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탈북민들의 시민권 도전 이야기
2020.09.23
<탈북기자가 본 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사람은 사람이라 이름 가질 때 자유권을 똑같이 가지고 났다는 ‘자유평등가’에도 있듯이 사람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권리는 바로 국가를 통해 보장받는데,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자면 그 나라 신분이 있어야 합니다. 즉 국적을 취득하고 정식 국민이 될 때만이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북한의 청취자 분들은 미국에 간 탈북난민들이 미국 영주권이나 미국 시민권을 어떻게 취득할까, 궁금해 하실 것 같은데요.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에는 미국시민권 취득에 도전하는 탈북민들의 노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북한을 떠나 중국이나 제3국에 머무르는 탈북민들에게는 신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일단 북한을 나온 탈북민들은 무국적자이기 때문에 받아주는 국가로 가서 국적을 취득해야 합니다. 현재 남한에 간 탈북민들은 약 3만4천명, 이들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남한 국적을 취득하게 됩니다.
지난 2004년 미국에서 북한인권법(North Korean Human Rights Act)이 제정되면서 북한 주민도 난민으로 미국에 정착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2006년 6명의 탈북자들이 미국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후 2020년 상반기까지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220명에 달했습니다.
비록 다른 나라 난민들에 비해 많은 수는 아니지만, 이들은 먼저 온 탈북 1세로서 낯선 땅 임에도 불구하고, 억척같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데요. 그 가운데는 신분 해결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면 미국에 온 탈북자들은 어떻게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을까?
미국 정부는 미국에 정착하는 북한 난민들에게 입국한 1년 뒤에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주고, 입국해서 5년이 되면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들 중에는 이미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지금도 시민권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젊고 살림을 책임진 가장들일수록 시민권 취득 열의가 높습니다.
왜냐면 미국 시민권을 따면 대학 입학이나, 직장 취득,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미국 시민권을 따면 미국 정부로부터 신변 안전 보호를 받게 됩니다.
미국 동부 메릴랜드 주에 정착한 올해 50대 중반의 탈북민 김씨 부부도 시민권 도전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23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비록 언어 때문에 어렵지만, 두만강을 건너던 정신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직접 그들로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질문: 지금 시민권 공부를 영어로 하고 있는데 힘들지 않습니까,
김씨: 힘들어도 해보야지요.(웃음)
질문: 미국에 입국한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김씨: 우리가 2014년에 왔으니까, 이제는 6년이 넘었지요.
질문: 6년 넘었으니까, 이제는 시민권 신청을 해도 되지 않습니까?
김씨: 네 신청 하려고요.
질문: 2014년에 들어오셨으니까, 2019년에는 할 수 있었네요.
김씨는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2014년에 미국에 입국했습니다. 두 아들은 지난해 시민권 신청을 했고, 올해 1월과 5월에 각각 시민권을 취득했습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미국 정부기관이 과거에 비해 업무진행도가 늦어지는 등 차질을 빚고 있지만, 시민권 시험이나 심사와 같은 업무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씨의 아내 이모씨도 시민권 공부에 도전했습니다.
질문: 북한과 중국에서 고생하시다가 미국에 와서 시민이 된다는 그 심정은 어떻습니까,
이모씨: 너무 감개무량하고, 벅찹니다. 내가 진짜 이 나라 국민이 되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남편 먼저 하라고 하고, 나는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민권 따야 한다고 해서 지금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한달 됐어요.
