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 결심하면 뭐든지 한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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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대표팀이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을 무관중 경기로 치르는 모습.
한국 축구 대표팀이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을 무관중 경기로 치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얼마 전 평양에서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희비극이 벌어졌습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전 남북경기가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있었는데요, 사상 처음으로 무관중, 무중계, 무취재 경기로 진행되었습니다.

남한에서 유명한 붉은악마 응원단 단 1명도 들어가지 못했고요, 심지어 실황중계는커녕 녹화중계도 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남한 선수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 평양순안공항에 3시간 넘게 잡아두었죠. 공항에 손님이 많아서가 아니라 텅텅 비웠는데 말이죠. 그리고 평양숙소에 도착해서는 가방 하나하나 모든 물건들을 다 꺼내보라고 했다나요. 양말에, 팬티 개수까지 확인하고요.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버스도 시속 70km이상은 달릴 수 있는 길이나, 어린이보호구역도 아닌데 30km로 달려 도착시간이 무려 1시간 걸렸다고 하죠. 경기 끝나고는 70-80km으로 달려 25분 만에 도착했고요. 모두들 정말 황당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든 남한선수들을 괴롭히고, 스트레스를 주어 경기에 지장을 주려고 했겠죠.

호텔에서는 외부와 전혀 통신이 안됐고, 또 호텔 밖으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죠. 덕분에 선수들은 잠만 실컷 자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네요.

휴대폰은 아예 반입도 하지 못하고 주중 한국대사관에 모두 맡겼죠. 결국 21세기인 지금 국가대표팀 간 경기를 휴대전화 문자로 관람하는 희비극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사실 남한에서 응원단이 한명도 가지 못해 5만 명을 채울 수 있는 경기장에 북한관중만 넘쳐나 위압감을 조성하고 일방적인 응원으로 불리한 경기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관중이 단 1명도 없는 일이 벌어졌죠.

당시 상황을 축구협회 부회장은 이렇게 전했습니다. ‘관중이 아예 없더라. 그게 더 겁났다. 이게 뭔가 싶었다. 싸늘한 분위기에 등골이 오싹하더라. 그런 곳에서 축구를 해야 했으니 선수들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실제 경기는 더 험악하게 진행됐습니다. ‘전쟁을 치르고 왔다, 다치지 않고 온 것이 가장 다행이다.’라고 할 정도로 손, 팔꿈치, 무릎 등을 쓰면서 거칠게 경기를 했다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손흥민을 마크하는 선수들은 절대로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네요. 때리든, 잡든, 밀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일, 왜 북한에서는 가능하고, 왜 북한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북한의 수령절대주의, 신격화된 수령의 우상화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수령이 체육강국 건설하라고 하고, 수령이 대중체육활성화에 관심을 가지고, 수령이 남한과의 축구에서 지면 안된다고 하면 하늘이 두 쪽 나도 관철해야 하는 게 북한체제의 속성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책임을 지거나 다치게 되죠. 수만 명 앞에서 지는 것도 싫고, 수만 명이 기립해 남한 태극기를 보며 남한애국가를 듣는 것도 수령의 권위에 해가 되고 용납이 안 된다는 거죠.

북한에는 이런 구호가 있습니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이 구호를 이렇게 바꿔야겠네요. ‘당이 결심하면 뭐든지 한다.’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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