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엘리트의 역설] 책 한 권의 힘

서울-이승재 yis@rfa.org
202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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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엘리트의 역설] 책 한 권의 힘 소설 파친코
/문학사상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 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 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지금 전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미국의 거대기업 애플TV에서 제작한 '파친코'라는 작품인데요. 이게 미국에서 제작한 드라마이긴 한데, 제작자부터 감독, 배우까지 한국인들이 주축이 되어서 만들어졌고요. 전 세계 동시 공개돼 미국은 물론 영국, 캐나다 등등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그 호평 또한 대단합니다.

조현: . 이 작품은 드라마 이전에 책으로 먼저 쓰였거든요. 전 책을 먼저 봤습니다. 1910년부터 1980년까지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재일조선인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렸는데요. 일제강점기 때의 일본의 쌀 수탈, 2차 세계대전, 조선인 강제노역, 조선 여성의 위안부 생활,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 등 당시 일본에게 탄압받던 조선인들의 생활부터 시작해서 해방 후에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멸시와 차별 등을 4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풀어냈습니다.

 

재인조선인의 이야기 파친코

책 한 권의 나비효과

 

이승재: 어떠셨어요? 재미나게 보셨나요?

조현: 전 세계가 그 시절 한국인들이 그렇게까지 고생한 것에 대해 탄식하는데요. 북한에는 워낙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빈곤층도 많고 억울한 사람들도 많으니 책 속에서 겪는 사람들의 고생에 대해 충격이 덜한 것도 사실입니다. 한편 저는 일제 시대 때 잘 살아보겠다고 한반도를 떠난 사람들이 일본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솔직히 몰랐거든요. 그래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그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것 같아요. 또 책에는 당시 나라를 팔아먹던 매국노나 구한말 봉건사대부들의 잘못도 나오는데 그걸 보면서 나라를 일본에게 뺏길 수밖에 없게 만든 사람들에 대해 더 분노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승재: 파친코 책이나 드라마를 북한에서 볼 수 있다면 역시나 인기가 대단할까요?   

드라마 파친코가 북한에서 방영된다면?

 

조현: 그럼요. 사실 지금 북한 상황이 이조말 봉건사대부들이 했던 것과 똑같잖아요. 북한에서 이 드라마를 볼 수 있다면 인민들은 모두 북한 관료들의 행태를 생각하며 공감할 것도 같고요. 관료들은 봉건사대부를 욕하면서도 서민을 수탈하는 자신들과 비슷해 보기 불편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승재: 보기에 불편한 사람들이 더 있는 것 같습니다. 파친코는 한일관계를 조명하면서 전쟁이나 조선인 학살 등 일본 측에서 불편하게 생각할 부분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지금 일본에선 이 드라마를 거의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 세계 애플TV에서는 새 드라마 파친코에 대한 홍보가 한창인데 일본에선 전혀 홍보를 하고 있지 않다고 해요.

조현: 지금 전쟁이 끝난지 80년이 다 됐는데 여전히 이런 책이 나오는 걸 보면 역사적 사실은 감춘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일본과 같이 2차대전의 전범국이었던 독일은 사죄하고 반성하고 있는데 여전히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행태가 안타깝습니다.  

 

책 한 권, 드라마 한 편으로

전 세계인 관심 폭발한 한일관계

 

어쨌든 지난 몇 십 년간 한국보다 힘이 강했던 일본에 의해 당시 일제의 만행은 국제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게 현실인데요. 전 세계인들은 파친코 덕분에 모든 걸 알게 됐다고 말하고 있어요. 책과 드라마 하나로 전 세계가 지금 한일관계를 주목하고 일본의 역사왜곡과 전쟁범죄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한다니 책으로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입니다. 그래서 북한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작가는 곧잘 엘리트로 불리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이승재: 맞습니다. 파친코라는 책을 쓴 이민진 작가는 50대 재미교포로, 아버지가 6. 25 때 피난민이었다고 하는데요. 한국인이, 재일교포가 겪은 일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파친코 저자 이민진

나는 여러분이 한국인이 되기를 바란다

 

조현: 작가는 지금 이 소설이 발표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전 세계를 돌며 강연을 하고 있더라고요. 강연을 들어 보면 이 소설을 통해 이민자의 삶에 대해 알리고, 특히 그 고단한 삶을 잘 개척해 살아내고 있는 한국인에 대해 알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한 강연에서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저는 여러분이 한국인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는데요. 문학을 통한 특별한 경험이 바로 그런 거죠. 직접 주인공이 되어 감정을 교류하고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이나 사건, 타인을 이해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니까요. 그리고 지금 바로 그런 일이 전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거죠.

