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남북의 사투리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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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_dialect-305.jpg 2007년 5월 제주시 한라체육관 광장에서 제주방언 경연대회가 열린 가운데 여고생 2명이 방언으로 제주의 전통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까지 제가 진행하는 방송들을 들으면서 제 말투를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북쪽 억양보다는 서울 억양처럼 들리시죠. 제가 서울 생활을 한지도 이젠 8년이 되다보니 어디 가서 일부러 말하지 않으면 웬만한 사람들은 북에서 온 줄 모릅니다. 좀 예민해야 제가 서울 토박이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챕니다.

오늘은 고향마다 다른 남북의 사투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투리는 크게 보면 8도 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함경도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 이런 식으로 구분되죠. 예전에는 사투리가 지역마다 매우 심했지만 텔레비죤이 등장한 뒤로는 북에선 평양 표준말, 남에선 서울 표준말로 통일시키는 노력들이 있으면서 격차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렇지만 사투리 자체는 없애지 못했습니다. 북에선 함경도 사투리가 제일 두드러지죠. 함경도 사투리도 함남과 함북 쪽이 또 다른데 함남 사투리가 좀 더 심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평양에서 각 지방 출신들이 모이면 함북 사람은 좀 있으면 평양말 비슷하게나마 따라가지만 함남 사람들은 좀처럼 말투를 못 고치더군요. 아마 함흥 쪽 사람들은 자존심이 세서 말투를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 듯싶습니다. 그런 함경도 사투리도 사실 해방 뒤 평양 표준말로 자꾸 교육시키다나니 많이 순화된 것입니다. 해방 전 함경도 사투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이 바로 연변인데요, 함경도 출신 탈북자들도 연변에 가면 그쪽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남한은 사투리가 제일 심한 곳이 제주도인데요, 이곳 사투리는 남한 사람들도 거의 알아 못 듣습니다. 이건 전혀 외국말처럼 들립니다. 이런 식입니다. 제주도에 가보면 “혼저옵서”라는 말이 많아서 처음에 “왜 자꾸 혼자오라고 하지”하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어서 오십시오”를 “혼저옵서”라고 하더군요. 제주도에서는 “뛰어 오세요”하는 말을 “도르멍 도르멍 옵서” 이렇게 말하고, “천천히 보세요”하는 말은 “놀멍 놀멍 봅서”라고 합니다.

이렇게 차이가 심하지만 다행히 제주도 사람들은 텔레비죤의 영향으로 서울말도 잘 알아듣기 때문에 놀러가서 의사가 통하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그 다음에 사투리가 심한 곳이 경상도와 전라도입니다. 경상도 사투리는 예전에 북에서 했던 풍자극에서 많이 나옵니다. “야, 이 문둥아, 밥 묵었노”, “와 그러나”, “만나서 반갑데이” 하는 것이 다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그런데요, 흥미로운 것은 경상도 사투리와 함경도 사투리가 많이 비슷한 가 봅니다. 탈북자의 70% 이상이 함경도 출신들인데 이 사람들이 서울에 갖다 놓으면 죽어라고 서울말 따라가기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부산에 함경도 사람을 갖다 놓으면서 한 1년 있으면 부산 사람인지 탈북자인지 구분 못합니다. 제가 아는 탈북자도 부산에 정착했는데 한 1년 뒤에 만나보니 부산 사투리를 너무나 천연스럽게 잘 구사해서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도 말투가 서울하고는 정말 많이 차이가 납니다. “처음 만나 반갑습니다”하는 말을 전라도 말로 하면 “으메, 만나서 허벌나게 반갑디야”하고 말합니다. 북한 풍자극에서 나오는 “그렇당께요”하는 말도 전라도 말투입니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은 서울에 와서도 말투 고치기 힘들어합니다.

북에서 평양과 가까운 황해도나 평안도가 표준말과 별로 다르지 않듯이 여기도 서울말과 그 인근 경기도나 충청도는 말투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습니다. 함경도 사람이 평양 가서 평양 말을 하려고 하면 이상한 억양이 나오죠. 마찬가지로 함경도 출신 탈북자가 서울에 와서 서울 말투 따라하려 해도 이상한 억양이 됩니다. 그 억양을 듣고 누가 고향을 물어보면 탈북자들 중에는 강원도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러냐 하니 강원도 말투가 북쪽하고 비슷하고 또 속초, 강릉 이쪽에는 6.25전쟁 때 월남해 내려온 함경도 분들이 많이 사시는데 그분들의 말투도 아직까지 남쪽에 적응이 잘 안됐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배운 고향의 사투리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 제가 예전에 이북5도청이라는 실향민조직에서 일했는데 거기 할아버지들은 고향을 떠난 지 반세기가 넘도록 아직도 이북 사투리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억양에서 그대로 드러냅니다. 저는 직업이 기자이고 많은 사람들 대상하고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탈북자 치고는 말투를 빨리 고쳤다는 말을 듣습니다. 어디 가서 말할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같은 고향 사람들을 만나면 1분도 안돼서 다시 북조선 억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과는 달리 방송 같은 것을 진행하면 방송말투는 아직도 반은 남쪽 억양, 반은 북쪽 억양이 나옵니다.

사실 억양을 빨리 고쳤다는 것이 자랑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평양 사람들이 지방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깔보는 사람들도 있듯이, 여기 서울도 북쪽 억양을 말하면 중국에서 돈 벌러 왔냐면서 깔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차별하는 시선이 싫어서 사람들은 서울 말투를 빨리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통일이 돼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북쪽 사람들은 괄시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빨리 서울말투를 배우려고 애를 쓸 겁니다. 그런 일이 없자면 북조선 경제를 어떻게 하나 남쪽만큼 발전시켜야 하는데 참으로 요원한 일입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나 자신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후대들은 사투리 때문에 눈치 볼 일 없는 세상에서 살게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을 겁니다. 그런 날을 힘을 합쳐 빨리 만듭시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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