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이산가족상봉 더 이상 안돼

영국-박지현 xallsl@rfa.org
2018-06-29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한명희 씨의 고향 길 앞에 있는 유치원.
한명희 씨의 고향 길 앞에 있는 유치원.
사진-한명희 씨 제공

6월은 한반도 국민들 기억 속에 아픔으로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기억하는 달 입니다.

1950년 6월 25일은 북한이 대한민국을 침공하여 발발한 전쟁이지만 북한에서는 한국이 전쟁을 일으킨 나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탈북민 "북한에서 배운 조선 전쟁은 미국의 주도하에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남조선 괴뢰군과 함께 북한을 침략한 침략 전쟁이다 라고 북한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배웠을까요?

한국인 "한국에서 625는 북한이 일으킨 전쟁이라고 배웠는데요, 전쟁시기 부산으로 수도 이전해서 지금 보수동쪽에 임시 청사도 있어요"

이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독일인 남편과 함께 고향 방문 당시 찍은 사진.
독일인 남편과 함께 고향 방문 당시 찍은 사진. 사진-한명희 씨 제공

오늘은 북한에서 태어나 5살에 625 전쟁을 겪고 피난민이 되어 부모님들과 함께 북한을 떠나온 특별한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질문. 먼저 본인 소개 부탁 드립니다.

한명희.  제 이름은 한명희, 여기(독일)에 와가지고 독일분과 결혼해서 이름은 한 그람바트로 고쳤어요.

질문. 올해가 6 25 전쟁 발발 68주년이 되는데요, 5 살 어린 나이에 북한을 떠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때 상황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한. 저는 별로 기억이 없고 부모님에 의해서 항상 말씀을 들어왔기에 끔찍했다는 그런 상황은 제가 머릿속에 항상 넣고 있었어요

질문. 2014년에 독일에서 북한에 있는 고향이 그리워 고향을 방문 하기 위해 신청을 하셨는데 고향 문 앞에서 돌아서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5 살 어린 나이에 떠난 고향을 황혼이 되어서야 가 봤지만 고향집 문 앞에서 돌아 셔야 했는데요, 그때 심정은 어떠했나요?

한. 고향집 앞 이라기 보다 거기 가니 주소도 바뀌고 멀리서 저기 보이는 곳이 거리입니다. 라고 하는데 이름을 들어서 아는 것이지 알지 모르고,,,  아버님이 홀어머니를 두고 떠나왔기에 항상 마음 아파 하셨어요.  가보지도 못한 곳을 항상 생각하고 갔는데 그것을 멀리서 보고만 올 때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아팠어요

질문. 지금 남북 적십자 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8월20일부터 6일간 진행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원이 제한이 되어 모두가 만날 수 없는 현실인데 이산 가족으로써 이번 상봉에 바람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한. 저는 아무 바람도 없고 이미 거기에 대해서는 포기한 상태인데요. 원래는 부모님 때문에 생각을 했었는데 부모님들이 다 돌아가시고,,,, 가족들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가족 방문하고 있을 수 있게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며칠 있다가 헤어지고 헤어지면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고 김일성, 김정일 찬양하는 이야기 만 하나까, 차라리 안 만나는 것이 났고, 이젠 나이들도 많으시고 돌아가실때 되시니 옛날 기억이나 제대로 나겠어요.

가족에 헤어져 수십 년을 그리워 하며 살다가 만나도 이념이 다른 곳에서 살다 보니 단 한번도 가족의 애틋한 정 조차 나눌 수 없는 비극 입니다.

영국 맨체스터 박지현 입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