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말 한마디

서울-이승재 yis@rfa.org
2021.04.30
배우의 말 한마디 26일 오전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배우 윤여정의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 조연상 수상 장면을 시청하고 있다.
AP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 안녕하세요.

이승재: 이번주 한국 언론을 꽉 채운 사람이 있습니다. 74세의 배우 윤여정 씨가 미국에서 열리는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한국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작품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탔어요. 배우로서는 최고의 명예죠.

조현: 아카데미 영화제가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보는 거잖아요. 상은 못 타도 후보에 이름이라도 한번 올리고 싶어하는 대회잖아요. 우리 한국 배우가 상 탔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이승재: 아카데미상이 물론 단순한 인기로 주는 상은 아닙니다만 국민 엄마’, ‘국민 할머니라고 불릴만큼 다작을 했던 배우가 탄 상이라 온 국민이 내 일처럼 기뻐하는 것 같네요. 아카데미에서 윤여정 씨의 수상소감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유럽사람들이 내 이름을 여영’, ‘유정이렇게 잘못 발음하는데 오늘은 내가 다 용서하겠다”, 우스갯소리처럼 말했지만 아시아인들의 이름을 대강 부르는 일부 서양인들에 대한 일침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내 첫 감독님이셨던 김기영 감독님은 천재였는데 그 분이 살아계셨다면 기뻐하셨을 거다”, 이렇게 외국 사람들은 잘 모르는 한국 영화계의 거장을 소개하면서 한국 영화의 격을 높였다, 이런 평도 있고요.  

조현: 윤여정 씨 뿐만 아니라 영화제에서 상 타는 사람들 수상소감이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북한은 상 타는 사람에게 수상소감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아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만 해도 인종차별, 전쟁 중에 있는 나라, 피난민 문제들에 대해 잊지 말자는, 여러 가지 뼈 있는 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사실 아카데미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보고 누가 상 타는가 주목하는 영화제라, 여기서 상 받는 사람들 한마디 한마디가 국제사회에 영향을 주거든요. 북한에서야 말을 못해서 혁명화를 갔으면 갔지 말을 잘 해서 좋은 영향을 줬다거나, 더 잘 된 사례는 없는 거 같아요.

이승재: 그렇군요. 말씀하신대로 유명한 배우들은 사회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소신을 밝혀 대중의 지지를 받기도하는데요. 북한에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들이 꽤 있죠?

조현: . 다 말하긴 어렵지만 1980~90년대 민족과 운명이라는 대작을 찍은 배우들이 인기있습니다. 오미란, 유원준, 김순희 이런 배우들이 있고요. 윤여정 씨하고 아주 비슷한 느낌의 배우가 있는데요. ‘유경혜그분도 남한 출신인데 할머니 역할을 많이 맡았어요. 화술이 아주 독특해서 정말 크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10~20년간 북한에선 영화도 특별하게 나오는 게 없어서요. 요즘엔 많이 활동하고 그래서 유명해지는 배우는 없습니다.

이승재: 그러게요. 탈북민들에게 북한 배우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 예전에 활동한 배우들을 말하더라고요. 한국에선 오래 활동한 분들도 많습니다. 80대가 된 이순재, 김혜자 배우도 여전히 연기하고 계시고요. 배우 김희애 씨는 20대 때부터 큰 인기를 얻었는데 지금 50대 중년여성이 되어서는 그때보다 더 깊이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요. 반면에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신인배우들도 계속 나오고 있고요.

조현: 북한 배우들은 가난합니다. 배우들이 월 5천원 정도 받는데요. 그것 가지고 쌀 1kg밖에 못 사거든요. 그럼에도 다른 일 못하고 강제로 영화 일에 종사해야 되고요. 지금도 그렇지만,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는 배우들도 거리 나와 구걸하고 그랬어요. 남의 결혼식 가서 웃기는 얘기하면서 돈도 받고 밥도 얻어먹고 했고요. 1990년대 이춘희 배우와 몇몇 배우들이 가난 때문에 성매매 사건에 얽혀 사회적으로 파장도 컸습니다. 그리고 북한 배우들은 말을 조금만 잘못해도 혁명화에 가고 그래요. 탄광이나 광산, 건설장, 농촌, 힘든데 나가 육체노동을 하면서 감시를 받아요. 북한의 유명 배우 치고 혁명화 안 갔다 온 사람이 없습니다. 김윤옥이라고 민족과 운명에서 박정희 역을 맡은 배우는 일본에 살다 북한에 와서 배우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말을 잘못했어요. 일본보다 북한이 못 산다고 얘기했다가 혁명화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승재: 북한에서도 배우란 주목받는 직업이기 때문에 감시와 제재를 더 받는 거군요.

