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엘리트의 역설] 다시 오겠다는 약속 지킨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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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네.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작년 8월이었나요? 한국 언론에 보도된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하던 한국 외교관 김일응 씨, 그리고 그와 함께 일했던 현지인이 꼭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었는데요.

조현: 네. 봤습니다.

전 세계를 울린 사진 한 장

다시 구하러 오겠다던 한국 외교관과 아프간 현지인의 뜨거운 포옹

이승재: 아프간에서 민주정부가 무너지고 탈레반이라는 폭압정권이 들어서면서 세계 각국은 안전을 위해 외교관들의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여기에 포함된 한국 외교관은 한국 교민들을 탈출시키는 것은 물론 한국인을 조력했던 현지인들에게까지 "다시 구하러 오겠다"고 약속했고요. 정말로 10일 정도 후에 이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아프간으로 들어가 390여 명의 현지인을 구출해냈죠.

조현: 네. 북한은 지금까지도 남조선 출신들을 핍박하는데, 자유민주주의 정부인 한국과 함께 일하던 현지인들이 아프간에 남았다면 아마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 외교관들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프간인들이 결국 탈출하는 걸 보고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의 내전, 지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세계 정치사에 복잡하고 가슴 아픈 일이 많네요. 그러나 국제적으로 이런 복잡한 정세들이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도 '외교관' 하면 고급스런 대회장에서 만찬을 나누면서 협상하는 장면을 떠올리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목숨 걸고 자국민을 지키는 한국의 외교관들을 보면서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던 것 같고요. 탈북 청년들도 자신의 출세가 아니라 국민에게 더 봉사하려는 목적으로 외교관을 꿈꾸기도 하더라고요.

이승재: 저도 탈북 청년들이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북한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전 세계 북한 경제 제재에도

끄떡없다는 북한 외교관

조현: 네. 우리 고향이니까요. 그들이 꿈꾸는 외교관이란 한 나라의 대표로서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자국민을 보호하거나, 다른 나라와 중요한 협정을 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세계 외교관들 사이에 간간이 섞인 북한 외교관을 보면 그런 사명이 없어 보입니다. 지금 북한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흔드는 미사일 발사를 계속 하고 있어서, 전 세계가 북한을 옥죄는 경제제재를 하고 있는데도 UN에 주재하는 김성 북한 대사는 "우린 자급적 민족 경제거리가 있기 때문에 어떤 제재에도 끄떡없다"며 거짓말만 합니다. 그 역시도 북한의 최고 엘리트인데 이런 모습을 볼 때 안타깝죠.

이승재: 그렇군요. 북한에서도 그렇듯,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각 국가에서 최고 엘리트로 인정받는 이유는 복잡하게 얽힌 국제적 상황 가운데 파견된 국가와의 우호 관계를 증진시키는 동시에 자국의 정책과 실익, 자국민 보호까지 챙기는 등 자국을 대표하는 임무를 띠고 있기 때문인데요.

한반도 최고의 외교관

서희의 강동 6주 탈환

조현: 그러니 엘리트죠. 한국과 북한이 비교적 비슷하게 배우는 고려 역사 중에 강동 6주를 탈환한 서희가 있지 않습니까? 당시에 거란, 여진, 송의 껄끄러운 관계를 철저하게 분석했다가 거란이 고려를 쳐들어오려고 할 때 서희는 거란 지역에서 여진을 내쫓으면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해서 피 한방울 안 흘리고 협상을 끝내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우린 여진이 거주했던 땅도 얻었고요.

이승재: 그래서 한민족 외교의 귀재로 1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추앙받고 계신 거죠.

조현: 이런 조상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고요. 또 하나 자랑스러운 것은 대한민국에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나왔다는 겁니다. 평소 인성도 좋고 굉장한 노력파에다가 특히 UN 사무총장 시절 선진국들의 기후변화 협약을 이끌어낸 성과도 있었고요.

이승재: 저도 같은 마음인데요. 물론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처럼 세계의 큰 무대에서 활약하는 고위급 외교관도 있지만 사실 한국 사람들이 외교관을 더 존경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일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한 달 넘게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 한국 외교관들, 현지에 체류하는 한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정말 애쓰고 있거든요.

