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자가 본 인권] 단편소설 ‘고두산’ 북한 고난의 행군 그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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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북한을 떠나 남한에 보금자리를 튼 탈북민들 속에는 문학가의 꿈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은 북한의 실상, 참담한 인권실상을 그린 작품을 펴내 북한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을 한국에서 이뤄가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분은 함경북도 출신의 김설 작가인데요. 단편소설 ‘고두산’을 펴내 제23회 무영신인문학상 당선작에 선정됐습니다. 그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북한 현실을 그린 장편소설 집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서울에 김설 작가를 전화로 연결하여 소설가로서의 삶의 여정과 앞으로의 꿈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기자 : 안녕하십니까? 먼저 작가님의 단편 소설 '고두산'이 제23회 무용 신인문학상 당선작에 선정된 것 축하드립니다.

김설 :네, 감사합니다.

기자 :먼저 본인 소개 좀 간단하게 해 주시겠습니까?

김설 :저는 북한 함경북도에서 살다가 2010년 탈북해서 한국에 온 김설이라고 합니다.

기자 :단편 소설 '고두산'으로 한국 문학계에 등단을 하셨는데요. 고두산의 내용에 대해서 좀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김설 :고두산은 이게 상징인데요. 원래 고두산에 다 나무가 우거지고 거기서 참나무 버섯, 도토리 이렇게 나와서 사람들이 가서 줍고 버섯 따고 했는데, 북한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고난행군을 겪을 때 산이 다 민둥산이 됐잖아요. 사람들이 다 산을 뙈기밭을 다 일구었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진 것을 고두산에 비유해서 고두산이란 제목이 상징이거든요. 도끼질을 아무리 해도 봄이면 또 이렇게 아카시아 나무가 다 자라더라고요. 그것처럼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으려고 정말 안간힘을 쓰며 살잖아요. 결과적으로는 그때 죽어간 사람들이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거든요. 제가 이 소설 쓰려는 내용은 국가가 식량 공급을 다시 해줄 것이다 하고 기다리던 사람들, 국가가 "강성대국 문이 열리면 우리가 잘 살게 된다, 된다" 하니까 그걸 그저 기다리던 사람들, 1990년대 후반 국가에서 주는 것만 먹고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국가에서 식량 공급이 끊어지니까 살기 위해서 갈팡질팡하며 자기 입 건사는 자기가 해야 된다는 단순한 이치를 깨닫는데 좀 늦어진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을 옥이라는 한 집안 식구들이 식량난을 겪으며 한 명 두 명 죽어간 이야기를 제가 그렸거든요.

기자: 네,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다’ 결론적으로는 그런 사상을 담았네요.

김설: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는 주체사상 교육을 그렇게 받으면서도 국가에서 식량배급 주는대로 그것만 받아 먹고 살다 나니까 궁극적으로 먹고 사는 데 그걸 응용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죽었잖아요.

기자: 그러면 무영신인문학상은 어떤 상인지 좀 설명해 주세요.

김설: 이무영 선생이 일제 때 한국 농민문학이라는 이런 이정표를 세운 작가님이거든요. 이무영 선생님이 생가가 충청도에 있는데 이무영 선생님이 문학 작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지정된 문학상입니다. 단편 소설로만 지정된 상이에요. 제가 지난해 23회에 당선되었고, 올해는 24회이거든요.

기자: 그러면 이제 이우영 작가님이 언제 생존해 계셨나요?

김설: 이무영 작가님이 1908년에 태어나서 1960년도에 돌아가셨어요.

기자: 그러면 작가님이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김설: 제가 이 남한에 가서 살면서 먹는 걱정 없이 잘 사는 사람들 볼 때마다 그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북한에서 먹지 못해서 죽어간 사람들이 항상 떠오르고 너무 가슴 아프거든요. 정말 그 사람들을 잊을 수가 항상 없거든요. 그래가지고 옥이라는 한개 가정을 통해서 그때 그 사람들이 죽어간 이야기를 꼭 남기고 싶었어요.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고난 행군 시기에 정말 먹지 못해 굶어 죽어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가슴 아파서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기자: 남한의 늦은 나이에 입국을 하셔서 소설가로 등단하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었을 텐데요. 그 과정에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김설: 제가 북한에 있을 때부터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꿨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먹고 사느라고 언제 내 꿈을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사는 일이 급하니까 그래서 남한에 와서 대학, 대학원 과정 다 걸쳐가지고 공부해서 이론적으로는 배웠다고 하지만, 실제 습작을 거치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 내가 이렇게 마음속에 쓰고 싶은 사연이 너무 많으니까, 성급하고 그 다음에 지나친 감정 이입 때문에 자신을 객관화시키지 못했어요.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북한에서 제가 반평생 살면서 (형성된)가치관 이런 것을 바꾸기가 제일 어려웠어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며 주관적인 이런 판단을 객관적인 이런 시선과 객관적인 관점으로 바꾸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기자 :직접 겪으신 경험 이런 것들을 소설에 담고 싶은데 거기에 개인적 감정이 유입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김설 :네, 내 가슴이 너무 웅어리지고,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이 돼가지고 이걸 소설로 풀어쓰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정말 내 감정을 배제해야 되는데 너무 감정 이입이 되고 해가지고 너무 어려웠습니다.

