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이야기] 노새가 가다가 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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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존경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 2012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60년 만에 온다는 흑룡의 해에 건강하시고, 희망을 잃지 마시고, 굳세게, 꿋꿋이 앞길을 헤쳐가시리라 믿습니다.

작년은 유난히도 복잡다단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유럽 발 재정위기로 전 세계경제가 몸살을 앓는가 하면, 일본에서는 대지진으로 큰 핵 참사를 당했습니다.

911 뉴욕무역센터 테러로 수천 명의 민간인을 살해한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서 미국특공부대에 의해 체포, 사살되었고, 오랫동안의 작전을 끝내고 미군이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휴대용 전자기기인 애플을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한 전설적인 기업가 스티브 잡스가 타개하면서 그의 인생과 열정, 창의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남한의 대중음악이 K-Pop의 이름으로 유럽과 미주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습니다.

작년 일어난 사변들 중 가장 역사적인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전 세계 독재자들이 대거 파멸된 것입니다. 독재의 탄압에 항거한 한 평범한 장사꾼의 자살시도로 촉발된 재스민 혁명은 튀니지의 장기 독재를 종식시켰으며, 이는 활화산처럼 타올라 북아프리카와 중동으로 번졌습니다.

결과 이집트의 무바라크도 물러났고, 왕 중의 왕을 자처하던 '아프리카의 미친 개' 가다피는 시민들에게 체포되어 처참하게 사살되었습니다. 그의 시체는 냉동실에 보관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참관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멘과 수리아에서도 독재는 심각히 위협받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제명을 다 살지 못하고 급사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아버지 김일성의 왕조를 그대로 물려받더니 병도 대물림해 심근경색, 심장발작으로 객사한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를 '순직'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혁명일화도 있죠. 김정일이 만든 겁니다. 어느 날 김정일은 수행한 간부들에게 갑자기 이런 퀴즈를 냅니다. '노새가 짐을 지고 가다 멈춰 섰다. 이유가 뭔지 말해보라우.'

어떤 이는 짐이 너무 무거워 섰다느니, 어떤 이는 목이 말라 섰다느니, 어떤 이는 호랑이를 봐 섰다느니, 그야말로 나올 수 있는 답은 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때 김정일은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합니다. '노새가 선 이유는 죽었기 때문이다.' 즉, 짐을 지고 가다, 끝까지 자기가 맡은 일을 하다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죠.

이것이 혁명일화로 소개되면서 한때 북한은 떠들썩했습니다. '장군님을 받드는 길에 노새처럼 살자.' '숨이 지는 날까지, 죽을 등 살 등 모르고 당을 위해 충성을 다하자.'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그때부터 순직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죠. 어느 한 김일성군사종합대학 교수는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다 순직했습니다. 어떤 이는 김 부자 구호나무를 불길에서 구원하다 불타 숨지고.

그런데 조국과 인민을 위해 순직한 노새들의 운명은 애초부터 다른가 봅니다. 어떤 노새는 다른 수십만이 굶어 죽을 때도 영생으로 묻히는데 수억 달러를 탕진합니다. 그리고 해마다 시체를 보관하는데 수십만 달러의 비용을 축냅니다.

한편 대다수의 노새들은 짐을 지고 가다가 서도 딱히 편히 묻힐 땅조차, 관조차, 입을 옷조차 없습니다. 굶어 죽으면 몇 명씩 거적 떼기에 싸 무명으로 묻힙니다.

수령노새는 죽어도 나라를 새끼에게 넘겨줍니다. 그것도 3대에 걸쳐서요. 인민도, 군대도, 당도, 나라도 영원한 수령노새의 것입니다.

그렇게 60년이 넘게 흘러왔습니다. 그동안 북한은 황폐할 데로 황폐해지고 군대와 인민은 모두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노새들이 수령노새를 위한 짐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짐, 가족을 위한 짐, 나라를 위한 짐을 지고 갈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