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소간을 포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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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점점 추워지네요. 며칠 지나 김장철에, 또 겨울이 눈앞입니다.

지난 25일 북한은 6명의 남한주민을 남쪽으로 송환하기로 해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래웠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전혀 없었는데, 심지어 북한은 지난시기 남한어부들까지 납치해 세뇌 교육을 시키고, 공개인터뷰에 내보내 체제선전에 활용했는데 제 발로 북한을 찾아간 남한주민들을 다시 돌려보냈으니 말입니다.

이들에 대한 남한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6명의 주민들은 국내에서 일용직 생활을 하거나, 인터넷상에서 종북 활동까지 하고 월북할 결심을 했다고 하는데요, 지난 2009-2012년 사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거나, 중국 유람선에서 뛰어내려 도강하는 방식으로 밀입북 했습니다.

일부는 건강이 나빠지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 '북한에 가면 잘 살 수 있고, 아픈 몸도 요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동경심에, 또 어떤 사람은 사이버 상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쓴 뒤 자신의 필명이 노동신문에 소개되는 것을 보고 '입북하면 북한이 잘해 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 북한에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온성, 회령, 신의주, 원산 등의 수용소에 분산, 감금돼 최소 14개월에서 최장 45개월에 걸쳐 조사를 받았고, 최근 송환을 앞두고는 모두 원산수용소에 집결된 후 조사를 받았다고 하네요.

어떤 이는 '밀입북 하기 전 신장결석이 발생하여 북한에 치료를 요구했으나 치료해 주지 않았다,' '수용소에서 장기간 독방생활을 했으며 단 한 차례도 외출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진술하는 등 북한에 대해 실망과 극도의 배신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부부는 원산초대소 체류 중 동반자살을 하고자 남편이 처를 목 졸라 죽이고, 자기도 죽으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북한인민들에게는 북송장기수 이민모씨가 잘 알려져 있죠. 그는 '신념의 화신'이라는 칭호도 받았고, 북한 김가왕조를 찬양하는 시도 쓰는 등 북한체제에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집도 총리급 집을 하사받았고, 김부자 건강식품을 연구하는 기관에서는 그에게 필요한 영양식을 제작해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최고의 대우와 접대를 받았죠.

그런 그도 어느 날 갑자기 북한 언론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잘 모르시죠?

언젠가 그는 북한의 교도소를 한 번 방문하자고 당국에 제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교도소를 방문하고 그가 남긴 말이 자기가 서울에서 이런 곳에 감금돼 있었다면 아마도 살아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거죠. 당국에는 충격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그는 말년에 북한당국의 차가운 대접과 감시를 받다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다른 장기수들도 마찬가지죠. 비록 좋은 집에, 새 부인들도 맞아들였고, 어떤 이는 늘그막에 자식도 보아 김정일에게 찬양편지도 썼지만, 이들도 역시 숨 막히는 감시와 조직생활, 집단적 체제선전 이용에 신물이 나 불평을 많이도 했죠.

북한의 어느 영화대사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정미소간을 포위하다.' 하도 영화가 유명해져 북한사람들 속에서 '정미소간을 포위한다.'는 말은 쓸데없는 데를 포위한다, 하등에 쓸모가 없는 일을 한다는 대명사로 통하고 있습니다.

한번 자유를 맛본 사람은 그 자유를 결코 잊을 수가 없죠. 이번에 북한에 자진 입북했다 돌아온 남한 주민들도 천만다행일 겁니다. 북한이 이들을 잘 대접할 여유가 없는 상황에 정말 고마워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