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남한의 직업' 이 시간에는 중장비 기계를 다루는 전문 직업인 크레인 기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남한의 다양한 직업 중에는 공중에서 하는 일도 있습니다. 크레인 기사는 보통 고층 건축공장 현장에서 무거운 건설 자재를 들어 올리거나 내려 주며 공사 진행을 돕는 타워크레인 기사가 있고, 공장 안에서 생산품을 옮기는 천장크레인 기사 그리고 항만시설에서 콘테이너 즉 북한에서 말하는 짐함을 배에 싣거나 내리는 항만 크레인기사 등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이들 중에서 공장안에서 생산품을 옮기는 작업을 하는 천장크레인 기사에 대해 살펴봅니다. 남한에서는 이 직종의 종사자를 기중기 운전사라고도 부릅니다. 크레인 기사는 천장에 설치된 운전실에서 크레인을 움직이면서 생산품을 좌,우,앞,뒤 또는 상하로 운반하는 일을 합니다. 이때 생산품은 크레인에 연결된 줄에 매달려서 운반이 됩니다.
지난 2004년 남한에 입국한 30대의 탈북여성 오은수(가명)씨는 천장크레인 남한 국가기술 자격증을 취득하고 2년째 천장크레인 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씨는 현재 남한의 중화학 공업 도시인 울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5톤에서 40톤까지 여러 종류의 천장크레인을 운전하고 있습니다. 오 씨로부터 직접 어떻게 하면 크레인 기사가 될 수 있으며 그가 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오은수: 무거운 짐을 들어 나르는 겁니다. 천장크레인은 공장 안 천장에 레일이 양쪽에 있는데 그 레일에 달려 있습니다. 운전실은 레일 밑에 조그맣게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파이프를 만듭니다. 전부 쇠붙이라서 무거우니까 사람이 움직일 수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중기가 하는 것이죠.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은 안다녔습니다. 크레인이 워낙 비싸서 학원이 없습니다.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면서 시험보고 자격증을 땄습니다. 국가시험이 일 년에 네 번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공사현장에는 가본적도 없던 오 씨가 남한에서 집 짓는 현장을 우연히 보면서 흙을 파는 기계인 흙손 즉 포크레인 기계를 보고 한 번에 반해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중장비 기사가 되려고 했는데 주위의 권유로 천장크레인 기사가 됐습니다.
그는 남한의 직업안정고용쎈터를 찾게 됐고 직업을 소개 받았습니다. 그 뒤 장비를 취급하는 울산으로 가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자격증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기에 울산공장으로 가서는 시간당 3달러 정도의 임금을 받고 일해야 했습니다.
오은수: 회사 들어간 첫 달 부터 돈을 받았는데 그때는 임금이 2,850원이었습니다. 그것 이외에는 일체 수당이 없죠. 그런데 자격증을 따니까 모든 수당이 나오더라고요. 남자나 여자나 보통 그런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무조건 받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올라가질 못합니다. 보통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보통 12미터 정도 됩니다.
하루 작업시간은 보통 10시간, 잔업이 있을 때는 12시간씩 주 6일 일합니다. 그리고 한번 운전실에 올라가면 내려오는 것이 어렵다고 오 씨는 말했습니다.
오은수: 쉬는 시간이 5분도 없습니다. 도중에 밥 먹는 시간이 딱 30분 있습니다. 일할 때는 정말 힘들고, 졸리고, 12시간 내 앉아 있어야 하니까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그렇지만 일한 것만큼 돈을 다 주니까 돈을 받을 때는 뿌듯하죠. 북한에서는 일하고도 보수를 받지 못했거든요. 저는 아직도 북한에서 일하고 받지 못한 월급하고 배급이 많거든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일하면 수당까지 전부 합쳐서 주고 여자들은 생리 수당도 있고 기술수당 자격증 수당 다 주더라고요. 1년이 지나가면 퇴직금도 주고 그러니까 돈을 받을 때마다 보람이 있죠.
현재 오은수 씨는 시간당 3,100원 미화로 3달러 조금 넘게 받습니다. 전문 자격증이 있는 이의 보수 치고는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잔업수당, 특근수당, 야간수당 등 각종 수당과 3개월에 한번 있는 보너스 즉 격려금을 합하면 월 170만원 미화로 1800달러 정도를 손에 쥘 수가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보통 젊은 사람을 선호하며 천장크레인기사 자격은 학력제한 없고, 남녀 불문으로 높은 곳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작업환경에서 오는 공포심으로 생각보다는 경쟁이 치열한 것만은 아닙니다.
오은수: 사람을 받기는 많이 받았는데 공장안에 돌아다니다가 도저히 저것을 못 타겠다고 견학 하다가 그냥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단은 위험하니까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우리는 운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중기 꼭대기에 올라가서 정비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래야 됩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못하죠.
현재 탈북여성 오은수 씨가 다니는 직장에는 같은 북한 출신의 여성이 4명이 일하고 있기도 합니다.
워싱턴-이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