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 나의 미래] 보험 설계사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0.07.13
2010.07.13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안녕하세요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세계축구대회는 스페인이 우승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영국의 BBC 방송은 이번 축구 경기와 관련한 보험시장 규모가 90억 달러로 추산된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국제축구연맹뿐만 아니라 국가팀, 중계방송국, 기업 등이 보험을 들었는데요. 각 나라와 단체들은 만일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잠재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보험 가입이 성사되기까지 일선에서 일을 처리하는 보험설계사란 직업에 대해 알아봅니다.
세계적인 재보험사인 스위스 리에 따르면 한국의 보험시장 규모는 920억 달러로 미국, 일본, 영국, 등에 이어 열 번째로 크고 한 사람당 일 년에 내는 보험료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합쳐 1천900달러입니다.
북한도 인민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노동자들은 북한의 보험을 신뢰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탈북자 김광철 씨입니다.
김광철: 은행에 돈 넣으면 다 국가 돈 돼버리고 하는 사회인데요. 뭐 돈 있으면 땅에다 파묻어 놓고 있잖아요.
보험이란 경제적 손해를 대비해 일정한 금액을 적립해 뒀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약관에 따른 금액을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서 개인이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사고에 대비해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 보험회사에 주면 공동재산을 가진 보험회사가 사고가 터진 사람에게 일정액을 주는 겁니다.
남한에는 보험 상품을 개인에게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을 보험설계사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보험 상품이 있지만 주로 암이나 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 보상을 받게 되는 건강보험 또는 손해보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통사고를 대비해선 자동차보험을 들고 집에 불이 났을 때를 대비해선 화재보험 등을 듭니다. 개인은 이런 보험을 보험 회사를 찾아가 가입하기도 하지만 상품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은 보험설계사를 만나 계약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서울에 있는 한 보험회사에 전화해 보험설계사가 되는 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관계자: 조건은 없는데 고졸은 되어야 합니다. 설계사의 근무 시간은 딱히 정해진 않았는데 조회 때는 나와야 하고 자기 능력껏 월급이 나오는 거니까 12시간 일하는 사람도 있고 3시간만 주무시고 활동하는 분도 있고요. 처음 한 달은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교육비 80만 원이 지급됩니다.
일단 보험상품에 대해 교육을 받은 다음엔 자신이 아는 사람 또는 보험이 필요한 사람을 보험설계사가 찾아가 직접 계약을 받아오게 되고 그 성과에 따라 보수가 정해집니다. 남한에선 특히 여성 보험설계사가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탈북여성 이애란 씨입니다.
이애란: 당시 제가 젖먹이 아이가 있었고 경기가 나쁠 때라 받아주질 않더라고요. 가장 열려 있는 곳이 보험회사였습니다. 보험이 금융 상품으로 돈을 가지고 하는 것이어서 학력도 높아야 하겠더라고요. 상품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남쪽에서는 많이 아는 사람에게 팔게 하다 보니까 보험회사는 가장 싼 노동력을 쓴다는 것이 아줌마들이 적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 국무부에서 수여하는 ‘용기있는 국제여성상’을 받은 이애란 씨는 탈북해 남한에서 제일 처음 호텔 청소부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일이 보험설계사로 이 씨는 일 시작하고 1년 만에 보험 판매왕에까지 올랐고 훗날 북한에서의 경험을 살려 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현재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이 씨는 과거를 회상하며 친인척, 친구 하나 없었던 남한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보험에 가입시킨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경험담을 들려줬습니다.
이애란: 탈북자라고 못 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것이죠. 특히 탈북자는 북한에서 있었기 때문에 남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런 것을 이해 못 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일단 내가 남한에 누군가에게 상품을 설명하기 위해 보험 얘기부터 꺼내면 남한 사람들은 다 돌아섭니다. 상품을 팔기 위해선 다른 얘기부터 시작해 친해지는 과정에서 보험 상품을 얘기를 꺼내야 합니다. 탈북자가 전혀 할 수 없는 직업은 아니에요. 저도 해보니까 할만 하더라고요. 그런데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해야 하고요. 그것도 기술이거든요. 기술 습득을 해야 하죠.
올해 36살인 탈북자 김광철 씨는 남한에서 통신선을 매설하는 일, 아파트 건설일, 은행의 야간 경비 등 여러 직업을 경험했지만 어느 날 읽은 한 권의 책으로 보험설계사가 됐습니다.
김광철: 나이 45살에 시작했다고 했나? 2007년 시작해서 한 달에 3억 7천만 원 벌었잖아요. 그 사람 책보고 나도 희망을 품고 시작한 거죠.
