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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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통일거리시장에서 시민들이 야채를 사고 있다.
평양의 통일거리시장에서 시민들이 야채를 사고 있다.
ASSOCIATED PRESS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진행됐던 북미사이 비핵화 실무회담 내용들이 속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회담 하루 만에 결렬을 선언했었죠. 그리고 다음날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이런 ‘역스러운(역겨운) 회담’을 계속할 생각이 없다고 논평했습니다.

미 국무성은 반대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북한과 유용한 대화를 했다고 논평했었죠. 미국이 요구한 것은 북한이 보유한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인도하고, 핵시설과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 관련 시설을 완전히 해체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노이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제안했던 영변 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는 동시에 우라늄 농축활동 중단을 위한 영변 플러스알파 이행도 요구했습니다.

북한이 이 두 가지 요구를 충족시킬 경우 미국은 북한에 대한 석탄, 섬유수출중단 제재를 잠정유예하고 인도적 경제지원을 인정하며,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안전보장의 일환으로 종전선언도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제재 전면해제를 요구하면서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시험 중단, 풍계리 핵 실험장 폭파 등 이미 취한 조치들에 대한 보상도 요구했고, 한미군사훈련, 남한에 대한 미국의 첨단 무기 배치, 전략폭격기 등의 한반도 전개 중단도 요구했죠.

결국 서로 가격이 맞지 않았다, 주고받는 등가물에 대한 합의가 안됐다, 북한은 핵 포기 대가로 경제적 흥정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은 비핵화대가로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의 완전한 폐기를 원한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간 느낌, 다시 시작해야 하는 느낌이네요. 북한경제가 아무리 어려워져도, 인민들이 아무리 헐벗고 굶주려도 정권안보를 위한 핵 포기는 있을 수 없다는 자세로 보입니다. ‘총알과 사탕은 바꾸지 않는다.’는 시종일관한 논리를 유지하는 것이죠.

전례가 없었던 북미정상회담들, 이를 통한 비핵화 노력이 큰 관심을 받는 와중에 대북제재에 대한 회의적인 평가도 나왔습니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위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한 전문가가 언급을 했죠. ‘유엔의 대북제재가 회복 불능일 정도로 손상됐다.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은 최후의 순간에 몰렸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상황에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다.’

즉, 한쪽으로는 최대압박정책을 편다고는 했지만 트럼프대통령이 김정은을 여러 번 만났고, 북한에 외교관계 개선의 기회를 줘 세계 곳곳에서 제재를 피해 불법행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꼴이 됐다는 것이죠.

대북제재가 무력화된 근거로 북한에서 환율, 연료, 쌀 가격이 안정돼 북한이 고통을 겪고 있는 징후가 거의 없다는 점도 들었습니다.

사실 저 개인적으로도 이것을 미스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한 나라 무역의 90%를 틀어막았는데 항복은커녕 위기의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고, 물가, 환율이 안정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요?

상식적으로, 시장논리로 설명하면 시장에 대한 식량, 외화공급에 차질이 전혀 없다는 얘기입니다. 가격에 변동이 없다는 것은 수요, 공급에 변동이 없다는 얘기죠.

북한 주민들은 괴물을 ‘불가사리’라고 부릅니다. 혹시 북한경제가 수십 년간의 제재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과도 상관없는 ‘불가사리’가 된 건 아니겠죠?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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