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과학자들의 일탈

서울-이승재 yis@rfa.org
2021-04-09
Share
북한 과학자들의 일탈 평안북도 정주시에 있는 농업성 가금생물약품연구소에서 직원들이 조류 인플루엔자(AI)를 연구하는 모습.
연합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 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조현: . 안녕하세요.

이승재: 오늘 첫 방송인데요. 청취자 여러분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조현: 저는 평안남도 평성에서 살다가 2011년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입니다. 평성수의축산대학을 졸업했고요. 속도전, 청년돌격대에 가서 10년 일하면서도 노동당원이 됐고, 대학을 졸업하고 3대혁명소조 생활을 했습니다. 이른바 북한에서 간부가 될 수 있는 코스는 다 밟은 거죠.

이승재: 그럼 북한에선 엘리트라는 자부심도 있었을 것 같은데 한국에 와서 엘리트의 개념이 또 많이 다르게 느껴지셨겠어요?

조현: 말 자체도 생소했죠. 한국에서 엘리트는, 사회가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거나 혹은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이더라고요. 북한의 엘리트는 사회가 인정한 사람이 아니라 노동당이 인정한 사람이거든요. 또 한국은 어느 분야의 엘리트가 되려면 시험을 보거나, 각 분야의 지도자가 되려면 선거를 한다든지 하는데 북한은 계급적 토대가 우선되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북한의 엘리트는 선택 당하고 한국의 엘리트는 내가 선택하는 것, 그런 측면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승재: 간단하지만 명확한 차이네요. 물론 한국의 엘리트라고 해서 선택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닙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때론 여러 번 실패를 겪을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기회는 균등하다는 거죠.

조현: . 그렇습니다.

이승재: 선생님 이력을 보니 북한에서 축산전문가로서, 협동농장경영위원회에서 일하셨어요. 한국에서 보면 과학자라고 할 수도 있는데, 북한에선 한국과 달리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배치 받은 대로 일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여기 와서 같은 일을 하는 걸 보면 주어진 직업에 애착이 크셨던 것 같아요.

조현: 제가 축산전문가로서 여기 와 보니, 한국의 연구자들이나 전문가들은 자기 분야에 아주 정통하고요. 한국에선 능력이 있다면 내가 연구하는 일에 대해 정부지원을 받거나, 국가연구기관 같은 데 시험 봐서 들어가 일할 수 있어요. 자기 전문성을 가지고 공부를 더 하면 결국 내 것으로 만드는 연구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 꼭 해야만 되는 일에 한해서만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 내가 축산 전공을 했다 해도, 내가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호미 들고 강냉이를 심어야 하고 물에 빠져 일을 해야 합니다. 그 다음, 일체 재정지원이 없어요. 그러니 북한에 살 때는 내가 능력이 탁월하고 뛰어나서 우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주면 먹고 안주면 못 먹는, 그런 식이었죠.

이승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과학자는 세상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가치 있는 직업이고요. 게다가 북한 사회라면 농축산연구는 가장 우선되어야 할 문제거든요. 인민생활과 바로 연결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조현: 이 분야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정말 밤을 새워 연구하고 뭐하고 해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구사 생활비가 한 달에 5~6천원, 상급연구사라면 7~8천원 주는데 그거 가지고 쌀 2kg밖에 사지 못하거든요. 연구소에서 나와서 다른 일을 하려 해도 연구과제만 수행하게 하고, 사무실에 붙잡혀 시키는 일만 해야 하니, 연구사들의 생존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거죠.

이승재: 그들이 해야만 하는 과제가, 결국 노동당을 위한 연구일 텐데, 제가 보기엔 그렇게 단순한? 속된 말로 값싼 연구는 아닐 것 같은데요.

조현: 예를 들어 철강공업이다 하면, 철 원료를 만드는데 코크스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돈이 없어 코크스를 수입하지 못하니까, 코크스를 사용하지 않는 제련법을 연구하라고 하고요. 비누를 생산하려면 중국에서 콩기름을 수입해야 하잖아요. 기름 안 들어가는 비누를 만들거나 수유기름 같은 것을 사용해서 비누를 만들라는 거죠. 결국 모든 것이 자력갱생할 수 있는 연구를 하라는 겁니다.

이승재: 한 달에 쌀 2kg이 아니라 대단한 실력자에게 제대로 대우하고 진행해야할 연구네요. 결국 선생님도 이런 문제 때문에 탈북하셨을 텐데 북한에 남아있는 과학자들은 계속 같은 것들을 고민하겠네요.

조현: 핵이나 미사일, 해킹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제 좀 대우를 좋게 받아요. 일반인들이 차도 타고 해외여행도 하는 한국에 비해서는 사실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들은 실질적으로 먹는 것 걱정은 안 합니다. 다른 과학자들에 비해 조금은 대우를 더 받습니다. 그러나 같은 과학자라 해도 그런 쪽이 아닌 국가과학원에 있는 일반 연구소들, 수학연구소, 자동화연구소, 이런 데는 대우를 거의 못 받죠. 실험실에서 연구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배급을 안 주니까 힘들어 죽게 되기도 하고 이제 과학자들이 많은 일탈을 하고 있습니다.

이승재: 일탈이요? 과학자들의 일탈이라면 어떤 일탈인가요?  

조현: . 예를 들어 평성 과학단지에는 미생물연구소가 있는데요. 여기서 술을 만듭니다. 여기서 나오는 술균을 가지고 맥주를 만들어요. 미생물연구자들이 만든 수제맥주가 정말 맛도 좋은데요. 한국에서는 북한의 대동강맥주가 그렇게 맛있다고 얘기하는데, 마셔 보면 이들이 만드는 맥주가 더 맛있습니다. 이 사람들, 맥주 장사 해가지고 집도 되게 크게 짓고요. 돈도 엄청 벌었어요. 또 청화제련이라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미생물을 이용해서 한번 제련된 광석, 그러니까 금을 다 뽑아 내고 버린 광석에서 또 금을 뽑아 내는 겁니다. 광석 1톤에서 금 5g씩 더 빼내는 기술이 있어요. 그런 기술 가지고 돈벌이를 하죠. 이런 일탈을 하는 겁니다.

이승재: 일단 앞뒤 상황을 다 빼고, 선생님 하시는 말씀만 들어보면 자기가 가진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는 일 같네요. 국가의 목적만 아닐 뿐이지, 안 그런가요?

조현: 국가를 위한 일보다는 이런 사례들이 엄청 많죠. 또 화학연구소 일하는 사람들은 향수, 샴푸 이런 것들 몰래 만드는데요. 중국에서 외국산 병들 수집해다가 자기가 만든 향수 넣어서 팝니다. 북한 정품하고도 차이가 별로 안 나서 돈도 많이 벌었어요. 그러니, 원래 과학자들이란 과학연구를 해서 연구성과를 가지고 대우도 받고 벌어 먹고 사는 것이 정상이지만, 연구보다는 돈벌이라는 일탈을 해서 모든 정력을 그쪽에 쏟는 겁니다.

이승재: 먹고 사는 것 조차 보장되지 못하니, 북한 과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지금의 변화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다만 다른 사회에선 너무 당연하고 오히려 박수받아야 할 연구와 개발이 북한에선 일탈이 되고 말았다는 게 아쉽네요.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