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주겠다는데, 북한은 왜 도발로 받나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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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데이비드 비슬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을 접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데이비드 비슬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에도 한국에서 북한 정책의 화두는 대북 식량 지원 재개입니다. 한국 정부가 9일 식량지원을 하겠다고 밝힌 그날에 북한은 미사일을 쐈고, 북한 대외선전매체 메아리는 12일에 “우리 겨레의 요구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몇 건의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놓고 마치 북남관계의 큰 전진이나 이룩될 것처럼 호들갑을 피우는 것은 민심에 대한 기만이며 동족에 대한 예의와 도리도 없는 행위”라고 비난했습니다.

우리가 식량을 지원하겠다고 하는데도 북한이 저렇게 나오니 여기 여론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무슨 빚을 졌나, 저렇게 주겠다는데도 비난하는데 왜 주냐 그럽니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북한의 식량난을 직접 듣겠다”며 세계식량계획의 데이비드 비슬리 사무총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세계식량계획 즉 WFP가 북한의 식량사정이 심각하다는 보고서를 명분으로 내걸긴 했지만, 실제 북한 식량지원을 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다시 북미 회담, 북남 회담의 불씨를 살려야 하는데, 회담을 해봐야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불만이 큰 북한을 달랠 카드가 필요한 것이죠.

북에선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다시 하자고 요구하지만, 이건 미국이 승인하지 않습니다. 북한에선 남쪽이 왜 미국 눈치를 보느냐 이걸 그냥 하면 되지 하면서 압박을 하고 있는데, 이 문제가 간단치 않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개성공단을 하면 거기서 생산된 물건을 세계에 나가 팔기도 하고, 돈도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이게 다 미국이 승인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가령 개성공단을 하면 북한에 월급을 몇 천 만 달러씩 보내야 하는데, 지금 전 세계 은행망은 미국이 쥐고 있습니다. 미국이 대북제재 위반을 했다고 북에 돈을 보낸 한국은행을 제재하게 되면 이 은행이 망합니다. 은행 하나 망하면 몇 십억, 몇 백억 달러 그냥 날아갑니다. 개성공단 하나 돌려 몇 천만 달러 벌려다가 몇 십억 달러씩 날리며 남쪽이 피해가 너무 크고, 또 그랬다가는 한국의 여론이 정부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결국 개성과 금강산은 지금 상황에선 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 그래서 정부도 고심 끝에 인도적 범주이니 미국의 양해를 얻을 수 있는 식량지원 카드를 꺼낸 겁니다. 그러나 북한이 국제기구엔 지원해달라면서, 한국에는 불만을 터뜨리며 비난을 하고 있죠.

제가 궁금한 것은 실제로 북한의 식량난이 그리 심각한가 하는 겁니다. 쌀이 없어 굶어죽을 형편이면 식량가격부터 뛰어야 정상인데, 요즘 장마당 식량 가격은 안정돼 있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엔 북한이 지금 국제기구에 손을 내미는 것은 비어있는 군량미 창고를 채우려 그러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에 요즘 전쟁은 한 달도 안돼 끝난다면서 군량미 창고를 다 털어먹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북제재로 석탄을 팔지 못하니 그 돈으로 먹고 살던 군부가 어려워졌습니다. 반면에 제재는 언제 끝날지 모르니, 미리 여론이 나빠지기 전에 창고부터 채워 놓아서 장기전을 대비하는 것 같습니다.

대북 식량지원이 들어가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죠. 쌀이 많아지면 쌀값이 떨어져서 굶어 죽을 걱정은 안하겠지만, 대신 배급을 주니까 직장에 나오라고 할 겁니다. 시장을 통해 알아서 잘 먹고 살고 있는데, 쌀 500그램으로 사람의 하루를 통제하려 들 것이니 식량지원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는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겠죠.

문제는 세계식량계획이 아무리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구해도 다른 나라들이 응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냐면, 세계식량계획과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올해 대북 인도적 지원 목표액을 1억 2030만 달러로 설정했습니다. 이 정도 돈이 있어야 긴급한 식량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번 주 현재 모금했거나 약속된 금액은 목표액의 13%인 1570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다른 나라들이 돈을 안 냅니다. 제일 많이 낸 것이 스위스인데 모금액의 절반가량인 780만 달러를 냈고, 러시아 400만 달러, 스웨덴 244만 달러, 캐나다 57만 달러, 프랑스 42만 달러, 독일 36만 달러 이 정도입니다. 부자 나라인 미국이나 일본은 주머니를 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북한의 태도가 결정적입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 동결 대신 미국으로부터 식량지원 약속을 얻어낸 2012년 2·29 합의 이후 대북 인도적 지원액은 1억1800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핵을 없앤다니 주머니들을 열었죠. 그러나 북한이 ‘은하3호’를 쏘아올리고, 3차 핵실험을 강행한 2013년 대북 지원금은 절반 수준인 6280만 달러로 급감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 줄고 있습니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지난 기간 북한에 가장 많은 식량을 준 것은 한국 정부였습니다.

한국 정부는 1995년 쌀 15만 톤을 수해지원으로 준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줬습니다. 햇볕정책 시기인 2002년부터 2008년까진 매년 쌀 40만 톤과 옥수수 10만 톤은 의무적으로 주다시피 했습니다. 여기에 든 돈은 3, 4억 달러입니다. 국제사회 모금이 다 걷혀도 한국이 주던 지원의 3분의 1수준인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하고, 천안함을 공격한 이후로 지원이 중단됐습니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탓도 있지만 북한이 남쪽 사람들을 분노하게 한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됐습니다.

지금도 북한은 쌀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오히려 욕을 퍼붓고 있으니 여기 사람들이 왜 대북식량지원을 찬성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쌀 지원을 밀어붙이겠다고 하는데, 주겠다고 할 때 곱게 받지 왜 자꾸 도발을 합니까. 진짜 식량난이 심각해 인민들이 굶을 지경이라면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 이제부터라도 북한이 정세를 긴장시키는 도발을 자제하길 기대해 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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