김씨의 아내 이모씨는 환자입니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숨어 살면서 사경의 위험을 몇 번씩 넘기고, 험한 일을 하면서 얻은 병인데, 미국 정부로부터 의료혜택을 받자면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모씨: 컨디션 조절을 하면서 공부를 많이 해야지요. (신청하고)10개월 있다가 인터뷰하는데, 100문제 외우고, 가족관계 공부를 해야 되는 것이고, 이 나라를 위해서 총을 메고 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도 다 해야 하지 않습니까,
젊은 탈북청소년들은 시민권을 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나이가 지숙한 탈북민들에게는 하나의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2년전에 시민권 시험에 통과해 지금은 당당한 시민권자로 살아가는 미국 중부에 사는 한모씨는 시민권 시험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모씨: (시민권 시험은) 100문제인데, 그 안에서 10개만 나옵니다. 나는 시험에서는 처음에 단방에 합격되었습니다. 그건 아주 공부를 많이 했어요. 몇 년 동안 했으니까, 10개를 물어보는데, 시험문제를 물어볼 때 눈감고 문제가 떨어지면 답을 딱딱 댔지요. 하면서 손가락으로 꼽았지요.
여섯 문제를 맞추니까, 더 안하더라고요. 그리고 리딩(읽기)이 있습니다. 읽는 것도 3문제인가 나옵니다. 처음에 읽으니까 더 안해요. 그리고 라이팅(쓰기) 하는 것도 3문제인데, 처음에 딱 쓰니까, 더 안해요. 시험은 흐지부지 없이 끝났습니다.
나이가 들어 미국에 온 탈북난민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언어 장벽입니다. 시민권 시험도 모두 영어로 치르기 때문에 일명 ‘시민권 공부 요령’도 생겼다고 합니다.
한 모 씨: 처음 인터뷰에서 떨어져서 두번째 만에 통과되었지요. 인터뷰에서 떨어지면 시험을 다시 치지 않습니다. 인터뷰만 하는데, 한시간 동안 10개를 물어보는데, “세금 안낸 게 있는가?”라고 물어보는 것을 잘 모르니까, “예스”라고 말했지요. 그러니까 심의관이 “이 사람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계속 질문하기 시작했는데, “공산주의에 참가한 적이 있는가?”라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공산당에 입당한 적이 있는가?”라고 물어보는 게 있습니다.
“노”하면 “컴뮤니즘이 무엇인가?” “테러리스트에 가담한 적이 있는가”라고 물어봐서 “노”라고 대답했는데, “공산주의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는데 말을 못했지요. 그게 공부 하지 안했으니까, 그런데 설명 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때는 몰라서 대답을 못했는데, 공부해보니까 “노 프리덤 칼-맑스 아이디어”이거든요. 그래서 나는 “차이나 노스 코리아 샘 컴뮤니스트(China, North Korea same Communist)”라고 말했지요. 그게 맞지요. 애플리케이션에 100개 문제가 나오는데, 그게 어렵습니다. 물음 맨 처음에 “Have you been~”이라고 하면 무조건 “노”입니다. 그게 공식입니다. 공부하는 것도 요령이지요. 쓰는 것이랑 연습 많이 해야 합니다. 노력 많이 해야 합니다.
질문: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기쁨은 어떠했습니까?
한씨: 눈물이 나오지요. 감격이 어마어마 하지요. 신분때문에 너무 마음 고생을 하여 눈물이 나오지요.(웃음)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 여행할 때도 ‘North Korea'라는 북한 출신이라는 표기가 없는 미국 여권을 가지고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 신변안전에도 유리하다고 그는 말합니다.
미국 탈북자들이 시민권 취득을 돕고 있는 수도 워싱턴 DC에 기반을 둔 법률사무소 폴리 호액(Foley Hoag LLC)의 톰 바커(Thomas Barker) 변호사는 지금까지 36명의 탈북자들에게 미국 영주권과 시민권 취득을 무료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톰 바커 변호사는 왜 미국 탈북자들에게 무료 변호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하는 자유아시아방송 질문에 “북한 주민들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미국인들이 돕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톰 바커(Thomas Barker): I think because I want them to know, I want North Koreans to know that Americans want to help them have better lives. Because I want to help improve the human rights situation in North Korea.
톰 바커 변호사는 앞으로도 미국에 오기를 원하는 탈북민들에게 무료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