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전 헤어진 약혼자가 보고 싶소”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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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전 헤어진 약혼자가 보고 싶소” 강원도 안변 출신 김상용 씨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RFA Photo-정영

지금으로부터 71년전 발발한 6.25 전쟁으로 남과 북은 갈라졌고, 지금까지 휴전상태에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친척이 갈라졌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이별을 당한 사람은1천만명을 넘었습니다. 

  이산의 1세들은 이젠 나이가 들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고, 남은 사람들도 80, 9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1950년 11월 강원도 안변군에서 수많은 피난민들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온 김상용 할아버지도 있습니다. 김 할아버지를 통해 당시 강원도 일대에서 활동했던 동해안 유격대들의 이야기도 새롭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18살 나이에 동해안 유격연대 1대대장으로 활동했던 김 할아버지는 70년 전 헤어진 약혼녀를 지금도 그리며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김 할아버지로부터 이에 관한 사연 들어보겠습니다.   

·  약혼녀와 헤어지게 된 사연

·  동해안 유격연대 1대대장 김상용

·  “어머니, 3일만 기다려 주세요”

·  80명 유격대로 강릉을 점령하다

·  “약혼녀가 보고 싶소”

    약혼녀와 헤어지게 된 사연

  (내레이션)김상용 할아버지의 고향은 감이 많이 난다는 강원도 안변군. 해방 후 원산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원으로 배치 받은 곳은 어느 한 시골 인민학교였다고 한다. 거기서 만난 약혼녀와 6.25 전쟁시기 헤어졌다고 회고한다. 

  김상용: 원산 사범학교를 다니고 신고산 국민학교에 가서 6.25를 만났어. 그런데 북한군이 남침을 해서 나왔는데, 나는 애당초 북한을 원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38선이 생겨서 북한에 내버려지게 되었지. 

  사범학교를 졸업했으니 선생은 해야 돼. 그래서 사범학교를 나온 즉시 원산 명석국민학교에 선생으로 갔다가 사상이 좀 다른 그런 사람들아 있는 곳에 보내져서 신고산 인민학교라는 곳에 배치 받아 갔지. 이북에서는 국민학교가 아니고 인민학교라고 하니까, 1948년에 가서 졸업반 5학년 3반 선생이 되어 1년반동안 했지. 1949년에 방학이 되어 우리 학교에 같이 있던 여선생과 약혼을 했는데, (양가) 엄마들끼리 합의하고, 나는 나대로 만나서 유치원 때 제일 가까운 동창생이었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가까이 다니면 또 무슨 소리가 날까 봐, 1950년 1월 30일 일요일에 약혼을 했어.

  50년 6.25전쟁이 나고 내가 처가집에 찾아가니까 처가집이 1층 기와집이었는데, 2층에 사는 아저씨가  피난을 갔다고 그래, 그래서 피난을 갔다고 하니까, 더 이상 만나지 못하고 다시 집에 와서 나를 따르는 사람들, 약 80명이 내 밑에 있었는데, 그들을 데리고 월남을 했는데, 1950년 6.25가 난 다음에 국군이 북진을 했을 때 나는 대한청년단의 청년부에 소속되어 있었소. 대한청년단이 아주 무서웠어. 

  그런데 국군이 북진하다가 배타고 다 철수해 버렸어. 그러니까 나는 국군을 믿고 대한민국을 위해 일했는데, 어떻게 되겠는가? 김책이라는 북한의 부수상이 산에 숨어 있다가 쫓아 나와서 따라오는데 어떻게 하겠어. 

  동해안 유격연대 1대대장 김상용

  (내레이션 2) 피난민들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 김상용 할아버지는 동해안 유격연대를 조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상용: 그래서 어머니를 데리고도 못 오고, 난 애국청년들을 데리고 정규 군인도 아닌 비정규 군인 80명이 내 밑에 있었는데, 전부 다 무장을 하고, 인민군들로부터 빼앗은 무기들을 들고 있었소. 그런데 그때 처음 보는 국방군 군인이 나타났어. 그래서 내가 “누구요?”라고 했더니 자기는 대한민국 국군 정 상사인데, 나보고 이렇게 하지 말고 “부대 이름을 만듭시다” 하더라고. 군인이니까 잘 하더라구. 그 정 상사라는 사람은 말하자면 낙오자야. 이북이 고향인데, 국군 자기부대에서 떨어져서 부대를 찾아가던 사람이었지. ‘동해안 유경연대 제1대대 대대장 김상용”이라고 나를 대대장으로 임명했어. 나보고 유격대 대장을 하라고 하고, 자기는 고문관이라고 했어. 