이승재: 맞아요. 이 소설과 드라마가 일본의 만행 또한 한국을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있으니까요. 선생님의 인생에서도 파친코처럼 생각을 바꾸거나 인생을 성장시킨 책 한 권이 있을까요?

조현: 박태원 작가가 쓴 '갑오농민전쟁'이란 책입니다. 박태원 작가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문학가로서 많은 소설을 썼고요. 남한 출신의 이분이 1950년에 월북을 하고 북한에서도 창작활동을 꽤 오래 해서 북한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북한과는 다른 것이 만약 북한에선 작가가 월남했다면 그의 책은 모두 금서가 될텐데 남한에선 월북한 박태원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고 북한에서 완성한 이 갑오농민전쟁도 어떻게 잘 구하면 읽어볼 수 있더라고요.   

 

갑오농민전쟁?

동학농민운동?

  

이승재: 그렇죠. 책의 어떤 부분이 선생님의 생각을 변화시켰습니까?

조현: ‘갑오농민전쟁을 일으킨 전봉준의 대인배와 같은 성품을 본받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제가 1980년대에 읽었는데요. 그가 사람을 모을 때 "사람은 평등하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따로 없으니 사람이라면 천대와 핍박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 충격이었죠. 저도 북한에서 태어나 신분 차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어떨 땐 차별도 받았고 어떨 땐 남들보다 우월하게 느꼈으니까요. 그런 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 기존에 순응하고 살아온 제게 전봉준이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제게 큰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책을 보며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갑오농민전쟁에서 일본인들의 신식 총에 의해 조선인들이 살해되는 장면을 보면서, 왜 일본이 저런 무기를 가질 때 우린 가지지 못했을까 라는 안타까움이었죠. 그래서 사람은 신식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제가 탈북을 결정한 것도 있습니다.

이승재: 한국 사람들이 그 책을 본다면 아마도 언제든 부패한 정권에 대해서 도전장을 내밀 생각을 할 것 같아요. 갑오농민전쟁, 한국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혁명이 탐관오리의 숙청이나 신분의 평등을 위해 봉기한 거잖아요. 북한에서 금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동학운동에 대한 책이 북한에서

금서가 아닌 이유

 

조현: 금서가 아닌 이유가 있습니다. 북한은 이조 500년 역사를 고구려와 고려가 세웠던 위상을 무너뜨린 망국사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무너뜨리려는 전봉준이 마치 김일성과 유사하다며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전봉준이나 갑오농민전쟁을 이용하고 있는 거죠. 그래도 저처럼 이 책을 보며 사람들은 지금 북한 정권이 당시 부패했던 조선왕조와 관리들과 비슷한 점을 찾아낼 것 같습니다. 박태원 선생은 해방 이전부터 이미 민족을 대표하는 작가였거든요. 월북을 한 것이 정치적으로는 아쉽기는 한데 작가라는 점만 봤을 땐 그래도 꽤 인정해줄 만한 엘리트라고 생각합니다.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남북의 해석이 비슷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북한에는 이와 같은 작가를 이제 찾아보긴 힘듭니다.

 

정권의 나팔수로 불리는 북한 작가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노동당의 입맛에 맞는 책만 내야 하고요. 글에 대한 검열이 굉장히 야만적이기 때문에 작가가 자유로운 발상을 할 수 없습니다. 노동당의 구미에 맞게 쓰면 당연히 엘리트로 인정받지만 북한 밖에 나오면 그저 정권의 나팔수로 밖엔 안 보일 겁니다. 북한에서도 독일의 히틀러가 자신의 정권과 반대되는 책을 모두 불에 태우고 없앤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동일한 행태를 보이거든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그 자신이 엘리트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엘리트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 그걸 알고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이승재: 맞습니다. 책 한 권은 이렇게 한 사람의 생각과 인생을,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가들이 세상엔 참 많죠. 또 어떤 분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었는지 다음 시간에 알아보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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