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의 표현

서울-이승재 yis@rfa.org
202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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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의 표현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이 출연한 영화 '미나리'의 포스터가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걸려 있다.
연합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 안녕하세요.

이승재: 지난주엔 배우에 대해서 얘기해봤는데요. 오늘은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기억에 오래 남거나, 특별한 깨달음이 있었던 영화를 말할 때 인생영화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선생님의 인생영화가 있다면요?

조현: 좀 오래된 영화인데 미국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좋아했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는데, 노예를 부리며 생활하던 귀족의 관습이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변하는 과정에서 억척스럽게 살아남은 한 귀족 여성이 제게 충격을 줬습니다. 성격도 고약하고 아무것도 못했던 이 여성이 전쟁, 기근의 혼란 와중에서도 주변 친척들과 평소 미워하던 종들, 나약한 엄마까지 모두 먹여 살리거든요. 제가 보기엔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냥 뒤쳐지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유명한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가 나오는데, 이 말 한마디가 제가 북한에서 힘든 삶을 살 때 큰 울림을 줬고 더 열심히 살게 했어요.

이승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그러니까 설령 오늘 망했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힘을 내자이런 뜻인데요. 이 영화가 만들어진 지 80년이 넘었는데 사람들이 영화는 안 봤어도 이 대사는 알만큼 명언이 됐죠. 그런가 하면 남한에 오셔서 한국 영화도 많이 보셨을 것 같아요.

조현: . 한국 영화는 처음 볼 땐 줄거리, 화면이 너무 빨리빨리 바뀌어가지고 얼떨떨했습니다. 배우들 연기력, 화면, 촬영기술 등 북한 영화와 비교해 볼 때 상당한 정도로 수준이 높고요. 작년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이란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도 받았잖아요. 그 외에도 세계에서 제일 간다는 프랑스의 칸 영화제에서 상 받은 작품도 많고요. 한국 영화 보면서 제일 많이 느낀 건 영화가 유사하지 않아요. 감독이 영화 보는 사람들과 사회 앞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더라고요. 그 메시지가 다 다릅니다. 제가 가장 인상깊었던 한국 영화는 인천상륙작전이거든요. 이 영화에서는 군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굉장히 노력한 모습이 나와요. 군인 아닌 일반인들의 업적은 결국 전쟁이 한참 지나서야 주목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사람들이 몰랐던 그 부분에 대해 감독이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한 것 같습니다.

이승재: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는 때로 주목받지 못했던 문제들을 사회로 끌고 나오기도 합니다. 한국 영화 중 도가니란 작품을 예로 들 수 있는데요. 2000년대 초반 한국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 원장이 말도, 표현도 못하는 지적장애인을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05년에 언론에서 보도도 되었지만 사람들은 곧 잊어버렸는데요. 이 사건이 2009, 한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고 주목을 받게 되면서 그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결국 남한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국회에서는 장애인 대상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대책법을 통과시킵니다. 이 내용이 뭐냐면요. 이전엔 성폭행을 당한 사람이 직접 신고를 해야지 수사가 이뤄졌는데요. 지적장애인들이 직접 신고할 수 없잖아요. 이젠 제3자가 신고해도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선생님, 북한의 영화도 사회에 이런 영향을 준 작품이 있었나요?.

조현: 그러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북한에서 감독이란 존재는 잘 드러나지 않아요. 영화에 나오는 것은 노동당의 정책과 최고지도자의 충성으로 다 관통되어야 합니다. 앞에서 인천상륙작전 얘기했는데, 북한에는 그와 유사한 영화 월미도가 있어요. 내용은 인천상륙작전 때에 북한이 미국, 유엔군과 싸워서 3일 동안 서울을 지켰다는 건데 이 영화는 오직 조국은 장군님의 품이다라고 강조합니다. 그에 비해 한국 영화는 소재가 엄청 다양하죠. 삶에 대한 것, 꿈에 대한 것, 사랑도 여러가지 사랑, 정치물, 사회물도 있고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 그 소재가 엄청나게 다양한데요. 남북한 영화는 그게 가장 기본적인 차이 같습니다.  

이승재: 영화라는 것은 북한의 실상이나 북한 사람들의 생각을 알릴 수 있는 좋은 수단인데, 북한 영화 하면 딱히 그런 작품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었네요. 그나마 지금은 김정일 시대보다 더 영화가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조현: 1980~1990년대 북한 영화가 질적으로 좋아진 것은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 들어와서 홍길동전이라던가, ‘철길을 따라 천만리’, ‘소금이런 영화들을 만들 때였고요.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영화 제작 건 수가 엄청 줄어들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이후 만들어진 북한 영화는 몇 개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김정은 총비서가 최근에도 왜 영화계가 제자리걸음하냐, 왜 영화가 안 나오냐 추궁도 많이 하고 있다는데요. 최근엔 신진작가라던가 이름날 만한 작가, 배우가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1970~1980년대는 혁명성, 변화, 농촌계몽 이런 것들을 주제로 한 영화가 많이 나왔는데요. 주제도 당시 사람들의 삶과 동질성이 어느 정도 있었고요. 이전의 영화가 너무 낙후했기 때문에 이때 사람들은 당시 수준의 영화를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북한 영화는 시대를 맞추지 못하고 있어요. 일단은 시장화로 인해 한국 영화가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눈도, 영화를 보는 지도자의 눈도 되게 높아졌거든요. 김정일이 영화광이었지만 김정일보다 김정은이 수준이 더 높을 겁니다. 이 사람이 해외 나가서 영화도 많이 보고 유학하는 과정에 보는 수준이 더 높아졌다고 보고요. 사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서 영화 만드는데 필요한 자금을 제때에 해주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북한에선 영화도 국가사업이라 나랏돈이 없으면 만들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남한에선 완전히 상업적인 영역이라 감독 개인의 역량에 따라 많은 투자를 받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영화를 만들기도 하고,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그 뒤로 투자를 받지 못해 10년간 한 편도 제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데 확실히 감독의 능력과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방법을 새롭게 찾아내는 사람들도 좀 있더라고요. 요즘 감독을 꿈꾸는 학생들은 기능이 워낙 좋아서 손전화 카메라 만으로도 꽤 영화 잘 찍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10~ 20분짜리, 짧은 작품도 많고요. 그 안에 감독이 사람들 맘을 움직일 만한 분명한 메시지를 예술적으로 잘 표현만 한다면 화려한 작품 못지 않게 사람들이 알아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제는 뭐 굳이 영화관 아니더라도 인터넷과 손전화만 있다면 아무나 자기 작품을 올릴 수 있고,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세상이 바뀌니 그런 방법도 있더라고요.

조현: 그렇죠. 영화 감독의 영향력은 북한과 남한에서 거의 하늘과 땅 차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북한 외부의 영화 감독들은 어떤 사회적인 이슈를 던져서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고, 또 어떤 유행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만큼 역할이 굉장히 큰데 북한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거죠.

이승재: 북한에서 유일하게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엘리트로 꼽을 수 있었던 감독은 신상옥 씨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신상옥 감독이 27개월간 북한에 머물면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수작들을 만든 이후 북한영화들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죠. 감독 한 명이 영화 한 편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세상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더 많은 북한주민들이 알았으면 좋겠네요.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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