   “어머니 3일만 기다려 주세요”

  (내레이션3) 김 할아버지는 3일 동안 피신하고 있다가 돌아오겠다고 어머니와 약속했지만,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고 한다.

  김상용: 안변이라는 곳에 있는 어머니에게 가서 “어머니 3일만 숨었다 돌아올게요. 기다려주세요” 라고 하고 나왔는데, 나는 대한민국까지 올 줄 몰랐어. 내가 무장인원들을 데리고 큰 길에 나오니까, 피난 간다고 하는 사람들로 인산 인해요. 1950년 11월 30일 경이었는데, 그때 피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도로는 대한민국까지 아스팔트는 아니지만, 철길은 더 놓여 있었어. 철로만 없을 뿐이지, 그래서 그 길을 타고 남쪽으로 걷기 시작한 거요. 그때 약 1만 6천명 정도 되는데, 내가 데리고 온 무장인원 80명을 피난민들 중간 중간에 배속시키고, 난 대장으로서 맨 앞에 섰지. 내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다 북한을 버리는 사람들, 고향을 버리는 사람들이 오라고 해서 모인 사람들이요. 훈련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 내 말을 잘 들었어. 내가 무슨 일이 있어서 “뒤로 전달”이라고 하면 내 말을 잘 들었어. 지금 앞에 다리가 있으니까 밀지 말라고. 모두다 내 말 들었어. 그때 내 동생이 14살인데 내 부관으로 있었어. 그리고 나는 대장으로 있었지.   

80명 유격대로 강릉을 점령하다

  (내레이션 4) 강릉시를 정규군이 공격해 점령하지 못했지만, 80명의 빨치산 인원으로 점령하게 되었다고 김 할아버지는 말한다.

  그 1950년 11월에 출발해서 1월 2일에 대한민국 강원도 묵호에 도착했어. 그래가지고 정 상사는 자기 부대를 찾아 갔어요. 그는 행방불명 됐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정 대위가 되어 있었어. 그 사람은 카빙총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살아서 우리 또 만납시다” 라고 헤어졌는데, 그때는 정신도 없었어. 

  그런데 묵호에 오니까, 언제 연락을 받았는지 수도사단 보충대라는 게 묵호에 있더라구. 그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가 묵을 24인용 천막을 6개나 쳐놓고, “대장님, 오늘 저녁 여기서 주무시고, 일단 정리를 하고 우리와 함께 북진합시다”고 해서 나는 그렇게만 알았어. 그래서 대원들에게 이야기 했소. 나는 “더는 남쪽으로 나가지 않을 테니, 남쪽으로 더 가고 싶은 사람은 여기서 다 가고, 나를 따라서 북진할 사람은 여기에 남으시오”라고 했어. 

  그렇게 해서 명부를 작성했어. 북진할 사람은 이름을 적고, 그리고 우리가 들고 온 총을 들고 또 북진하는데 따라 간거요. 그렇게 해서 강릉을 점령했어. 수도 사단 26연대 병력이 강릉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우리 유격대가 들어가서 강릉을 점령해 버렸어.   

“약혼녀가 보고 싶소”

  (내레이션5) 지금도 북한에 남은 약혼녀가 보고 싶다고 김 할아버지는 말한다.   

김상용: 내가 떠날 때 내 남동생은 14살, 나는 열여덟 살인데, 내가 찾아 갈 수 도 있지만, 포기하는 거요. 

보고 싶은 것은 한없이 보고 싶은데, 나도 이젠 늙어서 보고 싶어도 못봐, 다 죽었을 것이라고.  어머니는 이젠 100살도 넘었을 것이고, 내 여동생 이름은 김상해요. 그 여동생이 살아 있으면1945년에 태어났으니까, 이젠70~80은 되었겠지. 그리고 약혼자가 보고 싶소. 약혼자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선생인데, 1950년 1월 30일 같은 학교에 있었는데, 약혼을 했소. 약혼자와 함께 노래도 하곤 했지. 내가 보고싶은 것은 약혼자 밖에 없어. 나는 16살이었고 약혼자는 18살이었어. 그리고 12월 25일 생일이었어. 

  <내레이션 6> 김상용 할아버지는 지금도 약혼자를 그리며 피아노를 친다. 언젠가 만나면 70년 전 그때처럼 자신은 피아노를 치고 약혼자는 노래를 부르는 꿈을 꾼다고 말합니다.   

<피아노 음악>  

<탈북기자가 본 인권> 지금까지 강원도 안변군이 고향인 김상용 할아버지가 70년 전 6.25 전쟁 때 헤어진 약혼자를 그리는 사연 전해드렸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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