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싱가포르에서 부흥의 꿈을 배우길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8.06.15
Leekuanyew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고문장관(초대 총리·가운데)이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 photo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달 12일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의 북-미 정상회담 결과는 여러분들도 노동신문을 통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단 여러분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쌍수 들고 환영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젠 지긋지긋하죠. 맨날 핵 실험 했다, 미사일 쐈다 이런 것만 신문에 나오고, 들려오는 이야기는 이것 때문에 미국이 대북제재를 더 심하게 했다 이런 것만 들었습니다.

실제 북한 인민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이번 11일자에 노동신문 1면에 싱가포르 야경 사진 14장이나 실린 것을 저는 인상 깊게 봤습니다. 김정은의 얼굴이 실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경을 공개한 것이 아니라, 이건 싱가포르의 호화건축물을 김정은의 사진이 없어도 멋있게 촬영해 그대로 내보냈습니다. 북한이 진짜 많이 변했구나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외국의 발전상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이건 뭘 의미하겠습니까. 앞으로 김정은이 이런 번영을 곧 북한에 구현해 줄 것이니 기다리라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전 세계가 좋은 소식이 들리길 학수고대했습니다.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대신 미국은 북한의 체제 안정을 보장해주고, 대북 제재를 해제하며, 경제 지원의 물꼬를 틀 것이라고 모두가 믿었습니다.

하지만 합의문이 발표된 뒤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4개 조항에 북한에 준다는 것만 있지, 북한이 하겠다고 한 것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1항의 새로운 미조 관계 형성은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것이고, 2항의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도 김정은이 요구했던 것이고, 4항의 미군 유해 송환 작업도 옛날에 북한이 유해를 1구 발굴할 때마다 100만 달러씩 챙기던 돈줄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 한미 군사훈련까지 중단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미국과 한국 언론들이 도대체 뭘 한거냐,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또 속아서 이런 허접한 결과를 만든 것이 아니냐고 엄청 비판합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트럼프는 얼마 전까지 김정은을 ‘꼬마 로켓맨’이니 ‘병든 강아지’니 하고 비판하더니 이번엔 김정은을 극찬하고 나섰습니다. 병든 강아지는 미국에서 정신병자라는 뜻인데, 그렇게 욕하던 김정은을 향해 이번에는 “김 위원장이 엄청나게 매력적인 성격과 뛰어난 두뇌가 잘 결합된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저건 전혀 트럼프 답지 않은 행동과 말이었습니다. 또 세계 최고의 협상가를 자처하던 트럼프가 이런 합의문에 서명했다는 것도 모두가 의아해하는 대목이었죠.

저는 이런 것을 보면서 이번 협상에 합의문에 담지 못한 큰 내용들이 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공동성명 외에 또 다른 이면 합의가 분명히 있지 않고서야 트럼프가 저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김정은이 돌아가서 곧 행동에 착수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당신이 만족할 만한 확실한 폐기를 할 테니 인민들도 납득시키게 내 체면을 깎지 말아 달라, 나를 믿어봐라 했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또 김정은은 중국 눈치도 봐야 하는데 자기 맘대로 미국과 이러저런 합의를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북한은 미사일 기관 연구 시설을 조용히 지난달에 없애고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힘들게 만든 핵 무력을 하나하나 없애는 것을 주민들이 알면 힘이 빠지니 조용히 없애버리기로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김정은은 내부적인 체면을 얻고 트럼프는 실리를 얻는 셈이 됩니다. 물론 실제 그런 밀약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시간이 지나면 알겠죠.

북한 인민들 입장에서야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든 없든 중요치 않고 일단 제재를 풀고 잘 살게 해주기만 하면 환영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번에 김정은이 싱가포르를 보면서 북한을 발전시킬 꿈을 안고 돌아가길 바랐습니다. 싱가포르는 인구는 북한의 4분의 1 정도인데, 국민소득은 무려 5만 3000달러에 이릅니다. 북한보다 한 50배 이상 더 잘사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이렇게 번영하게 한 사람은 리콴유라는 사람입니다. 리콴유는 1965년 싱가포르가 독립했을 때부터 총리를 맡아 1990년까지 25년 동안 통치를 하면서 버려진 땅이나 다름없던 가난한 어촌 싱가포르를 세계 일류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하도 오래 해먹으니 리콴유 보고 독재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김일성, 김정일의 독재에 비하면 이건 독재도 아닙니다. 리콴유가 누굴 총살하라 한 적도 없고, 그 나라 자체에 공개총살도 없고, 하루아침에 몰락해 가족과 함께 관리소에 갈 걱정도 없고, 또 개방돼 외국에 얼마든지 나갈 수 있고, 수천 만 명의 외국인이 놀러오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가 창당한 싱가포르 인민행동당은 59년째 집권 중입니다. 거의 일당 집권인데, 그럼에도 싱가포르 사람들은 이런 통치에 대해 그리 큰 불만을 느끼지 않습니다.

1950~60년대 쩍하면 파업과 폭동에 시달리던 나라의 질서를 안정시켰고, 쓰레기와 오물로 넘치던 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로 만들었고, 무엇보다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변신시켰습니다. 물론 싱가포르는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혀가 나올 정도의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저는 김정은이 북한을 싱가포르의 10분의 1만큼만 따라가게 발전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도면 생활수준이 중국과 거의 비슷할 겁니다. 북에서 김일성이 50년 넘게 통치해도 북한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싱가포르의 리콴유는 정치안정을 이루면서 동시에 개방해 싱가포르를 부유한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김정은이 이번 방문길에서 나도 싱가포르의 리콴유와 같은 통치자가 되겠다는 꿈을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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