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이 정치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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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신용건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신용건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용건: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남북한의 예술인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남한에서 예술인 하면 음악, 미술, 문학, 영화 등 전반적으로 문화를 창작하는 사람들을 말하거든요. 북한의 예술인은 남한에서 연예인이라고 하는데요. 한국에선 연예인이 되는 방법이 굉장히 다양합니다만 주로 전문적으로 연예인을 양성하는 기획사를 찾아가 시험을 치르기도 하고요. 요즘엔 특히 공개적으로 가수를 뽑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유명해지기도 하죠. 선생님도 자주 보셨죠?

신용건: 한국에 오니까 그런 TV 프로그램들이 많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것은 미스터트롯, 싱어게인, 전국노래자랑 이런 것들이 있고요. 이런 기회들을 통해서 가수나 배우가 될 수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승재: 솔직히 그런 프로그램이 유행한 지 10여 년 정도 돼서 재미 없을 때도 됐는데, 계속해서 노래 잘하고, 재능 넘치는 사람들이 새로 나와서 인기가 많더라고요.

신용건: 맞아요. 제가 한국와서 느낀 것이 ‘야! 대한민국에 어쩜 저래 노래 잘하는 사람이 많냐’ 프로그램마다 다른 사람들이 경연하는데 다 무명가수라고 하네요. 이런 것을 보면서 느낀 본질은 ‘소질이나 기량이 있고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자기 재능을 꽃 피울 기회는 얼마든지 있구나’ 이게 막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 겁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다른 사회적 요인들이 있겠죠. 누구나 떠난다고 히말라야 정점을 오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누구든 떠날 수 있다는 겁니다. 최소한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 볼 자유와 기회가 있다는 거죠.

이승재: 저는 말씀하신 것처럼 가수나 배우가 누구나 도전해볼 순 있지만 다 잘 되는 게 아니라서 좀 우려되는 바도 있어요. 여기서 이 직업은 북한처럼 엘리트로서 권력과 부에 얼마나 더 가까워지는지 보다 대중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는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 알려져 있는지, 사회적 평판이 얼마나 좋은지가 중요한데요. 이런 것들에 따라 부는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는 거죠. 하지만 인기라는 것이 원한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어른들은 걱정이 많거든요. 자기 노력만으로 오를 수 있는 엘리트도 아니고요.

신용건: 네. 저는 북한에선 사실 ‘예술인’ 하면 관심 밖이었어요. 삽살개처럼 영수들의 주위를 맴돌면서 애교나 떠는 풍각쟁이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음, 북한에선 가수라고 하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고정된 인물 뿐입니다. 그러니 착각하건대 그 이상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북한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무대에 오르기까지가 힘들고 그래서 일단 예술인으로 등단해서 드러나기 시작하면 그들을 자연스럽게 엘리트라고 인식하게 되는 겁니다. 같은 기량을 가진 두 사람이 남과 북에서 각각 예술인이라는 목표를 향해 떠났다면 북한의 도전자는 한국 도전자에 비할 바 없이 상상 이상의 사회적 변수들을 더 이겨내야 합니다. 토대, 신체적 조건은 물론이고 매일의 일상생활까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긴장해야 하는 것이 북한의 연예인들 아닙니까. 올라갈 수록 어느 순간 벼랑에서 떨어질 위기가 항시 따르는 것이 북한 예술인들의 운명입니다.

이승재: 한국의 연예인되는 것이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면 북한의 예술인들은 더 까다로운 삶을 견뎌야 하네요. 보통 어려운 직업이 아닌데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예술인이라면 요새 누가 있을까요?

신용건: 글쎄요. 이전에 관록있던 명배우들은 세상에 없고요. 신진배우로서 인민들의 감성을 사로잡은 사람들은 많지 않은데요. 그중에 최근 장명호라는 배우가 있었어요. 북한주민들에겐 이깔(백두의 이깔나무)이라고 불렸습니다. 인기가 참 많았는데요. 그런데 장성택이 그 영화를 보고 자기 조카사위로 가문에 들였거든요. 바로 노옥산회사의 사장을 시켰죠. 하지만 어떻게 됐겠어요? 장성택 숙청 때 첫 번째 숙청대상으로 없어지고 말았죠.

이승재: 예술인으로서 엘리트가 되고 그 역할이 점점 더 커지면서 정치적으로 엮인 사례군요.

신용건: 결국엔 엘리트로서, 예술인으로서 정치에 엮이지 않은 사람들이 적어요. 리설주도 예술인 아닙니까? 어린시절부터 금성학원부터 시작해서 체계적인 예술인 양성을 받고 그렇게 생활하다 김정은의 정식부인이 됐고요. 또 현송월도 왕재산예술단 때부터 시작해서 예술 엘리트로 살던 중에 정치에 엮이게 되고, 현재는 자기가 배운 예술과는 거리가 먼 정치외교에 뛰어들게 되지 않았습니까? 따지고 보면 참 우스운 일입니다. 그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얼마나 잘하고 혁명을 하면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그러니 결국 이것은 영수와 엮인 개인적인 치정관계라며 외신들이 보도하고 비판하는 건데요.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그런데 사실 세상에는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예술인들이 꽤 많거든요. 저는 밥 딜런이라는 미국의 가수를 좋아합니다. 1960년대~1970년대 활동했던 가수이자 작곡가인데요. 자신의 정치적인 의견을 가사에 소신있게 담았고 미국 서민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죠. 시간이 많이 지나 2016년엔 노벨문학상도 수상했어요. 요즘 한국에선 방탄소년단이라는 가수들이 전 세계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죠.

신용건: 저는 러시아의 작가 솔제니친을 존경하거든요. 구 소련시대도 독재사회주의 체제가 아니었습니까? 솔제니친은 구 소련의 사회주의 실상과 체제에 대해 작품을 썼어요. 자기 글로써, 억압받고 신음하는 사회주의 주민들의 생활상을 생동감있게 그려서 그것을 구 소련 밖의 세계에 전달했습니다. 그로서는 대단한 혁명가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죠. 저도 북한에서 그런 희망을 가지고 글을 쓰다 탄압을 받았고 그것이 탈북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아직도 제가 써가지고 나온 글이 언젠간 고발의 목소리가 되어 전 세계로 전달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제니친 그분이 제게는 존경의 대상입니다.

이승재: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요. 저는 예술이란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 내 맘을 위로해 주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상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신용건: 예술인이라면 당연히 세상을 바로 볼 줄 아는 지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술 그 자체가 인간의 고상한 감정을 그려서 선과 악을 구별하고 아름다움을 지향하기 위한 문화생활의 일부거든요. 제가 이 기회를 빌어 예술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국민이 사회의 눈과 마음이라면, 예술인들은 사회의 입이고 목소리입니다. 그러니 그분들 모두가 세상을 바라보는 사회의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국민의 가수로 그렇게 자기 책임과 사명을 다하기를 기대하고 믿을 뿐입니다.

이승재: 누군가가 창작한 노래를 부르고 작품을 연기하는 것은 남북한과 세계의 예술인들이 모두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듣는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은 다르죠. 바로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느냐의 차이 때문입니다. 엘리트로서 예술인이 중요하고 사회에 꼭 필요한 이유는 바로 예술 안에 그 무엇 때문이겠죠. <남북 엘리트의 역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