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통신] 한겨레 중·고교 곽종문 교장 “탈북청소년들 사회 지도자로 성장 자질 충분”
서울-이예진 xallsl@rfa.org
2011.02.22
2011.02.22
안녕하세요? 희망통신 이예진입니다.
청소년들은 어떤 또래친구들과 어린 시절을 보내느냐에 따라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특히 탈북청소년들은 낯선 땅, 낯선 말투 때문에 남한 친구들 앞에 나서는 일이 쉽지 않은데요. 하지만, 탈북청소년들의 남한 적응을 돕기 위해 세워진 한겨레중고등학교의 아이들은 좀 다릅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곽종문 한겨레 중고등학교장을 만나 들어봤습니다.
곽종문 교장: 저희 학교는 일반학교처럼 졸업이 최종목표는 아니에요. 학습연령, 실력, 사회, 문화적응, 정신적, 신체적 건강회복 등의 적응력이 생겼다고 판단되면 일반 대한민국의 학교로 보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연령이 많으면 일반 학교로 갈 수 없어요. 19세 이상, 20세 이런 아이들은 졸업을 시켜요.
[2006년 3월 16명의 아이들과 경기도 안성, 한적한 보금자리에서 문을 연 한겨레 중고등학교는 무연고 학생이나 연령에 맞지 않는 학업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재교육시켜 사회에 내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곽종문: 우리학교 학생들이 적응능력이 최대로 잘 갖춰져 있어요. 우리 학교를 거쳐 일반학교를 가거나 우리 학교를 졸업해서 대학을 가거나 하는 학생들 중에는 탈락자가 하나도 없어요. 실력이나 적응력이 뛰어납니다. 또 사회에는 온전한 사회인으로 적응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니까 2가지 취업 자격증을 취득해서 졸업하도록 하고 있어서 대학엘 가도 관련학과로 가요. 제빵학과나 호텔조리학과 같은 유사학과로 가서 합리적인 진학을 할 뿐 아니라 진학을 하지 않더라도 이 아이들이 진학을 않더라도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살아가도록 자격과 능력을 갖춰서 내보내거든요.
[곽종문 교장 선생은 여느 남한의 고등학교처럼 명성이 높은 대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등학교에서 인생의 진로를 미리 고민하고 결정해 대학에서도 취업을 돕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곽종문: 이번에도 미 국무부에서 초청 유학생 10명을 뽑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이 6명이나 뽑혔어요.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죠. 지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상징적인 의미가 있죠. 미국이라는 나라가, 미 국무부에서 초청해서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우리 아이들이 많이 참석했고요. 지난 여름방학 때 기적 같은 일이 있었는데요. 인근의 극동대학에서 한국의 180명을 뽑아서 미국식 수업을 해요. 수업료가 200만 원 이상이에요. 총장님한테 부탁했죠. 숟가락 세 개만 놔 달라. 그래서 쾌히 받아주셨는데 한 달 동안 수업하고 나서 기적이 일어났어요. 1, 2, 3 등을 우리 아이들이 했어요. 총장님이 깜짝 놀라 전화했어요. 희망이면서 기적이다.
[저도 들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기본기가 부족한 탈북청소년들이 180명 중에 1, 2, 3 등을 했다니 말입니다. 그만큼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겠죠. 곽 교장은 탈북 청소년들이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할 줄 아는 인생 밑바닥의 박사라고 말합니다. 탈북청소년들은 조금만 한국사회가 돌봐주면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 반대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답니다.]
곽종문: 전체적으로 탈북자들이 다소 적응이 안 돼서 부정적인 모습도 있지만, 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거죠. 입장 바꿔 생각하면 저더러 동유럽 같은 데에 떨어뜨려 놓고 살라고 하면 못 살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저 아이들에게 우리가 그렇게 살라고 하는 거죠. 그래도 밝고 희망적인 모습이 많이 있어요. 대학생 이하의 아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초기에 의무교육을 1년 정도 시켜서 교육력을 높여주면 엄청난 에너지가 나올 수 있어요. 그러지 못해 아쉽죠. 그러지 못하면 정 반대로 극단적인 어려운 길로 가요. 좋지 않은 출발과 적응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래서 꽤 많죠.
