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만 시청 못하는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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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첫 골을 넣은 김영권 선수가 환호하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첫 골을 넣은 김영권 선수가 환호하고 있다.
ASSOCIATED PRESS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새 월드컵, 북한 말로 세계축구선수권대회가 한창인데, 북에서는 월드컵을 중계하는 것 같지 않네요. 월드컵이 지난주인 14일에 개막했고, 이제는 조별 리그도 끝났는데 아직 잠잠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제 기억에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월드컵을 중계했고, 심지어 1994년엔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도 중계했지만, 지금은 러시아에서 열렸는데도 방영하지 않습니다.

14일에 월드컵이 개막했을 때 북한 중앙TV는 김정은의 싱가포르 방문 소식과 북미 정상회담 기록영화를 하루 종일 몇 차례씩 돌려가며 방영했습니다. 이렇게 정세가 크게 바뀌는 상황에서 인민의 관심사를 축구로 돌려놓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요?

남쪽은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지만, 나름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 조 구성을 할 때 세계 순위 1등이자 지난 월드컵 우승팀인 독일과, 15위인 메히코, 24위인 스웨리예와 한조가 됐는데, 한국의 순위는 57위입니다. 그래서 스웨리예나 이기자 했는데, 첫 경기부터 졌습니다. 메히코한테도 지고, 절망적이었는데, 그런데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을 2대 0으로 이겨버렸습니다. 역사상 독일을 월드컵에서 2골 이상 이긴 나라가 딱 세 팀 밖에 없었는데, 한국이 이겼고, 또 독일이 월드컵에서 아시아 나라에게 진 역사가 없는데 이번에 처음 졌고, 독일이 월드컵이 아시아 국가에서 먹은 골이 5골 밖에 없는데 이중 4골이 한국에게 먹혔습니다.

조 예선 결과 세계 1등이자 지난 월드컵 우승국인 독일이 4등이고 한국이 3등입니다. 메히코가 스웨리예만 이겨졌어도 우리가 16강에 가는 것인데, 그래도 비록 16강에 올라가진 못했지만 세계 1등을 이겨버렸다는 것만으로도 전 세계 면전에서 한국 축구가 저렇게 세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었고 충격을 주었고, 그것만으로 한국 국민은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한국 경기가 열리면 거리마다 사람들이 밖으로 응원을 나옵니다. 차에 실은 커다란 TV를 함께 보며 “대한민국!” 하며 열심히 응원하고, 술집마다 사람들이 모여 한 잔 마시며 같이 응원합니다. 올해도 그랬는데, 독일을 이긴 날은 16강에 올라가지 못해도 온밤 거리는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자국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해당 국가들 모두 환호하거나 웃으며 날밤을 새웁니다.

심지어 이번에 월드컵을 생중계하던 이집트 축구해설자가 자국팀이 경기 종료 직전에 골을 먹고 탈락하게 되자 심장마비가 와서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집트는 살라라는 걸출한 축구선수가 나와서 28년 만에 월드컵에 올라갔고, 이 나라 사람들도 살라가 활약하면 16강에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조도 그렇게 센 팀들이 묶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월드컵 직전에 열린 유럽 축구경기 대회에서 살라가 부상을 입어 첫 경기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부터 나와도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습니다. 그쪽 사람들은 기대를 엄청 가졌다가 예선 탈락까지 하니 그만 충격에 심장마비가 온 것입니다. 그런 소식을 듣고 보니 2010년 월드컵 때 북한에서도 심장마비가 걸려 죽은 장령들이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첫 경기에서 브라질에 1 대 0으로 지자 북한에선 이런 여론이 일었죠. 세계 최강 브라질하고 겨우 한 골 차로 졌으니 포르투갈하고는 해볼만 하다 이렇게 모두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포르투갈 경기는 안하던 생중계로 다 보여주었는데 결과가 7 대 0이 나왔습니다. 완전히 무너진 것이죠. 그때 북한을 향해 골을 넣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호날두는 이번 대회에도 출전해서 강팀인 스페인과 경기에서 혼자 3골이나 넣었습니다.

아무튼 그때 포르투갈과 북한의 경기가 열리니 북한에서 나름 힘이 있다는 군 간부들은 4.25체육단에 모여 함께 응원했습니다. 7대 0으로 끝난 뒤 그 자리에 있던 장령 2명이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제가 듣기론 총참모부 종합계획국 장령 1명, 축지국 장령 1명으로 기억하는데 둘 다 소장이었던 걸로 압니다.

일하다 죽었으면 애국열사라도 주었겠는데, 응원하다 죽었으니 이걸 애국열사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북한팀을 너무 사랑하니까 충격을 받아 죽은 건데 사고사라고 하기도 그렇고. 내부에서 논란 끝에 아무튼 이들의 장례식은 소속 기관장으로 진행됐다는 것까진 들었습니다. 얼마나 축구 열기에 차 넘쳤으면, 상상 못할 대패에 충격으로 심장마비에 걸렸겠습니까? 어쩌면 거긴 60세 넘는 노인들을 별 달고 자리에 앉혀 놓으니 젊었으면 죽지 않았을 것을 너무 무리한 듯 합니다.

어쨌든 제가 북에 있을 때도 축구에 대한 열기는 남쪽 못지 않았습니다. 남미, 특히 한국과 이번에 같은 조에 포함된 메히코의 경우 독일을 상대로 골을 넣는 순간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인공지진이 관측됐습니다. 경기 보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펄쩍 뛰니 지진 관측계가 지진이 일어났다고 삑삑거린 것입니다.

페루도 이번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는데, 그래도 한 경기 도중에 벌차기 하나 얻게 됐는데, 그 순간 수도 리마에서 지진이 관측됐답니다. 아마 한국도 독일을 상대로 골을 넣는 순간 서울에서 지진이 관측됐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전 세계인들의 희로애락이 모두 러시아 월드컵에 가 있는 이때, 북한 인민들만 축구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에서 월드컵을 빼놓지 않고 봤던 제 입장에서 이번 월드컵 못 보는 여러분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특히 한국이 세계 최강 독일을 상대로 2대 0으로 이기는 순간을 생중계로 봤더라면 남과 북이 동시에 환호가 터져 나와 전 세계에 울려 퍼졌을 것 같습니다. 김정은이 핵을 폐기하고 개방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이것부터 실시간 생중계해주면 인민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더 좋기는 다음 월드컵엔 남북 단일팀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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