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담화문의 ‘겁먹은 개’는 누구?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0.03.06
kim_yj_talk_b 사진은 지난 2019년 3월 2일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 베트남 방문 당시 호찌민 묘 참배를 수행한 김여정의 모습.
/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까지 신문 기사만 써왔는데, 4개월 전부터 유튜브라는 동영상을 통해 북한을 알리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보도 시간에 방송원을 보듯이 저도 방송원처럼 나와서 북한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4개월 정도 했더니 6만 명 정도가 제 영상을 찾아보는 고정 독자가 됐고 점점 숫자가 늘어납니다. 두세 달 뒤엔 10만 명 정도가 제 고정 시청자가 될 것 같습니다.

신문에 기사를 쓰면 동아일보를 하루에 보는 사람이 200만 명 정도 되니까 그중에서 저를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12년 전부터 이 방송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라디오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북에 제 방송을 듣는 청취자가 얼마나 될지 조사를 해볼 수가 없으니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북에서 탈북해 오신 분들 중에 제 방송을 고향에서 살 때 많이 들었다 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아마 북에서 라디오 듣는 분들도 10만 명은 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에 방송원 노릇까지 시작하다보니, 저는 이젠 신문기사와 라디오, 방송까지 모두 만드는 사람이 됐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도 신문 보는 구독자, 라디오 청취자, 유튜브 시청자 등으로 다양하게 나눠지게 됐습니다. 요즘 세상은 하도 빨리 변하고 있어 저도 신문기자에서 영상을 만드는 사람으로 변신하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21세기엔 다들 빠르게 변하는데, 북한만 케케묵은 세습 왕조를 움켜쥐고 살고 있죠. 그런 북한이지만 가끔은 안 보던 장면을 연출할 때도 있습니다. 3일 밤에 발표한 김여정 명의의 대남 담화문이 그것입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김정은의 여동생이 한국을 비난하는 담화문을 읽으리라 생각 못했습니다. 밑에 사람들 시켜 읽게 하는 게 적당해 보이는 대남 비난 담화문을 하필 김여정이 나서서 발표해야 했을까요?

제가 지난해 12월에 최선희 외무성 부상 비리랑 고발했는데, 이런 담화는 보통 최선희가 읽었는데, 요즘 안보이네요. 최선희가 조사를 받아 나오지 않는 건가요. 하긴 이번 전원회의에서도 김일성고급당학교 비리까지 공개하더군요.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당 간부들이 결부된 비리를 전 세계 면전에서 밝힌다는 것도 색다른 일이었습니다.

제가 북에 있을 때는 영화를 보면 부정인물은 다 ‘부’자가 달린 행정 간부였습니다. 부지배인, 부기사장, 부국장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영화에서 노동당 간부는 부정인물이 없었죠. 그런데 이번에 당 간부들이 부정부패했다고 밝혔습니다. 북에 살아도 잘 모르실 것 같아 제가 북한 소식통을 통해 들은 정보를 살짝 공유하면, 당학교 당비서, 교장 등이 뇌물 먹고 간부사업에 개입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북한에서 고위 간부들은 김일성고급당학교 거치게 됐으니 거기 교장과 당비서는 웬만한 북한 간부들은 다 제자가 됩니다. 물론 교장이나 당비서 자체를 노동당 비서를 겸하고 맡기 때문에 그 자체가 실권자이기도 하죠. 이런 간부들이 돈 먹고 누굴 출세시키고 밀어주고 하다가 들킨 것인데 12월 초에 저에게 전달된 정보에 따르면 그때 벌써 50여명이 출당철직돼 지방에 쫓겨 갔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런 비리도 공개해서 놀랐는데, 이제 와선 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담화’라고 남쪽을 향해 청와대를 맹비난 합니다. 전날 김정은이 동해를 향해 방사포를 쏘면서 훈련한 것을 놓고 청와대가 유감이라고 했다고 담화문 제목을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고 달았습니다.

과거 날선 공식담화문과는 좀 다른 점도 있는데, 마지막 부분 몇 줄만 읽어볼게요. “우리 보기에는 사실 청와대의 행태가 세 살 난 아이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리와 맞서려면 억지를 떠나 좀더 용감하고 정정당당하게 맞설 수는 없을까. 어떻게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짓거리 하나하나가 다 그렇게도 구체적이고 완벽하게 바보스러울까. 참으로 미안한 비유이지만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고 했다. 딱 누구처럼…”

이렇습니다. 마지막에 점점점 하고 끝났는데 담화문이 점점점으로 끝나는 거 첨 봐서 여기서 기자들이 이건 뭐지 하고 당황했습니다. 겁에 질려 요란하게 짖는 개 딱 누구처럼이라 했는데 누굴 염두에 뒀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일까요. 어쩌면 김정은이 겁먹은 개가 아닐까요.

아니, 오죽 급하면 여동생까지 내세워서 이런 저급한 담화를 발표하게 했을까요. 어떤 국가나 정권이던 궁정 내부의 저열한 수준은 감추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특히 김 씨 왕조에선 더더욱 그래 왔습니다. 김 씨 일가는 무오류의 신이고, 그가 이끄는 노동당은 간부조차 부정인물이어선 안되었습니다. 당 간부가 쌍말하는 영화 봤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른바 ‘백두공주’까지 나서 상스러운 막말 공세를 편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북한이 이번에 김일성고급당학교 사건을 빌미로 북한 권력의 핵심인 조직지도부 이만건 부부장을 해임했습니다. 김여정이 조직지도부 1부부장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만건을 날려버리고 그 자리를 꿰찼다면 이제 북한은 명실상부하게 남매 정권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미래는 밝지 않습니다. 자력갱생을 외치지만 비핵화 없이는 굶주림만 앞에 놓여있습니다. 민심 이반에 통치력마저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감기보다 독성이 조금 강할 뿐인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일부러 총살하면서 내부 통제를 하지만, 사람들은 이젠 불만을 가질 때가 됐습니다. 왜 환자가 없다면서 계속 조이냐고 말입니다.

김정은은 이제 불만 여론을 돌릴 탈출구를 찾아야 하고 그게 앞으로 대남 도발이 될 것이라고 보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김여정 담화에서 언급된 겁먹고 짖는 개는 김정은 아니겠습니까. 여긴 코로나 때문에 북한에 관심도 없고 거길 향해 짖을 새도 없습니다. 북한만 짖지 말고 조용히 있어주면 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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