[그래서 탈북청소년들의 교육이 절실하다고 느낀 곽 교장이 맨 처음 한겨레 중고등학교를 맡았을 땐 희망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곽종문: 거의 부정적이거나 절망적인 모습의 아이들이었는데 5년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아요. 이 아이들은 양극단의 양향성이 강한 아이들이예요. 긍정적인 발전을 하면 엄청난 위력이 나오고 부정적으로 좋지 않은 모습으로 적응하면 참 어렵게 살아가죠. 우리 사회를 어렵게 할 요인도 있어요. 여러 가지 형평성 문제나 제도의 문제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국가 사회의 비용을 좀 줄이고 더 나아가 통일 전후의 남북 혼란과 충격을 줄여서 통합할 수 있는 지도자 양성이라는 큰 틀의 의미를 갖는다면 좀 강한 특별한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해요. 본인이 선택해서 자유롭게 한다는 비적극적인 제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제도가 필요하다는 거죠.
[통일 시대의 주역이 되거나, 사회 부적응자가 되거나. 탈북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곽 교장은 한겨레 중고등학교의 아이들만큼은 걱정이 없다고 합니다.]
곽종문: 그동안 나간 선배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 살아요.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이 올해부터 졸업해요. 연세대 의대 물리치료학과, 의료행정, 임상병리학과 아이들이 거의 상위권으로 졸업해서 인기 있는, 몸값이 높은 아이들이 되어서 왔어요. 물론 얼마나 힘든 고생을 했겠어요. 얼마 전에는 염충혁이라고 차의과 대학을 다니는 아이가 왔어요. 들어갈 땐 최하위였지만 지금은 중간 이상, 거의 상위권이래요. 1년 살고 우리 학교, 친정에 왔죠. 해부학을 1등을 했대요. 북한에서 배고파서 새, 쥐, 토끼, 꿩 등 온갖 것을 잡아먹어서 해부는 달인이 됐대요. 내장의 크기, 위치, 길이 등을 교수와 학생에게 설명하고 그랬대요.
[그래서 곽 교장은 인생의 밑바닥의 박사가 사회의 큰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만큼 탈북 청소년들이 치열하고 살고 있다는 거죠.]
곽종문: 매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숙사 바깥의 가로등에 서서 공부했대요. 잠은 안자고 어떻게 살았냐고 하니까 점심 먹고 30분 동안 자는 것이 하루 잠이었대요. 지금은 차의과 대학의 의사가 꿈이 아니라 지금은 미국의 아이비 대학의 의과대학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 SAT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 아이들이 우리 한국 청소년들이 갖고 있지 않은 능력이 뭐냐 하면 위기극복 능력, 그러니까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는, 인간으로서 극한의 힘을 발휘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믿는 마음이 있어요. 이 아이들의 선배가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 아이들도 따라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겨레 중고등학교는 대학 진학률을 줄이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학벌 위주의 대학이 아니라 실속 있고, 합리적인 취업이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작년까지 60%로 줄인 진학률은 그러나 올해 43명 졸업생 중에 36명이 대학에 가면서 진학률이 81%로 오히려 올랐습니다.]
곽종문: 대학만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대학에 가서 졸업을 하는 비율이 5%라고 하니까 그런 대학을 보낼 이유가 없죠. 오히려 대학을 보내서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현상이 오히려 많아요. 그래서 합리적인 방법은 취업을 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이 더 올바른 지도라고 생각해요. 올해 진학은 많이 했는데 진학의 내용이 좀 더 자기 직업을 전문화하고 깊이 있게 경험과 학문을 해서 취업하겠다는 의미로 대학에 갔기 때문에 진로 이탈이 별로 없어요. 산업생활, 음식조리, 자동차 전문 등 사무실에 앉는 직장이 아니라 산업 기능인을 선택해서 많이 가요.
[곽 교장은 실용적인 학문으로 전문가 양성에 힘쓸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세상에 환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겨레 학교 아이들은 평소 학교 인근의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거동을 못하는 노인을 돕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열심히 인생을 사는 이유, 나눔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곽종문: 아이들이 북한에 대한 향수가 있죠. 북한의 봄을 기다리죠. “왜 봄을 기다리느냐. 이 겨울이 추워서 기다리느냐. 결코 겨울이 춥다고 기다리지 말라. 봄은 꿈과 희망, 자유가 있으니까 기다리는 것이다.” 라고 말하죠. 이 아이들은 더 이상의 인생 바닥은 없을 만큼 밑바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꿈과 희망과 발전이 있겠죠. 그걸 항상 잘 간직하되, 간직하는 이유는 민족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잊지 말라고 늘 이야기 하죠.
