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 비밀처형 늘어나나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0.08.07
choichangsoo.jpg 북한 영화 '림꺽정'의 주인공 북한 인민배우 최창수.
사진-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 살 때 어렸을 때 참 재미있게 보았던 임꺽정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월북 작가 홍명희의 원작 소설에 기초해 1987년부터 1989년 사이 5부작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올해 사망한 인민배우 최창수를 포함해 당대의 최고 배우들이 나와서 엄청 인기가 높았습니다. 재미도 있었고, 아직도 김정화가 림꺽정 앞에서 “장부의 늠름한 모습” 이러면서 가야금을 타고 최창수가 쑥스러워하며 “어흠, 어흠” 헛기침을 하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아마 30대 미만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겁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전기가 오지 않아 티비도 거의 볼 수 없었던 데다 아예 영화관과 티비에서 이걸 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의 지시였다고 합니다. 림꺽정은 온갖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내용을 담았는데, 북한이 딱 그 모양으로 가고 있으니 자기도 겁이 난 모양이죠.

림꺽정은 특히 주제가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1절만 봐도 “구천에 사무쳤네 백성들 원한소리/ 피눈물 고이었네 억울한 이 세상/ 산천아 말해다오 부모처자 빼앗기고/ 백성의 등뼈 갉는 이 세상 어이 살리”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 노래는 북한 현실 그 자체입니다. 3절 후렴은 “나서라 의형제여 악한 무리 쓸어내고 가슴에 쌓인 원한 장부답게 풀어보자”고 합니다“고 선동합니다. 김정일은 이런 가사가 북한 주민들의 반항 정신을 고취한다고 생각한 듯해 금지시켰을 것입니다. 정말 유치하죠.

림꺽정과 함께 1990년대 후반 상영 금지된 영화가 ‘안중근 이등박문 쏘다’였는데, 민족의 원쑤를 처단하며 만세를 부르는 안중근 열사의 영웅적 행동을 보고 북한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향해 저렇게 총탄을 퍼붓지 않을까 겁이 났을 겁니다.

2016년인가 북한은 자기들이 만든 예술영화 10여 편에 대해 공식적인 시청금지령을 내렸는데, ‘림꺽정’과 ‘안중근 이등박문 쏘다’가 여기에 정식으로 포함됐습니다. 시청과 유포가 금지된 영화들은 외국의 자유로운 생활을 간접으로 드러냈거나, 왕조 시대의 반란을 다루었거나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들이 숙청됐거나 하는 경우였습니다. 자기들이 그렇게 검열에 검열을 거듭하며 만들어놓고 겁이 나서 영화도 틀지 못하는 꼴이라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렇게 막고 또 막고 하지만 더는 참을 수 없는 인민들은 지금까지 림꺽정처럼 작은 저항으로 독재정권과 싸워 왔습니다. 제가 올해에도 북에서 신뢰할 수 있는 소식통으로부터 전해들은 소식이 있습니다. 지난해 림꺽정의 활동 배경이 됐던 황해남도 연안군의 한 농장에서 영화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발단은 군량미 수탈인데, 각 농장에 할당한 군량미가 제대로 걷히지 않자 북한은 아예 군부대에 군량미를 받아야 할 농장을 정해주고 직접 수확해 가져가게 했습니다. 농사는 농민들이 지었는데, 다 여문 가을에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닥쳐 자기들이 할당받은 논밭을 차지하고 벼를 직접 베어 탈곡까지 해서 실어갔습니다.

림꺽정 영화와 똑같은 상황이죠. 졸지에 논을 빼앗긴 농민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안은 곡창지대지만 무연한 평야에선 몰래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당국이 맘먹고 빼앗으면 내 것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다 빼앗기게 됩니다.

분노한 농민 중 한 개 분조 7명이 외통길에 가 볏가마니를 싣고 가는 군용차 앞에 드러누웠는데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우리를 깔고 가라는 의미죠. 북한에서 이 정도로 정부의 지시에 반대해 뛰쳐나와 몸으로 하는 항거는 반정부 시위나 다름없는 심각한 반항입니다. 그런데 당국은 이들을 당장 체포하지 않았고, 농장 관리위원회 간부들이 나와서 자기들이 잘 해결해 주겠다며 겨우 달래서야 군용차를 보낼 수 있었는데, 이후에도 이들에 대해 한동안 처벌이 없자 사람들이 이상한 일이라고 수군거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짜 이상한 일은 이후에 일어났는데, 3월초까지 반 년 사이에 7명 모두 앓아죽거나 객사하는 등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어디 부검이나 사인을 발표합니까. 거기 사람들은 다 이들이 살해당했다고 의심치 않아 합니다. 아마 연안 쪽에서 온 분들이 있으면 이걸 물어보십시오.

이번에 코로나 방역 기간에도 군법을 적용해 수백 명을 죽였다는 정보를 받았는데, 이들도 모두 공개처형된 것이 아니라 비밀리에 처형됐습니다. 과거 북한의 대표적 처형방식은 공개처형, 즉 사람들을 모아 놓고 총소리를 울려 사회에 공포를 심어주어 순종하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공개처형이 비밀처형으로 바뀌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뀌는 것은 우선 대중을 모아놓고 처형하면, 처형자와 심정적 분노를 공유하는 군중 심리가 폭발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즉 그만큼 북한 체제가 대중의 눈치를 볼 만큼 허약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다음으로 반항의 기미가 보여 죽여야 할 사람이 공개총살로 할 정도를 넘어 도처에 많다는 뜻인데 이 역시 북한 체제가 허약한 증거일 것입니다. 끝으로 공개처형을 하면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하기 쉽지 않은데, 북한 인권에 대한 압박이 강화되는 조건에서 비밀처형은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렇게 북한이 점점 생지옥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저의 마음도 정말 괴롭고 한스럽습니다. 언제까지 김정은 하나 때문에 우리 동포들이 수없이 죽어가야 합니까. ‘인민의 천국’이란 달콤한 말에 유혹돼 따라간 값비싼 대가를 동유럽과 소련은 이미 30년 전에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결산을 지었지만, 북한은 너무 오래, 잔인하게 치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이렇게 북한 상황을 전하기만 할 뿐, 행동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답답하고 분통이 터집니다. 언제까지 이 지옥이 계속 이어져야 할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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