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도 없었던 가난한 노동당 대회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1.01.22
선물도 없었던 가난한 노동당 대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근로자들의 손을 잡으며 당대회 준비 노고를 격려하는 모습.
연합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당대회가 끝난 뒤 참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참 어이가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더군요. 예전에는 자기가 참가한 자리에서 졸았다고 죽이고 그랬는데, 점점 상태가 심해졌는지 이번에는 머리를 숙였다고, 또는 뒤를 돌아봤다고 사람들을 끌고 가고 그랬답니다. 점점 포악해지는 게 도를 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당대회는 왜 그리 오래했는지, 참가자들이 열흘이나 대회 참가하며 만세를 너무 외쳐서 목이 다 쉬었다고 합니다. 좀 설렁설렁 외치고 싶어도 옆에 누가 스파이인지 몰라 쉬지도 못하고 힘껏 소리치니 그 목이 견디겠습니까.

제일 황당한 일은 당대회 끝난 다음에 선물도 없었다고 하는군요. 6차 당대회 때는 목란이라고 상표가 붙은 천연색 텔레비전을 주고, 7차 당대회에서도 큰 액정 TV를 주었는데, 이번에는 선물 명세표만 주고 나중에 준다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얼마나 돈이 없으면 그랬겠습니까. 점점 당대회 참가자들에게 선물조차 줄 돈도 없는 거지 신세가 되고 있는데, 무슨 5개년 계획을 또 내놓습니까. 그거 집행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가장 믿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중국도 북한을 도와주지 않나 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단동에 나가 있는 북한 영사관 현금 수송차량을 중국이 11월에 빼앗았다고 합니다. 대북제재로 국제 송금망을 이용 못해서 김정은은 단둥 영사관 소형버스로 해외에서 무역일꾼들이 번 달러를 몰래 북에 들여왔는데, 중국도 김정은을 더 도와줄 생각이 없는지 그걸 빼앗은 겁니다.

정말 안팎으로 악재가 가득한 상태인데, 김정은은 또 스스로 황당한 방역규정을 내세워 계속 국경을 꽁꽁 막고 있습니다. 모든 수입물자는 자외선 소독을 마친 뒤 80도 보온창고에 40시간을 보관한 뒤 출하창고로 다시 옮겨 14일 동안 방역결과를 지켜보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확신이 든 다음에 이동시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예전에 방송을 통해 전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그런 지침 때문에 김정은도 달러를 홀딱 태워먹을 뻔한, 어이가 없는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국경 문을 좀 연 곳이 신의주 세관인데, 그 세관에서 만든 80도 보관창고는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그냥 차 한 두 대 분의 물자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크기로 갑자기 지은 거죠. 신의주 세관원들을 8월에 숙청하면서 김정은의 6촌 누나인 김영주 손녀딸을 비롯한 몇 명만 살려두고 나머지는 잡아갔는데 그 모자란 인원들은 북부 지역의 다른 소규모 세관에서 충당했습니다. 새로 충원된 인원들은 신의주 세관에 오자마자 방역지침을 지킨다면서 강제 노동에 동원됐습니다.

그런데 모든 물자를 내려서 풀어놓은 뒤 창고에 넣고 자외선 소독을 하고 또 이동시켜 80도 창고에 넣고 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북한의 관문이라는 신의주 세관에서 처리할 수 있는 물동량이 하루 트럭 한두 대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9월에 당 창건 75주년 행사를 맞아 전 세계에 파견된 북한의 무역일꾼들, 외교관들이 상납하는 돈이 단둥 북한 영사관에 도착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액수가 많았죠. 5천만 달러 이상으로, 북한의 올해 공식 수출액을 훨씬 넘는 돈입니다. 돈을 단둥 영사관에서 자루에 담아서 이송차량인 단둥영사관 소유의 소형버스로 신의주 세관으로 넘겨왔습니다. 이거 넘기고 얼마 안 돼 김정은의 이 비밀자금 이송 버스가 다시 움직이다가 중국에 압류가 된 것입니다.

아무튼 어마어마한 양의 달러와 위안화 뭉치가 넘어왔는데, 이걸 방역지도서에 따라 소독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김정은의 지침이 80도에서 40시간인데, 당시엔 방역지도서에 80도에서 8시간으로 돼 있었다고 합니다. 그걸 위반하면 사형을 하고 막 가차없이 처벌하니 당연히 외화들을 자루에서 막 꺼내서 쫙 펼쳐놓은 뒤 80도 창고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80도에 8시간을 두면 너무 말라버려서 부스러질 수 있습니다. 나뭇잎 같은 것도 해가 쨍쨍 나는 날에 밖에서 마르면 조금만 손을 대도 부스러지지는, 그와 유사한 상태가 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몇 시간이 되니 돈이 막 우글우글 말라가고, 조금만 두면 확 불이 탈 것 같았다고 합니다. 이때 세관에 비상이 걸렸죠.

이 어마어마한 돈이 타버리면 세관원들 숙청된 지 한 달 만에 새로 온 세관 사람들 또 숙청될 판입니다. 그렇다고 탈거 같다고 꺼내면 또 방역지침 위반한다고 또 숙청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제발 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죠.

다행히 8시간이 지나도 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폐가 너무 말라서 이거 묶어서 툭 치면 부스러지는 것입니다. 북한 암시장에서도 지폐가 빳빳한 새 것이면 제 가격을 쳐주지만 상태가 좋지 않으면 10%쯤 할인해 거래되는데, 방역지도서 대로 소독한 달러와 위안화 지폐가 딱 그 상태가 된 것입니다. 설마 김정은이 암시장에서 달러를 바꾸지는 않겠지만 이걸 누구한테 주면 받는 사람은 사실상 90% 가치만 받는 셈이 됩니다.

아무튼 신의주 세관 사람들은 명이 10년은 감소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그때에만 일어났겠습니까. 전 세계에 없는, 북한에만 존재하는 황당무계한 방역지침 때문에 오늘 이 순간도 북한에선 이런 웃긴 촌극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외부에서 지원해 주고 싶어도 하겠습니까? 가령 코로나 백신 같은 것을 남쪽에서 지원하면 남조선 괴뢰들이 준 것은 믿을 수 없다면서 이걸 또 80도에서 40시간 가열하는 촌극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오늘 막대한 달러까지 태워먹을 뻔한, 황당한 일화를 통해 김정은이 지시한 방역지도서란 것이 존재하는 한 북한은 줘도 받아먹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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