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물보다 진하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2014.02.24
 odlest_grandmother_305 남측 상봉단의 최고령자인 김성윤(96, 오른쪽) 할머니가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동생 석려(80, 왼쪽)씨를 만나 서로 얼싸안은 채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상봉이 실현되기 전까지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이산가족상봉, 지금 금강산에서 2차에 걸쳐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 우리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명제를 새삼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60년이 훨씬 지난 세월을 뒤로 하고, 강산이 6번은 넘게 변한 후에야 다시 만났지만 혈육의 모습, 형제의 모색은 숨길 수가 없더군요. 정말 핏줄은 절대 속일수가 없는가봅니다.

아들과 딸을 꼭 봐야겠다며, 죽어도 금강산에서 죽겠다며 침상에 누운 채로 금강산을 방문한 96세의 최고령자 김성윤할머니. 어떤 분들은 금강산에는 왔지만 건강악화로 마지막 작별상봉에 나오지 못하거나, 상봉 도중 탈진해 쓰러지기도 했었죠.

치매 때문에 딸 동명숙씨와 동생 정실씨를 알아보지 못했던 이영실씨도 결국 건강이 나빠져 작별상봉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오환씨는 여동생 옥빈, 옥희씨를 끌어안고 울다가 실신해 의료진의 응급처치를 받기도 했고요.

2차 상봉 시에 북측의 언니 홍석순씨를 만난 명자씨는 전쟁 당시 19살이던 언니가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간 약혼자를 따라 북한으로 가자, 언니 생사를 찾다 무당들에게까지 물어보니 언니가 죽었다고 해서 영혼결혼까지 치러줬다고 하죠. 그런 언니를 다시 만나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있는 최정수씨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수만리 태평양을 건너왔고, 남편을 따라 성을 바꾼 미국 국적의 김경숙씨는 15살 때 헤어진 오빠 전영의씨를 만나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번 상봉에서 또 특이한 것은 납북자 가족들도 만 난건데요, 1972년 14살의 나이로 돈을 벌기 위해 오대양61호를 타고 서해상에서 조업하다 북한 경비정의 공격을 받고 북으로 납북된 박양수씨는 이번에 부인과 함께 42년 만에 남측의 동생을 만났습니다.

또 다른 납북자 최영철씨도 남한의 맏형 선득씨를 만났는데요, 7남매 중 넷째인 최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탔다가 1974년 2월에 백령도 인근에서 수원33호, 32호와 함께 북한 경비정의 함포사격으로 납북되었습니다.

헤어진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혈육의 정을 나누면서도 납북어부들은 모두 ‘원수님의 은덕’, ‘당의 배려’를 선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는군요. 박씨는 흰 봉투에 담아온 훈장증과 훈장 3개를 꺼내 보이며 ‘내가 당의 배려를 받아 이렇게 잘 산다’고 했다죠.

최씨는 ‘원수님 덕에 만났습니다. 정녕 못 만나는 줄 알았습니다’라며 말끝마다 ‘원수님 덕’을 칭송했습니다. 그러면서 ‘처갓집에서 날 아주 반기고 잘해준다. 동네에서도 날 둥둥 떠받들어 준다. 우리가 못사는 줄 알았지요?’하면서 형을 안심시키려 했다는군요.

사실 북한에서 ‘남조선출신’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이들이 어떤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데, 몇 시간 밖에 안 돼는 순간, 그것도 6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까지도 정치적 이용물, 선전물이 되고 이를 의식해야 한다니 너무나도 야속하고 각박한 세상인 것 같습니다.

얼마나 나라와 국가, 정치지도자가 고약했으면 혈육을 60년이 넘도록 만나지도 못하게 하다니, 21세기의 비극, 불행도 이보다 더 한심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앞으로 어떤 정치적, 군사적 이유도 붙이지 말고 이산가족상봉만큼은 꼭 정례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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