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민둥산'과 '부관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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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04년만의 폭우로 며칠 전 서울은 엄청난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부자들의 상징, 번화가인 강남의 삼성역 주변이 순간에 물에 잠겨 차들이 떠다니기도 했습니다. 평양과 비교하면 중구역의 창광거리가 물에 잠긴 셈이죠.

산들도 쏟아져 내리는 물을 미처 담지 못해 곳곳에서 사태를 일으켜 수십 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대한민국 최대백화점 업체의 하나인 '신세계' 구학서회장의 부인도 변을 당했고, 방학을 이용해 강원도에 봉사활동을 나갔던 대학생들도 다수 희생됐습니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남한에는 북한의 '천리마운동'과 같은 대중운동이 있었습니다. '잘살아 보세'의 장구를 치면서 '새마을 운동'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대대적인 나무심기를 비롯해 '내 마을, 내 고향'을 잘 꾸리기 위한 전민적인 대중운동이 일어났으며, 결과 가까운 시일 내에 아시아가 부러워하고 세계가 깜짝 놀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부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정책으로 남한에서 치산은 거의 끝났다고 봐야죠. 어디를 가든 나무가 빼곡히 산을 메우고 있고 수림이 우거져 멧돼지 등 자연동물이 너무 번성해 오히려 농민들의 농사를 해치고 위협하는 수준입니다.

고속도로와 길도 잘 돼있어 어디든 자가용차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강수량의 3분의 1을 하루사이에 퍼부으니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남한에서도 그 피해가 이럴 진데 온통 민둥산뿐인 북한에서는 오죽하랴 이런 걱정이 앞섭니다.

황해도지역에서 벌써 여의도 면적의 수십 배에 달하는 농지가 물에 잠겼다는 소식이 사진과 함께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평양을 떠나기 몇 해 전에 교수 ․ 박사대표단으로 백두산을 답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기차를 타고 가면서 느낀 점은 산림이 너무도 많이 황폐화되고 벗겨진 것이었습니다. 땔감이 없어 산을 벗기고, 식량을 마련하느라 부대기 밭으로 벗기고, 중국에 밀가루 대금을 물려고 벌목으로 또 벗기고...

이뿐이 아닙니다. 나무가 없는 산에 무슨 불이 그렇게 많이 났는지, 평양으로 돌아오면서 목격한 산불도 10개가 넘었던 것 같습니다. '간첩들의 짓이다, 부대기를 일구려고 그런다, 아니 누군가 앙심을 먹고 불을 질렀다,' 이것이 제가 귀동냥해 들은 당시 산불이 난 원인이었습니다.

백두산일대 국경 쪽에서 중국과 북한쪽을 비교해도 차이가 확 납니다. 한쪽에는 쓰러진 나무, 잡관목도 많은데 다른 쪽은 숲도 성글고 쓰러진 묵은 나무도 없고.

이에 비하면 평양의 '대성산혁명렬사릉,' '금수산기념궁전'은 별천지입니다. 김일성사망 후 북한은 수만금을 들여 주석궁을 성지로 꾸렸습니다. 전국각지에서 수십만 그루의 나무들을 떠다가 주변을 수목원으로 조성했죠.

나무가 죽으면 교체하고 또 교체하고. '대성산혁명렬사릉'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마다 나무심기를 해 빼곡하게 산림이 조성돼 있습니다. 황해도나 북쪽 국경지구에 비하면 호강하고 있는 셈이죠.

자연이 덜 파괴된 지역이 또 있습니다. 군 주둔지입니다. 노농적위대훈련, 농촌동원에 나갈 때마다 농담으로 주고받던 얘기가 생각납니다. '전쟁이 나면 적군이 목표를 찾을 필요가 없다, 나무가 무성한 곳만 공격하면 군 주둔지나 기지니까!'

북한인민들이 '고난의 행군'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를 때 북한은 농업실패의 책임을 씌워 서관희 농업담당 비서를 '남조선 간첩'으로 몰아 공개 총살했습니다. 김만금 전 농업위원장은 부관참시까지 했고요. 당시 죄목에 첨가된 것이 농촌에서 밤나무를 모두 찍어 바람막이숲을 제거했다는 것도 들어 있었습니다.

밤나무 때문에 부관참시 형을 받았는데 북한의 산림을 거의나 파괴하고 산들을 민둥산으로 만들어 군 기지들을 노출시켜 나라의 국방력을 극도로 약화시킨 국방위원회, 노동당 중앙 군사위원회 간부들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