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꿈은 금빛 날개를 타고 -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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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북한의 선교와 탈북인들의 신앙 얘기를 전하고 있는 ‘우리들의 꿈은 금빛날개를 타고’ 오늘은 지난 20여 년간 북한 에서 선전대원으로 활동을 했던 지해남 씨가 두 번씩 북한을 탈출 남한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난 체험적 신앙 얘기를 들어봅니다. 담당에 이원희 기자입니다.

지해남 씨는 타고난 고운 목소리로 선전대원으로 활동하다 남한의 노래 ‘홍도야 우지마라’를 불렀다는 이유로 2년간 교화소에서 옥살이를 했습니다. 옥에서 풀려나보니 아들과 남편이 굶어 죽은 사실을 알고 98년 중국으로 탈출했습니다. 중국에서 숨어살다 인신매매를 당하기도 했다는 그는 2000년 남한으로 탈출하다 중국공안에 잡혀 북송 되었다가 다시 탈출, 동남아 3개국을 거쳐 2002년 남한으로 들어가 정착했습니다.

지해남 씨는 북한에서는 물론 하나님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어린 시절 선교사를 승냥이에 비유한 영화를 보고 선교사는 승냥이처럼 간악한 사람으로 알았다고 말합니다.

“승냥이 주인공이 선교사입니다. 승냥이는 가장 간악한 짐승인데 어렸을 때 선교사를 승냥이에 비유해서 영화로 찍었습니다. 그때 선교사라는 것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승냥이라는 선교사가 조선 아이가 사과를 도적질해서 먹었다고 이마에 청강수로 도적놈 이라고 써놓고 아이를 죽이는 영화인데 미 제국주의자 들은 이렇게 북한에서 기독교를 몰아내고 선교사들이 승냥이처럼 놀았다는 내용이예요.“

이렇게 선교사가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던 지해남 씨는 중국에서 공안에 잡혀 북송되기 전 중국감옥에 있을 당시 조선족 여인으로 부터 전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북송되느라고 중국감옥에 잡혔는데 조선족 아주머니가 하나님만 믿으면 살 길이 생긴다, 북한에 잡혀 가더라도 죽지 않는다고. 그래서 저는 중국감옥에서 모두 북한사람들 이기 때문에, 그들이 알면 북한에 나가 말하면 두 번 죽음을 당하기 때문에 저는 이불속에서 하나님만 불렀습니다, 기도할 줄을 몰라서...“

지해남 씨는 결국 북송되어 다시 신의주 보위부 감옥에 갇히게 되자 그곳에서도 계속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보위부 감옥에 한 달 동안 갇혀있었어요 그곳에서 겉으로는 표현을 못하고 마음속으로 자나 깨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때 2천년도 20세기 말이라고 해서 중국으로 탈북한 탈북자들을 용서한다는 방침이 내려져서 저는 기회가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모두 잡혀나가는데 나와 같이함께 남한으로 오다 잡힌 여자는 살아오지 못하고 제가 혼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 메어달려 역사 하신 것 같아요.”

이렇게 직접체험을 했으면서도 하나님이 정말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일기도 했지만 중국으로 다시 탈출했을 때는 교회부터 찾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 아리까리했지만 그래서 다시 중국으로 탈출해와 한인교회로 찾아와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거기서부터 성경책을 읽으면서 동남아 4국을 거쳐서 어렵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기도는 비록 할 줄 몰라도 하나님께 무조건 매달린 거예요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을 해 주셨습니다.“

다시 중국을 탈출한 지해남 씨는 남한으로 가려고 동남아 3개국을 헤맬 때 오로지 한인교회 목사가 준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다니며 말씀을 보고 기도를 했다고 전합니다.

“중국에서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이렇게 4개국을 거쳐 오면서 몇 번씩 잡히고 험한 가시덤불과 뱃길이 막혀 못나갈 때 등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는 특히 동남아에서 이리저리 헤맬 때 구약성경 시편에 나오는 말씀으로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시편 46편인데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와 힘이시니 환란 중에 만난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흉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 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 하리로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남한으로 들어가 남한 생활에 적응 하면서 더욱 교회를 열심히 나가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활도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마음에 평안이 오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해주시겠지 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남한에서 신앙생활을 통해 체험한 기적 같은 일들, 특히 신앙을 간증하러 다닐 때면 하나님이 분명 계시다는 것을 더 확실할 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나성영락교회를 나가며 헌금을 10달라씩 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사실 10달라도 아까웠지만 이것이 아니다 싶어 어느 날 20불을 내면서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물질적 재물도 허락해 달라고. 그 다음날 어느 교회에서 초청이 왔는데 가서 간증을 했더니 500달라를 주는 거예요.“

이렇게 마음 놓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그 기쁨을 다른 탈북인들과 나누고 싶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들도 많아 안타깝다고 그는 말 합니다.

“교회를 가자고 해도 안 간다고 할 때마다 중국에서 가장 어려울 때 목사님을 만나 이렇게 까지 왔는데 그러면 그때 당시 왜 하나님을 믿겠다고 했느냐고 물으면 그때는 한국에 보내준다고 하니 할 수 없이 믿었노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해남 씨는 북한에서는 선전대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김일성 김정일 노래들을 많이 보급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바로 그들을 우상화한 노래였다고 말합니다.

충성의 노래: 노을이 피어나는 이른 아침에 인자하신 그 미소를 생각합니다. 고요한 밤하늘에 별이 웃을 때 따사로운 그 미소가 그립습니다. (별이라는 것은 김정일을 표현한 것이고 다사로운 미소는 김정일의 웃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지해남 씨는 이제 남쪽에서는 다름 아닌 찬송 복음성가를 마음 놓고 부를 수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합니다.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지해남 씨는 이제 통일이 되면 북한 동포들에게 찬송을 전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북녘 땅의 동포들과 찬송을 부를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