 흘리지 않고 그 눈물이 흘리고 싶을 때 마음껏 흘릴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슬퍼서 보다 기뻐서 마음껏 흘리는 눈물을 보게 되면 좋겠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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