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단의 ‘장군님 돼지’들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1.02.26
대홍단의 ‘장군님 돼지’들 전국행정책임일꾼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답사행군대가 대홍단 일대를 방문한 모습.
연합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몇 년 전에 대홍단이란 지명이 남쪽에서 유명해졌습니다. 전에는 평양, 함흥 등 대도시 정도만 사람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고, 또 국군포로들이 끌려가 혹사를 당했던 아오지 탄광 정도가 유명했죠.

대홍단이 유명해진 이유는 북에서 방영한 티비에서 어린 유치원 여자아이가 나와대홍단감자란 노래를 불렀던 것이 여기에서 갑가지 인기가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노래 잘 불러서라기보단 이쪽 사람들이 보기엔 과장된 표정이라든지 발성이 아주 웃겼기 때문입니다.

노래 제목에서 보듯이 아무튼 대홍단 하면 감자를 연상케 할 정도로 유명한데, 실제 대홍단 감자는 맛이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감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인데, 하나는 점질감자, 다른 하나는 분질감자입니다. 점질은 수분이 많아서 요리를 하면 잘 흐트러지지 않는데, 한국 감자의 80% 이상은 점질 감자입니다.

반면에 북한은 삶으면 전분이 팍팍 터지는 분질 감자가 태반입니다. 특히 분질감자는 화산 지대에서 잘 자라는데, 남쪽도 제주도에서 이 감자 많이 재배합니다. 백두산 아래 삼지연, 대홍단 이쪽 감자는 베개통만한 것도 있고, 맛도 좋지요.

대홍단은 삼수갑산보다 훨씬 더 들어와야 해서 과거에 이곳엔 유배도 안 보냈던 곳입니다. 북한이 나중에 출신성분 나쁜 사람들 유배하듯 보내서 이곳 사람들의 출신성분은 북한 평균에 비해 크게 나쁩니다. 추방자 자녀들이 인구의 대다수인데 그런 이유로 남쪽에 탈북해 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대홍단에서 살다 온 탈북민에게서 거기서 살던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화가 많이 나더군요.

한 가지 사례만 들겠습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벌어진 일인데, 이때 삼지연 별장을 들락날락하던 김정일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대홍단은 아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칭찬하면서 이곳 사람들이 이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한때 감자는 쌀이라는 황당한 구호가 신문에도 실렸죠.

김정일이 보내준 돌격대가 각 리에 ‘300톤 목장이란 것을 건설했습니다. 대홍단에 리가 12개가 있는데, 각 리마다 돼지고기 300톤씩 생산하라고 해서 300톤 목장이라 했답니다.

김정일은 심지어 외국에서 품종이 좋은 것이라면서 종자돼지들까지 달러를 주고 사서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온 돼지들이 감자와 풀을 먹지 못하는 겁니다. 외국에서 와서 그런지 풀과 감자를 주니 입맛도 안 맞아 단식을 하는 거죠. 오기 전까지 사료 먹다가 풀 먹겠습니까.

그 돼지들은 김정일이 보내주었다고 해서장군님 돼지라고 불렸는데, 장군님 돼지가 죽으면 목 날아가는 사람이 많겠죠. 결국 간부들이 유엔에서 대북 식량 지원하라고 보내준 옥수수를 여기에다 배정했습니다. 그때 유엔을 거쳐 미국 옥수수도 참 많이 왔는데, 그 미국 옥수수를 인민이 아닌 외국 돼지들이 먹고 사는 겁니다.

당시 대홍단 사람들은 1년 내내 감자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실정이었습니다. 감자라도 있으면 다행이고, 집집마다 산에서 풀을 뜯어다가 4인 가구가 가마에 풀을 가득 넣고, 고작 강냉이가루 100그램을 풀어 풀죽을 먹는 가정이 태반이었습니다. 돈이 없어 소금도 못 사서 몸은 영양실조가 왔는데, 얼굴은 퉁퉁 부어서 다녔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 여인들은 일을 못나가고 끼니를 해결하느라 산을 헤매야 했고, 나중엔 백두산 아래의 마을에 뜯어 먹을 풀조차 기근인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여인이 산을 헤매고 오면, 농장원이 일을 안나오고 풀을 뜯으려 다녔다고 또 강제노동단련대로 끌고 가는 겁니다. 이게 나라입니까.

먹을 것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데, 그 먹을 풀을 뜯으러 갔다고 또 강제노동단련대에 끌고 가서 일을 시키니 말입니다. 대홍단 주민들은 이런 지경인데, 간부들에게 더 큰 문제는 굶어 죽어가는 인민이 문제가 아니라 감자와 풀을 먹기를 거부하는 수입돼지들이었습니다.

인민은 굶겨 죽여도 아무 처벌이 없지만, 장군님 돼지 죽이면 자기들이 죽게 되는 겁니다. 돼지가 옥수수를 먹고 피둥피둥 살이 찔 때 그 돼지를 기르는 돼지 관리공들은 먹을 것이 없어 풀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돼지 신세를 얼마나 부러워했겠습니까.

급기야 관리공들은 돼지 사료를 한 줌, 두 줌 훔쳐서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집에 와 죽을 써먹었습니다. 누구나 그런 상황이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많이 훔치면 바로 들켜서 그나마 돼지 관리공도 못하게 되니 티가 나지 않게 조금씩 몰래 훔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안 들키겠습니까. 이런 일이 몇 번 적발되니 돼지사료 창고에서 사료를 내줄 때 물을 타서 준 것입니다. 주머니에 훔쳐가지 말라고요. 그런데 솔직히 배가 고파 뵈는 게 없는데 물을 섞었다고 안 훔치겠습니까. 물을 빼고 앙금을 건져 또 훔쳤죠.

그러니까 간부들이 내놓은 대책이 인분을 퍼 와서 사료와 인분을 섞은 뒤 그걸 양동이에 담아 내준 것입니다. 아무리 배고파도 어떻게 그거야 훔치겠습니까. 사람이 먹자고 돼지를 키우는데, 대홍단에선 사람들이 돼지의 시종이 된 것입니다.

세상에는 노예제를 그린 영화들이 많은데, 노예제 영화에서도 돼지보단 노예가 더 비싸게 다뤄집니다. 북한 사람들은 돼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장군님 돼지는 겨우 살려놨지만, 종자돼지 몇 마리를 살린다고 해서 풀과 감자밖에 없는 곳에서 돼지고기 대량생산이 가능하겠습니까. 결국 북한 어디 가나 그렇듯이 그 돼지목장에선 거의 생산량이 나오지 않고 흐지부지 됐습니다.

정말 김 씨 노예국가에서만 찾을 수 있는 기막힌 이야기입니다. 노예제도는 붕괴되는 것이 역사의 순리인데, 이 순리가 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는지 정말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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