[다가올 봄날, 나눔으로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한겨레의 아이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희망통신, 이예진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은 어떤 또래친구들과 어린 시절을 보내느냐에 따라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특히 탈북청소년들은 낯선 땅, 낯선 말투 때문에 남한 친구들 앞에 나서는 일이 쉽지 않은데요. 하지만, 탈북청소년들의 남한 적응을 돕기 위해 세워진 한겨레중고등학교의 아이들은 좀 다릅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곽종문 한겨레 중고등학교장을 만나 들어봤습니다.
곽종문 교장: 저희 학교는 일반학교처럼 졸업이 최종목표는 아니에요. 학습연령, 실력, 사회, 문화적응, 정신적, 신체적 건강회복 등의 적응력이 생겼다고 판단되면 일반 대한민국의 학교로 보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연령이 많으면 일반 학교로 갈 수 없어요. 19세 이상, 20세 이런 아이들은 졸업을 시켜요.
[2006년 3월 16명의 아이들과 경기도 안성, 한적한 보금자리에서 문을 연 한겨레 중고등학교는 무연고 학생이나 연령에 맞지 않는 학업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재교육시켜 사회에 내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곽종문: 우리학교 학생들이 적응능력이 최대로 잘 갖춰져 있어요. 우리 학교를 거쳐 일반학교를 가거나 우리 학교를 졸업해서 대학을 가거나 하는 학생들 중에는 탈락자가 하나도 없어요. 실력이나 적응력이 뛰어납니다. 또 사회에는 온전한 사회인으로 적응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니까 2가지 취업 자격증을 취득해서 졸업하도록 하고 있어서 대학엘 가도 관련학과로 가요. 제빵학과나 호텔조리학과 같은 유사학과로 가서 합리적인 진학을 할 뿐 아니라 진학을 하지 않더라도 이 아이들이 진학을 않더라도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살아가도록 자격과 능력을 갖춰서 내보내거든요.
[곽종문 교장 선생은 여느 남한의 고등학교처럼 명성이 높은 대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등학교에서 인생의 진로를 미리 고민하고 결정해 대학에서도 취업을 돕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곽종문: 이번에도 미 국무부에서 초청 유학생 10명을 뽑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이 6명이나 뽑혔어요.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죠. 지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상징적인 의미가 있죠. 미국이라는 나라가, 미 국무부에서 초청해서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우리 아이들이 많이 참석했고요. 지난 여름방학 때 기적 같은 일이 있었는데요. 인근의 극동대학에서 한국의 180명을 뽑아서 미국식 수업을 해요. 수업료가 200만 원 이상이에요. 총장님한테 부탁했죠. 숟가락 세 개만 놔 달라. 그래서 쾌히 받아주셨는데 한 달 동안 수업하고 나서 기적이 일어났어요. 1, 2, 3 등을 우리 아이들이 했어요. 총장님이 깜짝 놀라 전화했어요. 희망이면서 기적이다.
[저도 들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기본기가 부족한 탈북청소년들이 180명 중에 1, 2, 3 등을 했다니 말입니다. 그만큼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겠죠. 곽 교장은 탈북 청소년들이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할 줄 아는 인생 밑바닥의 박사라고 말합니다. 탈북청소년들은 조금만 한국사회가 돌봐주면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 반대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답니다.]
곽종문: 전체적으로 탈북자들이 다소 적응이 안 돼서 부정적인 모습도 있지만, 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거죠. 입장 바꿔 생각하면 저더러 동유럽 같은 데에 떨어뜨려 놓고 살라고 하면 못 살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저 아이들에게 우리가 그렇게 살라고 하는 거죠. 그래도 밝고 희망적인 모습이 많이 있어요. 대학생 이하의 아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초기에 의무교육을 1년 정도 시켜서 교육력을 높여주면 엄청난 에너지가 나올 수 있어요. 그러지 못해 아쉽죠. 그러지 못하면 정 반대로 극단적인 어려운 길로 가요. 좋지 않은 출발과 적응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래서 꽤 많죠.
