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정상회담과 베트남의 추억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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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 정상회담을 보름여 앞둔 10일 주베트남 북한대사관 앞에서 공안(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보름여 앞둔 10일 주베트남 북한대사관 앞에서 공안(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주말에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는 사실이 발표됐습니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과 만난다고 합의가 끝나자마자 막 자랑하던 작년과는 달리 북한은 이 사실을 인민들에게 즉각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저번 회담을 동네방네 열심히 떠들었지만 결국 제재도 안 풀리고, 경제는 더 내리막길로 굴러가는 등 손에 넣은 결과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에도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거창하게 떠들었다가 해결된 것이 없으면 인민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 초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장소가 공개되지 않았을 때, 이번에는 당연히 베트남에서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 뿐만 아니라 여기 전문가들은 다들 그렇게 예측했는데, 하노이에서 할지, 아니면 다낭이란 도시에서 할지만 문제였죠. 다낭은 베트남전 때 미군의 휴양지였다는 도시인데, 경치도 좋고 해서 한국인들이 관광하려 제일 많이 가는 것입니다. 이번에 미국은 다낭을 선호했는데 북한이 하노이 개최를 주장해서 미국이 양보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베트남에 한번 가봤습니다. 사실 어려서부터 저는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남쪽에서 예전에는 월남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전 세계적 추세를 따라 베트남이라고 합니다.

제가 자랄 때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사람을 알고 있었는데 자동차 운전병으로 갔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한번은 폭격을 당해 부상을 입어 현지 마을에 반년을 치료하느라 떨어졌는데 그 마을 좌장이 오더니 마을 처녀를 간호하라고 붙여줬고, 그런데 간호만 한 것이 아니라 첫날부터 이불 안에 들어왔다 뭐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실제 북한은 베트남전에 미그 17과 전투기 조종사, 공병부대를 파견했습니다. 많이 보낸 것은 아니고 조종사 한 60명 정도가 갔는데, 주기적으로 교대를 하다보니 전체적으로 800명 정도의 북한 전투기 조종사들이 베트남전에 참전했습니다. 이중에 비행연대 부연대장을 포함한 조종사 11명과 정비사 3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이들의 묘는 현재 원산에 있습니다.

베트남에 간 전투기 조종사들은 실력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미그 17은 속도가 1000키로 조금 넘는 비행기였고, 미국 전투기는 시속이 2,000키로가 넘는 최신 비행기였는데 전투만 붙으면 북한 조종사들이 늘 이겼습니다. 미국 기록을 보면 격추 비율이 4 대 1, 즉 공중전이 붙으면 북한 비행기 1대를 격추할 때 미국 비행기가 4대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1967년 5월 28일 하노이 상공에서 벌어졌던 공중전이 가장 대표적 전투인데 북한 비행기 8대와 미국 비행기 32대가 붙었는데, 북한 비행기는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미국 비행기는 12대가 격추되고 1대가 손상을 입었습니다. 이것이 매우 자랑스러워서 북한은 나중에 5월 28일을 따서 528비행연대를 만들었다고 하는 말이 있던데, 요건 사실 여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1960년대 이야기고, 그때는 미그 17과 당시 미국 전투기 F-105와의 격차는 10년 정도밖에 안됐지만, 지금은 북한과 미국의 전투기 격차는 40년을 넘습니다.

또 당시는 전쟁을 치른 지 얼마 안됐던 시점이라 북한 조종사들은 전쟁과정에 배웠던 노하우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기름도 없어 비행훈련도 못하니 베트남전의 자랑은 딱 거기까지일 겁니다. 요즘은 공중전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 수백 키로 미터 밖에서 미사일로 상대 비행기를 격추하기 때문에 누가 탐지 능력이 뛰어나냐 그 차이가 가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하늘에 조기경보기를 갖다 놓고 북한 하늘을 손금 보듯 보는 미국을 이길 수 없지요.

베트남에 간 공병부대는 북베트남군 사령부 갱도 같은 것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이것 역시 6.25전쟁을 치르며 갖고 있는 기술을 넘겨준 것이라고 봐도 됩니다.

제가 10대 중반 때는 북한에 안남미가 많이 퍼졌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화제가 “항에 안남미 배가 들어왔으니 이번 달 배급은 주겠지”하는 것이었는데, 북에선 알락미, 알락미 했습니다. 저도 여기 와서 알았는데 알락미가 아니라 안남미가 바른 말입니다. 그리고 안남은 베트남 중부 지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안남미는 풀기가 하나도 없어서 도시락을 싸가면 밥이 막 흘러내렸습니다. 그때 ‘이런 쌀을 먹는 사람들도 있구나’하고 신기했고 안남미 먹으면 영양실조 온다고 막 그랬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식으로 밥을 먹는 전 세계 사람들의 90%가 인디카 쌀이라고 불리는 안남미를 먹고 있고, 북한과 같은 풀기가 있는 쌀은 자포니카로 불리는 데 중국과 한반도 일본 정도에서만 먹습니다. 실제 안남미는 영양가가 많이 없습니다. 대신에 이를 활용해서 돼지고기, 기름을 잔뜩 넣고 볶음밥으로 먹거나 육류를 넣은 쌀국수로 먹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의 주식이 이 쌀국수인데, 저는 맛이 있었습니다. 고기국물에 쌀국수 말아 넣은 것이라고 보면 되는 데 베트남에 갔을 때 실컷 먹었습니다.

베트남의 최대 도시는 하노이가 아니라 남부의 호치민입니다. 거기가 남부 베트남의 수도로 과거엔 사이공이라 불렸고, 지금도 베트남에서 가장 잘 살고, 경제수도라 불릴 정도로 기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북부 베트남군이 전쟁 뒤에 이 도시에 자기들의 지도자였던 호치민 이름을 떡 붙여버렸습니다. 북한이 서울을 점령해놓고 김일성시라고 이름을 붙여놓는 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트남 갔다 왔던 이야기도 이제부터 막 말하려 하는데, 벌써 시간이 다 돼서 아무래도 다음 시간에는 베트남에서 들었던 느낌이라든가, 또 거기서 본 개혁개방에 대한 소감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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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F-105로 인해 미그 17들이 격추당했고 F4는 그 둔중한 몸집과 미사일 만능주의에 빠진 미국, 후기에나 탑재된 기총 그리고 베트남 원조 사령부의 허가가 있어야만 교전이 가능해서 거리를 두고 싸우는 미사일의 이점을 살리질 못한게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힙니다. 북한 조종사들의 실력보단 당시 상황들이 겹친거죠. 실제 당시 미국 기록에도 적은 MiG17이 아니라 지대공 미사일이었다고 써있습니다. 미그17은 회전반경이 좁아서 회피기동에 적합했지만 미사일도 없는 구시대 설계에 본래 폭격기 요격용 기체라 전투기들과의 공중전에서는 미그17 입장에선 쓸대없이 연료만 갉아먹는 애프터버너를 넣어 작전 반경도 굉장히 짧은 기체였죠.

Feb 16, 2019 07:0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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