김 씨가 하는 일은 단체 보험을 파는 일입니다. 단체보험이란 보험설계사가 개인을 찾아다니며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회사나 단체에 가서 설명회를 하고 가입자를 모집하는 방식입니다. 김 씨가 하는 일에 대해 기자가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김광철: 보험은 순천에 있을 때 손해보험, 생명보험 자격증을 일하려고 땄습니다. 이번에 서울에 올라와서 누가 해보라고 해서 다시 시작한 것이 1년이 좀 넘었습니다.
기자: 한 달이면 몇 건이나 계약을 성사시키나요?
김: 사람마다 틀리지만 대부분 한 달에 500만 원은 이상은 법니다. 그런데 저는 지방을 내려가야 하는 데 경비가 없어서 지방을 못 가고 있습니다. 처음에 한 1천만 원은 가지고 시작해야 하는데…
기자: 경비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무슨 말인가요?
김: 자기 사업이니까 돈이 있어야죠. 자동차 유지비, 밥값, 양복비 그리고 고객 식사도 대접할 수 있어야 할 돈이 있어야 합니다.
한 달 수입이 500만 원이라면 미국 돈으로 하면 4천200달러 정도 됩니다. 그런데 김 씨는 자기 동료들의 월수입이 4천 달러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아직 자신은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김 씨는 언젠가는 500만 원의 열 배가 넘는 수입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 순간을 준비 중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장 동료의 얘기로 대신했습니다.
김광철: 우리 회사에 정말 못생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한 달에 5천만 원을 꾸준히 법니다. 그 사람과 함께 영업을 나가면 사람들이 혼이 빠진 사람들처럼 계약하더라고요. 나뿐만 아니라 회사 사람들이 그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그 이사님은 그냥 기도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저도 교회를 다니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계약을 성사시킨 실적이 없으면 보수를 받지 못하는 일, 보험설계사. 하지만 일을 시작하기 위해 작업장을 꾸릴 필요도 없고 특별히 학벌이 요구되지 않는 자영업으로 자신의 능력에 따라 수입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매력도 있는 직업입니다.
김광철: 한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보험에서 성공하면 다른 사업도 다 잘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에 출근하면서 기도합니다. 일 잘 풀리게 해달라고.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오늘은 보험설계사란 직업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세계축구대회는 스페인이 우승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영국의 BBC 방송은 이번 축구 경기와 관련한 보험시장 규모가 90억 달러로 추산된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국제축구연맹뿐만 아니라 국가팀, 중계방송국, 기업 등이 보험을 들었는데요. 각 나라와 단체들은 만일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잠재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보험 가입이 성사되기까지 일선에서 일을 처리하는 보험설계사란 직업에 대해 알아봅니다.
세계적인 재보험사인 스위스 리에 따르면 한국의 보험시장 규모는 920억 달러로 미국, 일본, 영국, 등에 이어 열 번째로 크고 한 사람당 일 년에 내는 보험료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합쳐 1천900달러입니다.
북한도 인민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노동자들은 북한의 보험을 신뢰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탈북자 김광철 씨입니다.
김광철: 은행에 돈 넣으면 다 국가 돈 돼버리고 하는 사회인데요. 뭐 돈 있으면 땅에다 파묻어 놓고 있잖아요.
보험이란 경제적 손해를 대비해 일정한 금액을 적립해 뒀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약관에 따른 금액을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서 개인이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사고에 대비해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 보험회사에 주면 공동재산을 가진 보험회사가 사고가 터진 사람에게 일정액을 주는 겁니다.
남한에는 보험 상품을 개인에게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을 보험설계사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보험 상품이 있지만 주로 암이나 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 보상을 받게 되는 건강보험 또는 손해보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통사고를 대비해선 자동차보험을 들고 집에 불이 났을 때를 대비해선 화재보험 등을 듭니다. 개인은 이런 보험을 보험 회사를 찾아가 가입하기도 하지만 상품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은 보험설계사를 만나 계약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서울에 있는 한 보험회사에 전화해 보험설계사가 되는 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관계자: 조건은 없는데 고졸은 되어야 합니다. 설계사의 근무 시간은 딱히 정해진 않았는데 조회 때는 나와야 하고 자기 능력껏 월급이 나오는 거니까 12시간 일하는 사람도 있고 3시간만 주무시고 활동하는 분도 있고요. 처음 한 달은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교육비 80만 원이 지급됩니다.