[그래서 탈북청소년들의 교육이 절실하다고 느낀 곽 교장이 맨 처음 한겨레 중고등학교를 맡았을 땐 희망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곽종문: 거의 부정적이거나 절망적인 모습의 아이들이었는데 5년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아요. 이 아이들은 양극단의 양향성이 강한 아이들이예요. 긍정적인 발전을 하면 엄청난 위력이 나오고 부정적으로 좋지 않은 모습으로 적응하면 참 어렵게 살아가죠. 우리 사회를 어렵게 할 요인도 있어요. 여러 가지 형평성 문제나 제도의 문제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국가 사회의 비용을 좀 줄이고 더 나아가 통일 전후의 남북 혼란과 충격을 줄여서 통합할 수 있는 지도자 양성이라는 큰 틀의 의미를 갖는다면 좀 강한 특별한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해요. 본인이 선택해서 자유롭게 한다는 비적극적인 제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제도가 필요하다는 거죠.
[통일 시대의 주역이 되거나, 사회 부적응자가 되거나. 탈북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곽 교장은 한겨레 중고등학교의 아이들만큼은 걱정이 없다고 합니다.]
곽종문: 그동안 나간 선배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 살아요.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이 올해부터 졸업해요. 연세대 의대 물리치료학과, 의료행정, 임상병리학과 아이들이 거의 상위권으로 졸업해서 인기 있는, 몸값이 높은 아이들이 되어서 왔어요. 물론 얼마나 힘든 고생을 했겠어요. 얼마 전에는 염충혁이라고 차의과 대학을 다니는 아이가 왔어요. 들어갈 땐 최하위였지만 지금은 중간 이상, 거의 상위권이래요. 1년 살고 우리 학교, 친정에 왔죠. 해부학을 1등을 했대요. 북한에서 배고파서 새, 쥐, 토끼, 꿩 등 온갖 것을 잡아먹어서 해부는 달인이 됐대요. 내장의 크기, 위치, 길이 등을 교수와 학생에게 설명하고 그랬대요.
[그래서 곽 교장은 인생의 밑바닥의 박사가 사회의 큰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만큼 탈북 청소년들이 치열하고 살고 있다는 거죠.]
곽종문: 매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숙사 바깥의 가로등에 서서 공부했대요. 잠은 안자고 어떻게 살았냐고 하니까 점심 먹고 30분 동안 자는 것이 하루 잠이었대요. 지금은 차의과 대학의 의사가 꿈이 아니라 지금은 미국의 아이비 대학의 의과대학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 SAT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 아이들이 우리 한국 청소년들이 갖고 있지 않은 능력이 뭐냐 하면 위기극복 능력, 그러니까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는, 인간으로서 극한의 힘을 발휘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믿는 마음이 있어요. 이 아이들의 선배가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 아이들도 따라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겨레 중고등학교는 대학 진학률을 줄이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학벌 위주의 대학이 아니라 실속 있고, 합리적인 취업이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작년까지 60%로 줄인 진학률은 그러나 올해 43명 졸업생 중에 36명이 대학에 가면서 진학률이 81%로 오히려 올랐습니다.]
곽종문: 대학만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대학에 가서 졸업을 하는 비율이 5%라고 하니까 그런 대학을 보낼 이유가 없죠. 오히려 대학을 보내서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현상이 오히려 많아요. 그래서 합리적인 방법은 취업을 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이 더 올바른 지도라고 생각해요. 올해 진학은 많이 했는데 진학의 내용이 좀 더 자기 직업을 전문화하고 깊이 있게 경험과 학문을 해서 취업하겠다는 의미로 대학에 갔기 때문에 진로 이탈이 별로 없어요. 산업생활, 음식조리, 자동차 전문 등 사무실에 앉는 직장이 아니라 산업 기능인을 선택해서 많이 가요.
[곽 교장은 실용적인 학문으로 전문가 양성에 힘쓸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세상에 환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겨레 학교 아이들은 평소 학교 인근의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거동을 못하는 노인을 돕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열심히 인생을 사는 이유, 나눔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곽종문: 아이들이 북한에 대한 향수가 있죠. 북한의 봄을 기다리죠. “왜 봄을 기다리느냐. 이 겨울이 추워서 기다리느냐. 결코 겨울이 춥다고 기다리지 말라. 봄은 꿈과 희망, 자유가 있으니까 기다리는 것이다.” 라고 말하죠. 이 아이들은 더 이상의 인생 바닥은 없을 만큼 밑바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꿈과 희망과 발전이 있겠죠. 그걸 항상 잘 간직하되, 간직하는 이유는 민족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잊지 말라고 늘 이야기 하죠.
[다가올 봄날, 나눔으로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한겨레의 아이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희망통신,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