조현: 맞아요. 그렇습니다. 한국 와서 제가 감탄한 것은, 한국 배우들은 조금만 유명해지면 바로 의상, 잡화 등의 협찬사가 달라붙고 관리해주는 소속사와 매니저가 생겨요. 분장사, 스타일리스트 이런 사람들이 붙어요. 배우들은 유명해진 인기로 몇십만 달러 짜리 기업광고도 찍어요. 엄청난 수입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 보고 깜짝 놀랐거든요. 북한에서는 최고 칭호가 인민배우인데 차도 없고요. 기차 타고 이동합니다. 여느 배우들은 일반인과 기차에서 일반인과 같은 칸에 타고 인민배우만 침대칸을 주는데, 그 침대칸도 한 칸에 4명이 들어가거든요. 배우가 의상도 직접 준비해야 하고요. 화장품 자체도 되게 안 좋아서 배우들이 피부가 되게 나빠요. 앞서 얘기했던 오미란 배우는 언젠가 외국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외국 사람이 화장하기 전의 그녀 얼굴을 보고 북한 분장 만세!” 이렇게 외쳤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말씀하신 대로 한국 배우들은 명성이 높아지면 하나의 기업 수준으로 많은 돈을 벌기도 하지만,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대중에게 인기를 얻지 못하면 도태되기도 쉽고요. 특히 배우는 드라마나 영화 섭외가 들어오지 않으면 아예 일이 없기 때문에, 직업적으로 불안정해서 중도 포기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럼에도, 아직도 한국에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희망하는 직업 중에 손가락에 꼽힐만큼 인기 있는 직업이거든요.  

조현: 북한에서 일반인들은 당이나 청년동맹, 근로단체 이런 데서 1주에 1번씩 생활총화를 하지만 배우들은 이틀에 한번씩 합니다. 차려지는 건 없고 정치적으로 탄압 통제가 심하니까 누가 하겠습니까. 북한은 노동당에서 인물을 보고 배우로 선택합니다. 선택을 당하는 거예요. 여기 한국은 배우하겠다고 열심히 연습하고 준비하고 어디 오디션에 가서 자기가 재능을 보여주고 그게 감독의 눈에 들면 뽑히는 거지만, 북한은 재능있어도 선택되지 못합니다. 재능 없어도 얼굴보고 선택 당할 수는 있죠. 정작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못하고 안 하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그 직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은 이제 거의 없어 보입니다. 한국엔 연기할 수 있는 방법도 많더라고요. 방송국도 몇십 개고, 작은 연극무대에서 작은 돈 벌며 연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자유롭게 표현도 못하고 노동당이 가르친 방식으로만 연기해야 하니 연기도 틀에 박혀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선 배우가 성장할 수 없죠. 북한에서 유명배우는 필요할 때는 쓰여지고 버려지는 소모품같은 겁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들이 앞으로 더 많이 들어가고, 이런 다양성을 남북한 주민들이 같이 누릴 수 있는 제도적인 변화들이 생긴다면 그때야 북한에도 아마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승재: 영화 미나리로 영국 아카데미에서도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씨는 수상소감으로 콧대높은 영국인들이 인정해줘 기분이 좋다는 농담을 해서 세계 주요매체의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는데요. 윤여정 씨가 그간 방송에서 해왔던 말들은 한국사회에서도 다시 주목 받고 있습니다. “너는 너 나는 나, 나는 나대로 사는 거야”, “우린 낡았고 편견이 있어요. 그러니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너희가 뭘 알아?’ 하면 안되죠”, 이젠 많은 사람들이 윤여정의 말을 찾아볼 정도인데요. 배우의 한마디는 이렇게 대중에게 큰 영향력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