우크라이나 주재 한국 외교관들

전쟁 중 한국 교민 위해 현지에 끝까지 남아

조현: 맞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살던 한국교민들은 탈출하려고 비행기 표까지 끊어놨지만 하늘 길이 막혀서 그것도 어렵게 됐었거든요. 결국 한국 대사관에서 나서서 교민들을 보호하고 인접국인 루마니아로 가는 길을 안내했고요. 루마니아 비자발급 등 행정에 필요한 절차도 신속히 도와줘서 교민들이 큰 힘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김형태 주 우크라이나 대사는 "우리는 외교관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우리 교민들도 있으니 끝까지 남아있겠다"고 말했어요. 이 외에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곳, 아프리카 험지에서 내전이나 전염병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외교관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승재: 정말 고생들 하시네요. 참, 많은 탈북민들이 탈북과정에서 세계를 떠돌 때, 자국민을 보호하는 다른 국가 외교관들의 활동을 목격한다고 해요. 그럴 때 자신들은 보호를 받지 못하는 걸 보면서 북한에 대한 또 한 번 실망을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해외에서 자국민 보호 받지 못하는 탈북민들

북한 외교관은 절대 만나지 말아야 하는 대상

조현: 네. 그렇습니다. 탈북민은 보호라는 게 없죠. 잡히면 무조건 북송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기차 탈 때도 걸릴까봐 검열을 피해서 숨어 다녀야 하고요. 이럴 때 약소국, 범죄국가, 불량국가인 북한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됩니다. 특히 태국 이민자수용소에서 체류하는 탈북민들이 많은데요. 거기 불법 체류하는 다른 나라 외국인의 경우 각 나라 외교관들이 와서 태국정부와 협상해서 자국민을 빼 가는 데도 탈북민은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탈북과정에서 북한 외교관들에게 걸리면, 일단 북송은 둘째치더라도 인간적 예의가 없어요. 무조건 반말에 고압적 태도입니다.

이승재: 그랬군요. 북한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과거 한국도 해외에서 강도를 당하거나 여권을 잃어버려서 대사관을 어렵사리 찾아가면 일을 해결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외교관들의 태도가 고압적이었다는 불만사례가 많았거든요. 지금은 한국사회가 많이 발전하고 시민들에 대한 공직관료들의 봉사의식이 높아져서 외교관의 태도들이 완전히 바뀌었죠.

조현: 그랬군요. 요즘 한국 사람이 해외에 가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위험한 일을 당할 시에 한국 대사관으로 연락 하세요"라는 타치폰 안내 문자를 받습니다. 과거 1960년대 냉전시대에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고 하자 미국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핵전쟁까지 염두에 두면서 쿠바를 봉쇄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혹시나 전쟁이 날 지 모르니 다른 국가들은 모두 자국민에게 철수하라고 하는데 북한만 그 안에 모두 남겨 두고는 오히려 미국과의 전쟁을 준비시켰습니다. 쿠바의 지도자가 김일성과 돈독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쿠바 봉쇄 당시 북한만 자국민 남겨둬

전 세계 북한대사관, 자국민을 거지, 하인 취급

인민을 위한 나라라고 하는 북한 외교관들은 인민은 뒤로한 채 수령만을 따랐습니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는데도 북한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아까 외교관들의 권위적인 모습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북한의 외교관들은 관료잖아요. 북한의 여러 기술 대표단, 외화벌이 노동자, 이런 사람들이 해외 나갈 땐 돈이 없으니까 호텔에 가지 못하고 대사관에서 숙박하거든요. 그때 외교관들이 그들을 거지, 하인 취급한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은 외국에 나오기 힘드니까 한번 해외에 나가면 시끄러운 사건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고요. 또 허물 잡히면 외교관들이 북한으로 쫓아버릴 수 있으니까 외교관들이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인민을 감시하고 갈취합니다. 북한은 이렇게 김씨 일가를 위해서 일해야만 엘리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이승재: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국민을 지키려는 사람, 북한에 이런 외교관이 없다는 것은 북한 인민과 이제 한국 국민이 된 탈북민들에겐 큰 상실감을 주었는데요.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지난 분단 70년의 역사 속에는 북한 출신으로서 세계에 북한의 만행과 김일성의 거짓을 알리려던 외교관도 있었답니다. 누구인지 궁금하시죠? 그의 이름과 그가 세상에 울린 외침은 다음시간에 이어서 들어봅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