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소떼 방북 이후 이야기들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1.07.30
cow_cjy_b 사진은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1998년 6월 소떼를 몰고 방북에 앞서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소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한국에 오니 여기 사람들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98년에 소 1001마리를 트럭 500대에 싣고 방북한 사건을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일명 소떼 방북이라고 하죠.

그런데 저는 북에서 그런 내용을 소문으로 접했을 뿐 잘 몰랐습니다. 그때는 북한도 거의 보도하지 않았던 것 같고, 또 고난의 행군 시절이라 전기도 없고, 기차도 잘 다니지 않아 티비나 신문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소문이 좀 퍼지긴 했지만, 부정확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현대그룹은 더 설명이 필요없는 세계적인 대기업입니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정주영 회장은 강원도 통천 사람으로 1945년에 아버지가 소 판돈 70원을 들고 서울로 도망쳤죠. 그가 북에 소를 갖고 간 것은 소를 판 돈을 들고 도망쳤던 과거의 빚을 갚는다는 의미가 있죠.

그가 통천에 다시 가서 가장 안타깝게 찾았던 사람은 1940년대 자기가 짝사랑했던 여인이었습니다. 통천에서도 제일가는 부잣집 딸이었고, 통천에서 유일하게 동아일보를 구독하는 집이었는데, 정 회장이 서울로 간 것도 변호사가 돼서 그녀를 잡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방북해 김정일에게 그녀를 찾아달라고 했지만, 이미 그땐 그 여인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고 합니다. 그때 정 회장은 북한 관계자에게어떻게 죽었나. 앓다 죽었나. 무슨 병이었나. 잘 살았나. 굶지는 않았나하며 1시간을 질문 공세를 폈다고 합니다. 몹시 안타까웠겠죠. 그런데 통천 제일 부자의 딸이면 출신성분이 대단히 나빴으니 그녀도 박해를 받다가 촌에서 죽었겠죠.

아무튼 그래서 정주영 회장이 소를 갖고 갈 때 이걸 ‘병에 걸렸다고 핑계를 대고 받지 말라는 윗선의 지시가 떨어졌는데 당시 중앙수의방역소 서성원 소장이 이를 거부하고 멀쩡한 소를 어떻게 앓는다고 하겠냐하면서 양심을 지키다 끌려가 고문 끝에 실성해 죽었습니다.

김정일은 당시 소가 오니 이걸 어떻게 쓸지 고심했죠. 방목하던 소들이니 농사일에도 못 쓰고, 또 잡아먹으면 여론이 나빠지니 양덕 은하리에 있는 자연 방목하는 목장에 몽땅 보냈다고 합니다. 전쟁예비물자로 지정해 누구도 다치지 말라고 하면서요.

그런데 그 소를 잡아먹고 공개 총살이 될 뻔했다가 살아난 사람이 한국에 왔더군요.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죠. 은하리에서 100리쯤 떨어진 곳에 고원탄광이 있는데 여기서도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사람이 배고프면 눈에 뵈는 게 없죠.

1999 6월 양덕과 고원에 사는 30대 청년 2명이 양덕에 소가 많은데 잡아먹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배고픈 사람들 눈에야 한국소나 북한소나 다 고기로 보일 게 아니겠습니까.

소를 잡자고 제안한 사람은 안전원의 아들이었고 직접 들어가 소를 끌고 나와 개울가에서 죽이고 비닐로 싸서 주변에 파묻은 사람은 탄광 의용군 출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의용군이라고 하면 6.25전쟁 때 북한군으로 참전한 한국 출신을 말하는데, 결국 북한에 속은 거죠. 북한군에서 싸웠으면 전쟁 참가자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한국 출신자란 이유로 탄광에 끌려가 평생 힘들게 살았습니다.

이 두 명이 소를 잡아 삶아 먹으려니 술이 없어서 친구들을 찾아가서 좋은 것이 생겼으니 너는 술을 좀 사오라고 했답니다. 탈북한 분도 친구가 고기를 먹자며 술을 사오라고 하니 자기 솜옷을 팔아 술을 사가지고 가서 염소 고기인 줄 알고 같이 먹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잡혔습니다. 한 달 넘게 고문 받고 4명 모두 처형장에 끌려갔습니다. 한국에 온 분은 국군포로의 아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와보니 삼촌이 한국에서 군 장성까지 했다고 하던데, 포로가 된 아버지는 북한에서 탄광에 끌려가 비참하게 살다가 일찍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북한 안전부는 출신성분이 제일 나쁜 국군포로의 아들을 주모자로 사건을 꾸미려 했는데, 소를 죽이고 사형장에 나선 의용군 출신의 아들이 죽는 순간까지 의리를 지켜저 형님은 진짜 소고기인 줄 모르고 먹었다고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치는 바람에 사형장까지 끌려갔지만 사형이 취소돼 다시 감옥에 돌아왔습니다. 의용군 아들은 그 자리에서 처형됐고, 소를 잡으라고 지시를 한 안전원 아들은 감옥에서 죽였습니다. 안전원 자녀를 공개적으로 죽이면 여론이 안 좋아진다고 감옥에서 설사병에 걸리게 해 조용히 죽였답니다. 물론 안전원과 그의 친척들은 다 제대시켜 추방됐다고 합니다.

정주영 회장이 보낸 소를 잡아먹었으니 살 수가 없었겠죠. 그런데 오죽 배가 고팠으면 잡히면 죽을 것을 알면서 그랬을까요.

현재 한국에 온 분은 당시 사형은 면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한달 넘게 고문을 당했답니다. 이번에는장군님 동복을 왜 술과 바꾸어 먹었냐는 말도 안 되는 죄로 감옥에 보내려 했다는데, 장군님 동복이 뭔지는 다 아시죠. 장마당에서 파는 게 다 그런 것이었는데 이걸 팔았다고 죄랍니다. 출신성분이 나쁜 국군포로 아들을 어떻게 하나 죽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분은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탈북을 했습니다. 남동생이 속도전청년돌격대에 있었는데 형이 달아났다고 감옥에 끌려가서 죽었습니다. 누나는 한국에 간 동생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고문 받다가 죽었습니다. 예쁜 누이동생도 있었는데, 오빠, 언니가 탈북하거나 잡혀 죽으니 자기는 어떻게 하든 살아보겠다고 분계선에서 지뢰를 밟아 하반신이 마비된 영예군인에게 시집을 갔답니다. 공로를 세운 하반신 마비 영예군인과 결혼하면 좋은 일을 했다고 살려둘 것이라 생각했지만 국군포로의 가족은 하반신 마비 영예군인에게조차 무시를 받다가 맞아죽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온 분만 빼고 온 가족이 다 죽었습니다.

정말 치가 떨릴 일입니다. 소 한 마리가 뭐라고 벌써 몇 명이 죽은 겁니까. 사람 목숨이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북한을 보면 치가 떨립니다. 그 죄의 대가를 어떻게 치르게 하면 좋겠습니까.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이예진, 웹팀: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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