기자 :지금 60이 넘으셨는데요. 그러면 늦은 나이에 남한에서 다시 공부를 하셨나요?

김설 :네, 제가 한국에 오면 제일 부러웠던 것이 젊은 친구들이 대학 공부한다는 게 제일 부럽더라고요.

저는 너무 늦은 나이니까 대학 다닐 생각을 못했는데, 한국 사회에 이렇게 살아 보니까 평생 교육 과정이 너무 잘 돼 있는 거예요. 내가 일하면서 늦깎기 공부를 해서도 새로운 꿈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걸 놓치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한국방송통신대학부 문학과에 입학해서 제가 직장 다니면서 공부했거든요. 그래 국어 문학과 나와서 소설 쓰려고 하니까 그래도 아직도 제가 미흡한 게 많아가지고 대학원 문예 창작 콘텐츠 학과에 진학해서 거기서 문학 석사를 했어요.

기자 :그러면 몇 세에 대학을 시작하셨습니까?

김설 :제가 오십대 중반 넘어 시작했어요. (웃음)

기자 :대담한 도전을 하셨네요. 북한에서는 문화의 꿈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김설 :네, 북한에서도 저는 항상 제가 소설가가 되겠다 하는 이런 꿈을 계속 꾸고 있었어요. 북한에서 생활전선이라고 하지요. 살아가는 일이 급하다 보니까 먹고 사는 일 때문에 언제 글 쓸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남한에 와서 이렇게 평생교육 과정이 너무 잘 돼 있어 가지고 제가 차근차근 국문학과부터 문예창작까지 배웠어요. 그런데 제가 배운 것도 배운 것이지만, 옆에 교수님들이랑 우리 같은 회원님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북한 사람은 제가 혼자였거든요.

기자 :공부하고 또 창작 과정에서 주변의 도움을 좀 받으신 것 같은데요.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전하고 싶은 분 있습니까?

김설 :네, 있어요. 제가 소설 쓰면서도 자신감이 없었거든요. 누가 이 탈북민의 소설을 읽어주겠는가, 또 누가 탈북민의 소설을 문학상 같은 곳에서 뽑아주겠는가? 이런 우려가 많았는데 제가 공부할 때 소설 창작론 배워주던 교수님이 있어요. 김종광 교수님이라고요. 그 교수님이 우리 과목 세미나에서 소설 화평에서 제 소설 딱 하나 뽑아주신 거예요. 얼마든지 이건 당선될 수 있다. 얼마든지 소설 쓸 수 있다고 정말 자신감을 안겨준 게 그 교수님이거든요. "경찰서에 안녕"이라는 이런 유명한 소설이라고 쓴 분이거든요. 한국방송통신대학 대학원 문예창작 콘텐츠 학과 소설 창작론 김종광 교수님이거든요.

기자 :북한에도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분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까?

김설 네 있어요. 북한에서 현재 작가의 꿈을 꾸고 있거나 이렇게 소설 쓰는 분들이 거기서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어요. 사상이나 정책이나 제도나 그걸 다 떠나서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어떤 생활 방식과 사람의 환경의 지배를 받잖아요. 북한이라는 제도의 환경 속에서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이런 진솔한 이야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어요.

기자 :작가님이 먼저 간 발자취를 보면서 북한에 있는 분들도 꿈을 가질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김설 :저는 장편소설을 지금 준비하고 있는데요. 남북한을 다 경험한 주인공들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인간이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서 어떤 심리적 갈등을 겪으며 좌절과 정체성의 혼란과 그런 두 제도를 경험한 인간의 이야기를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한반도 분단 때문에 자유롭게 자기 가족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삶의 애환을 담은 소설을 지금 준비하고 있어요. 세계가 이젠 하나의 지구촌으로 마음만 먹으면 아무곳이나 갈 수 있는 이런 때 한반도가 허리가 잘리우다 나니까 고향 떠난 사람은 고향을 돌아 못 가고, 가족을 떠나온 사람은 가족한테도 못 가고 이런 인간이 겪는 애환이 있잖아요. 우리 탈북민들도 이산가족이잖아요. 현재는 가족과 혈육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애환이 있잖아요.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애환 이걸 담은 소설을 지금 준비하고 있어요.

기자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애환,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북한의 시계를 되돌려 보는 작가님의 장편소설 많이 기대됩니다. 성공하시고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김설 :네 감사합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단편소설 ‘고두산’으로 남한 문학계에 등단한 함경북도 출신 김설 작가로부터 소설가로서의 삶의 여정과 앞으로의 꿈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워싱턴 디씨에서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