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술날'을 맞으며

김광진∙미국북한인권위원회 객원연구원
2010.12.27
nk_new_year-305.jpg 설날에 평양의 한 식당에서 평양시민들이 설 음식을 먹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미국북한인권위원회 김광진 객원연구원이 전해드립니다.

사랑하는 북한형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있으면 설날입니다. 365일 쉼 없이 달려오다 지금 이시간이면 우리 모두는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며 잠시 휴식을 갖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뭔가 새로운 꿈과 희망도 가져 봅니다.

북한의 어느 한 영화에서 설날을 '술날'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날 술을 많이 마신다는 얘기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신년을 위해 사람들은 몇 달, 심지어 1년 내내 망년회 물자를 마련하고 설날을 정성껏 준비합니다.

어쩌다 외국 출장길에 좋은 술이 생기면 꽁꽁 감추었다가 이날 집을 방문하는 부모 형제들, 친지들을 위해 기꺼이 터뜨립니다. 어떤 이들은 귀한 식료품이나 당과류가 생기면 얘들의 온갖 성화를 물리치고 설날에야 내놓습니다. 찹쌀이 조금 생겨도 설날 찰떡을 위해, 입쌀이 한 움큼 생겨도 설날만큼은 자식들에게 풀죽이나 통 강냉이(옥수수) 밥을 먹이지 않기 위해 절약하고 아껴둡니다.

그래서인지 여느 때 없이 이 날은 음식도 많고 마을이 흥성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 형제, 마을의 유지들을 찾아 세배도 드리고 친구끼리, 직장사람들끼리 어울립니다. 술도 많이 마시구요.

술이 과해 사고도 많이 칩니다. 그리고 현실을 비관하는 불평불만도 그대로 표출됩니다. 그래서인지 북한에서는 술 풍, 날라리 풍을 경계하는 당국의 통제가 언제나 심합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자유북한방송에 소개된 술풍을 없애자는 북한의 한 재담내용을 보고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는 한 공장의 자칭 '3두 마차'겪인 자재과장, 경리과장, 기술과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매일과 같이 술판을 벌리는 이들의 술시중에 지친 자재과장의 처가 마침내 남편에게 짜증을 냅니다.

오면 뒷소리나 불평만 하는 경리과장을 받자하지 말라는 것, 그는 외국에 대한 환상만 조성시킨다는 것, '어느 나라에 가보니까 이게 희한하구, 저게 기가 막히고, 여자들은 짧은 치마를 깡총하게 입구 올리고 푼대로 올리고 다닌다'는 등 나이 든 사람이 애들 있는데서 별소리 다한다고 욕을 합니다.

그러자 남편이 '그 사람 한 달 외국 갔다 와서 두 달 비판 서 썼나!' 하면서 '유머'를 날립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누구한테 말하겠나, 우리끼리니까 한거야'라고 두둔합니다.

술만 마시지 말고 밖에 나가 축구, 탁구, 낚시질 등, 정서 생활을 하라는 처의 닦달질에 자재과장은 다리가 부실해 축구는 어렵고 중풍에 걸려 채를 제대로 못 잡기 때문에 탁구도 안 된다는 것, 낚시 대를 들고 있노라면 강이 전부 술로 보인다는 등 온갖 구실을 댑니다.

그들의 이름도 기가 막힙니다. 이름만 들어도 한잔 먹고 푸다나요. 자재과장은 고주태, 기술과장은 안주남, 경리과장은 탁배길, 탁배기라고 지우려다가 식료품이름 될까봐 탁배길이라고 지었답니다. 이 세 명이 동시에 비판 받을 때는 '탁배기동무, 고주태동무하고 안주남동무 끌고 다니 가서?'이렇게 욕을 먹는 다고 합니다. 어쨌든 '조용조용 모여 얘기도 소곤소곤하면서 술을 먹으면 한 나 제기될게 없다'고 자재과장은 외칩니다.

꿀벌노동을 해서라도 자재를 보장해야지 공장을 세우겠다는 지배인의 질책에 자재과장은 당당히 한 소리 합니다, 아니 할 거라나요. '아니, 꿀벌이야 날개라도 있디 않소. 우리 자재과에 십일 호 차(다리) 밖에 더 있나? 국가에서 자재보장 못해주는 조건에서 공장물품 좀 돌리자요!'

이는 평안도 사투리로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고, 끼리끼리 모여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술 추념만 하면서 불평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들을 교양할 목적으로 만든 재담입니다. 그럼에도 작품은 감출 수 없는 북한의 현실을 꾸밈없이 전달하고 있으며 풍자도 합니다. 새해에는 우리들의 삶, 북한의 현실이 조금이라도 낳아지는 해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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