일단 보험상품에 대해 교육을 받은 다음엔 자신이 아는 사람 또는 보험이 필요한 사람을 보험설계사가 찾아가 직접 계약을 받아오게 되고 그 성과에 따라 보수가 정해집니다. 남한에선 특히 여성 보험설계사가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탈북여성 이애란 씨입니다.
이애란: 당시 제가 젖먹이 아이가 있었고 경기가 나쁠 때라 받아주질 않더라고요. 가장 열려 있는 곳이 보험회사였습니다. 보험이 금융 상품으로 돈을 가지고 하는 것이어서 학력도 높아야 하겠더라고요. 상품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남쪽에서는 많이 아는 사람에게 팔게 하다 보니까 보험회사는 가장 싼 노동력을 쓴다는 것이 아줌마들이 적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 국무부에서 수여하는 ‘용기있는 국제여성상’을 받은 이애란 씨는 탈북해 남한에서 제일 처음 호텔 청소부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일이 보험설계사로 이 씨는 일 시작하고 1년 만에 보험 판매왕에까지 올랐고 훗날 북한에서의 경험을 살려 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현재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이 씨는 과거를 회상하며 친인척, 친구 하나 없었던 남한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보험에 가입시킨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경험담을 들려줬습니다.
이애란: 탈북자라고 못 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것이죠. 특히 탈북자는 북한에서 있었기 때문에 남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런 것을 이해 못 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일단 내가 남한에 누군가에게 상품을 설명하기 위해 보험 얘기부터 꺼내면 남한 사람들은 다 돌아섭니다. 상품을 팔기 위해선 다른 얘기부터 시작해 친해지는 과정에서 보험 상품을 얘기를 꺼내야 합니다. 탈북자가 전혀 할 수 없는 직업은 아니에요. 저도 해보니까 할만 하더라고요. 그런데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해야 하고요. 그것도 기술이거든요. 기술 습득을 해야 하죠.
올해 36살인 탈북자 김광철 씨는 남한에서 통신선을 매설하는 일, 아파트 건설일, 은행의 야간 경비 등 여러 직업을 경험했지만 어느 날 읽은 한 권의 책으로 보험설계사가 됐습니다.
김광철: 나이 45살에 시작했다고 했나? 2007년 시작해서 한 달에 3억 7천만 원 벌었잖아요. 그 사람 책보고 나도 희망을 품고 시작한 거죠.
김 씨가 하는 일은 단체 보험을 파는 일입니다. 단체보험이란 보험설계사가 개인을 찾아다니며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회사나 단체에 가서 설명회를 하고 가입자를 모집하는 방식입니다. 김 씨가 하는 일에 대해 기자가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김광철: 보험은 순천에 있을 때 손해보험, 생명보험 자격증을 일하려고 땄습니다. 이번에 서울에 올라와서 누가 해보라고 해서 다시 시작한 것이 1년이 좀 넘었습니다.
기자: 한 달이면 몇 건이나 계약을 성사시키나요?
김: 사람마다 틀리지만 대부분 한 달에 500만 원은 이상은 법니다. 그런데 저는 지방을 내려가야 하는 데 경비가 없어서 지방을 못 가고 있습니다. 처음에 한 1천만 원은 가지고 시작해야 하는데…
기자: 경비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무슨 말인가요?
김: 자기 사업이니까 돈이 있어야죠. 자동차 유지비, 밥값, 양복비 그리고 고객 식사도 대접할 수 있어야 할 돈이 있어야 합니다.
한 달 수입이 500만 원이라면 미국 돈으로 하면 4천200달러 정도 됩니다. 그런데 김 씨는 자기 동료들의 월수입이 4천 달러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아직 자신은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김 씨는 언젠가는 500만 원의 열 배가 넘는 수입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 순간을 준비 중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장 동료의 얘기로 대신했습니다.
김광철: 우리 회사에 정말 못생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한 달에 5천만 원을 꾸준히 법니다. 그 사람과 함께 영업을 나가면 사람들이 혼이 빠진 사람들처럼 계약하더라고요. 나뿐만 아니라 회사 사람들이 그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그 이사님은 그냥 기도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저도 교회를 다니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계약을 성사시킨 실적이 없으면 보수를 받지 못하는 일, 보험설계사. 하지만 일을 시작하기 위해 작업장을 꾸릴 필요도 없고 특별히 학벌이 요구되지 않는 자영업으로 자신의 능력에 따라 수입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매력도 있는 직업입니다.
김광철: 한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보험에서 성공하면 다른 사업도 다 잘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에 출근하면서 기도합니다. 일 잘 풀리게 해달라고.
‘나의 직업, 나의 미래’ 오늘은 보험설계사란 직업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