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슬픔소조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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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열린 '전국 3대혁명소조 열성자회의' 모습.
지난 2013년 열린 '전국 3대혁명소조 열성자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서는 요즘 각 도․시별로 그리고 중앙기관, 기업소별로 3대혁명소조원들이 이룩한 과학기술성과, 발명을 소개하는 기술혁신전시회들을 잇따라 개최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황해북도, 남포시에 이어 철도성에서도 진행됐습니다.

대체로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경제 강국건설을 다그치는데서 새 세기 산업혁명의 척후병, 기수가 될 데 대한 당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현장에서 많은 성과들을 이룩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실지 3대혁명소조원들, 3대혁명소조운동은 간부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고 기피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면서요. 심지어 ‘3대 슬픔소조’, ‘3대 운명소조’로 조롱받고 있다고 합니다.

3대 슬픔은 배고품, 외로움, 그리고 어디에서도 환대받지 못하는 심리적 고통이라고 합니다. 이런 3가지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또 3대운명소조라고 하겠죠.

1970년대 초 시작된 3대혁명소조운동은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에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당시 암행어사라고 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죠. 실제 당의 파견원, 김정일의 파견원이라고 했고 노동당 비서국에서 발행한 파란 도장이 찍힌 파견장을 발급받아 가지고 현장에 나갔습니다.

목적은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이라는 3대혁명이 잘 수행되도록 지도하고, 도와주라고 했지만 숨겨진 또 다른 핵심 기능은 파견된 단위들에서의 간부들의 비리를 파악하고 동향을 매일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각 행정라인을 통한 여러 갈래의 기존 보고체계 외에 노동당 3대혁명소조사업부를 통한 직통 보고라인이 추가된 것이죠.

이 통제수단을 통해 김정일은 자기의 후계체계를 단시간 내에 확실하게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느 간부가 무었을 하는지 현미경처럼 들여다 볼 수 있었죠.

당시 소조원들이 자료를 묶어 보고한 덕을 본 간부들이 많이 속출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모두 벌벌 떨었죠.

소조원들에 대한 대우도 대단했습니다. 보통 군사복무 10년 해야 노동당에 입당하는데, 이들은 3년 동안 특권행세를 하면서도 대다수 입당하고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경력도 군 복무나 노동 경력과 대등한 대우를 했습니다.

소조식당을 따로 운영해 잘 대접했고, 현지에서 벌어지는 관혼상제 등 대사에는 모두 불려 다녔습니다. 거의 매일 음주폭식을 즐겼죠. 1년에 1-2번 휴가차 집에 올 때는 저마다 파견지의 특산품을 이고지고안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김정일체제가 다 들어서고 운동이 시들해지자 현실체험으로 바뀌었죠. 권한도 많이 약화됐습니다. 당 소조사업부 부서는 축소돼 조직지도부의 한 개 과로 편입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러던 소조운동이 김정은체제 들어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물론 과학기술 부문에 집중된 파견이라고 하지만요. 그런데 이 소조원들이 북한의 장기적인 경제난으로, 지금까지 노정된 현장에서의 불만으로 찬밥신세가 되고 있다죠.

3대혁명을 하는 게 아니라 3대 슬픔의 운명을 겪고 있다니 참 씁쓸한 현실입니다.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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