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동독난민 이야기” - 피터 훼흐터 사건과 데니스 바크


2005.06.30

독일 베를린시에 있는 짐머 거리 (Zimmerstrasse)는 독일인들 사이에서 피터 훼흐터 기념 조형물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 조형물은 피터 훼흐터 (Peter Fechter)가 베를린 장벽을 넘다가 총살된 자리에 세워져 있습니다.

1962년 당시 열여덟 살이었던 이 동독 청년은 베를린 장벽의 보수 작업을 맡은 벽돌공이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후 1년 동안 훼흐터는 서 베를린에 있는 누나를 만나기 위해 탈출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62년 8월, 같이 일하던 친구 헬무트 쿨베이크 (Helmut Kulbeik)와 함께 마침내 장벽을 기어 올라갔습니다. 친구 쿨베이크는 무사히 장벽을 넘어갔지만, 훼흐터는 동독 국경수비대가 쏜 총에 맞아 장벽을 넘지 못하고 바닥에 다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훼흐터는 피를 흘리며 살려달라고 외치다가 한 시간 만에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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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FA/Hoover Institute

훼흐터의 죽음은 당시 스무 살 청년이었던 데니스 바크 (Dennis Bark)씨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바크 씨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바크 씨는 동생과 함께 서독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서 베를린을 둘러본 바크씨 형제는 동베를린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공산주의 세계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동베를린은 관광객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버크씨는 몇 시간 만에 거의 쫓겨나다시피 하며 서둘러 동베를린을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동독 국경수비대 검문소를 지나 서독 지역 미군 검문소 쪽으로 향하는 순간 바크 씨는 갑작스런 총소리를 들었습니다.

Bark: 갑자기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더니 동독 국경 수비대원이 기관총 을 들이대면서 우리들더러 ‘거기 서!’ 하고 소리 지르더군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장벽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한 사람은 막 장벽을 넘어가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장벽을 기어 올라가다가 총에 맞아 뒤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냐고 계속 물어봤지만 동독 수비대원은 계속 움직이지 말라고만 했습니다. 우리는 한 15분정도 그런 상태로 붙잡혀 있다가 풀려났습니다. 몇 미터 앞에 서 베를린과 동베를린을 가르는 흰 선이 바닥에 그어져 있었는데, 이 선 넘는 순간 이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긴장했었거든요.

서 베를린 지역으로 빠져나온 버크 씨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들 총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났는지 궁금해서 달려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신주에 올라가 장벽 너머를 내려다 봤고, 서독 경찰과 미군 병사들은 장벽을 직접 기어 올라가 상황을 살폈습니다. 장벽 너머로부터는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에도 한참동안 버크씨는 이 충격적인 사건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Bark: 그 사건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1962년 8월 그 당시에 저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3년 동안 연극 연출을 전공했었는데요, 이 사건을 겪고 난 다음에 전공을 역사로 바꿨습니다.

피터 훼흐터는 죽음을 각오하고 자유를 찾아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고 했는데, 저는 그 자유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독일 자유베를린 대학에 가서 독일 역사를 전공했습니다. 1970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난 다음에 지금까지도 저는 독일 역사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버크씨는 자유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좌익 운동권의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학생들이 이념에 치우쳐서 자유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독일 분단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한 버크 씨는 1989년에 독일의 분단과 통일 역사를 다룬 책 서독 현대사를 펴냈습니다. 이 책은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남한에서도 번역돼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김연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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