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30년, 베트남을 직접 가보니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9.02.22
vietnam_bike-620.jpg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닷새 앞둔 22일(현지시간) 정상회담 기간 중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베트남 하노이의 JW메리어트 호텔에 설치된 정상회담 안내판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베트남에 도착하자 마자 든 느낌은 우선 오토바이가 너무 많았다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지금도 베트남을 떠올리면 오토바이부터 생각납니다. 거기는 경제력이 아직 자가용차를 갖고 있을 정도가 못되니, 집집마다 오토바이를 운송수단으로 삼습니다. 마치 북에서 집집마다 자전거가 있듯이 말입니다. 이 오토바이들이 거리를 꽉 메우고 다니는데,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교통질서가 잘 지켜지는 서울에서 살다가 거기에 가니 이런 무법천지가 따로 없습니다.

퇴근 시간에는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얽혀서 거리를 꽉 메우는데, 신호등이 없어도 어떻게 자기들끼리 그렇게 사고 안내고 잘 다니는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오토바이에 세 명, 네 명은 흔하고 심지어 한 대에 여섯 명이 탄 경우도 여러 번 봤습니다. 저는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죠. 아이들을 가운데 몰아 태우고 부모들이 앞뒤로 앉아 가는데, 여긴 출퇴근 시간이 가족이 다 같이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택시를 타면 오토바이가 거의 부딪칠 듯 무리로 지나가는데 그러고도 사고가 없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길을 건널 때면 현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오토바이 지나가도 요리조리 피하며 잘 횡단하는데, 저는 그걸 잘 못해서 이 도로 어떻게 건너나 망연자실했습니다. 물론 며칠 있으니 저도 익숙하긴 했습니다.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것이 인구가 너무 젊다는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에 사람들이 많이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전쟁을 겪고 나니 자식이 많아야겠다 싶어서 막 낳았습니다. 우리도 6.25전쟁이 끝난 뒤에 1950~60년대 출산 열풍이 일어서 한 집에서 다섯 명 이상은 기본적으로 낳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베트남도 딱 그랬습니다. 그러다보니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부쩍 늘어서 베트남의 평균 연령이 30살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40살이니 10년 더 젊은 나라죠. 실제 거리에서 보면 젊은 사람들밖에 안 보입니다.

아직 베트남은 세계적으로 볼 때 가난한 나라입니다. 부익부 빈익빈 격차도 크고요. 한국에 비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13분의 1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래도 북한보다 많이 잘 살긴 할 겁니다.

베트남은 북한이 앞으로 체제를 전환하면서 받아들여야 할 발전 모델로 많이 언급되는 나라입니다. 이곳의 특징은 미국과 전쟁했지만 이 과거를 청산해 미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고 시장개혁을 받아들였다는 점이고 또 공산당의 주도로 개혁개방을 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베트남 개혁개방의 특징은 전면적인 제도 개혁보다는 특정 산업, 특정 지역에 시범 적용한 후에 성과와 부작용을 비교해 확대 여부를 결정했습니다. 중국은 철저한 점진주의 개혁개방 모델이고, 소련은 급진적인 개혁개방 모델인데 비해 베트남은 굳이 말하자면 융통성이 있는 점진주의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제를 변환하면 무너질지도 모르는 김정은이 공산당 주도의 개혁개방이라니 귀가 솔깃할 만한 모범 답안이죠. 그래서 베트남처럼 경제특구를 만들어놓고 이걸 통해서 나라를 발전시키고 점차 경제는 시장경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김정은의 속셈입니다. 실제로 작년 판문점 회담 때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베트남처럼 가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제가 북한 인민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베트남처럼 가면 안 됩니다. 김정은의 입장에서야 체제를 유지하면서 조금 조금씩 잘 살게 하면 만세를 받을 줄로 타산하겠지만 인민들의 입장에서야 빨리 잘 살아야지, 어느 세월에 조금 조금씩 바꾸며 가겠습니까?

아마 북한은 3대 세습까지 있어서 베트남보다 더 세월이 없이 개혁 개방 과정이 더딜 것 같습니다. 베트남에 가보면 여긴 1986년부터 개혁개방을 했으니 이제는 벌써 30년이 넘게 개혁개방을 했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인민은 가난합니다.

북한으로 치면 30년 걸쳐서 자전거에서 오토바이 정도로 생활력이 오른 정도고, 먹고 입고 사는 문제에서 겨우 해방된 격이죠. 그런데 30년은 정말 긴 시간입니다. 제가 북한의 지도자라면 10년이면 북한 인민들이 자가용차를 타고 다니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베트남을 보면 김정은 체제가 유지돼서는 북한의 발전은 한계가 있고, 또 답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제가 베트남에 가서 느낀 바로는 북한은 체제만 제대로 세워지면 정말 발전이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북한 사람들은 제가 본 베트남 사람보다 부지런하고 교육 수준도 높습니다.

베트남에선 택시를 타니 휴대전화로 지도를 보여줘도 태연하게 빙빙 돌면서 거짓말을 해대고, 왜 그러냐고 따지니 말을 모르는 척하다가 제대로 간다 해놓고 또 돌아갑니다. 개혁개방 30년을 해도 아직 정신상태가 이러니 이 정도밖에 못 사냐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신뢰 문화가 아직도 정착되지 않았는데, 북한 사람들은 적어도 그러진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 베트남에선 박항서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박항서라는 한국 축구감독이 베트남 축구를 단연 몇 단계로 올려놔서 국민영웅 대접을 받습니다. 더불어서 베트남에서 한국 사람에 대한 인상도 매우 좋아졌습니다. 원래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는 키도 작고, 힘도 없어서 축구를 하면 당연히 진다는 패배주의에 빠져 있었는데, 박항서 감독이 가서 할 수 있다고 외치고 실제로 베트남을 1년 만에 동남아 축구 강국으로 변신시켰습니다.

만년 패배주의에 빠진 베트남도 이렇게 지도자가 바뀌니 강해지는데, 북한도 지도자만 바뀌면 바로 많은 것들이 바뀝니다. 이번에 김정은이 베트남에 가서 내 체제가 뒤집혀 죽기 싫으면, 나의 생각부터 바뀌어 나라를 잘 살게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조금이나마 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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