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히 변화되는 추석 풍습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9-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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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북녘을 향해 절하고 있다.
추석을 맞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북녘을 향해 절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추석 연휴를 잘 보내고 계십니까? 남북뿐만 아니라 대다수 아시아 사람들이 지금 추석 연휴엔 가족과 모여 앉아 회포를 나누고 있을 겁니다. 제가 올해 음력설에 베트남에 갔다가 음력설을 크게 쇠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알아보니 거기도 명절이 우리랑 비슷하더군요.

한반도와 일본 중국은 물론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까지 음력설, 추석 연휴를 크게 보냅니다. 이들은 모두 과거 유교권에 포함돼 있던 국가들입니다.

그런데 1년에 모여 앉아 조상에게 제사하고 차례상을 지내고 하는 습관은 유교 이전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차례상 흔적은 이집트에 있습니다. 기원전 2500년 즉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의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공주 무덤에 가면 차례상 벽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설과 추석에 차례상을 차리는 풍속이 언제 시작됐는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3세기경에 가야, 변한, 진한 이런 곳에서 제사를 지낸 흔적이 나옵니다. 그런데 기원 3세기경이라 하면 지금의 이란이 사산조 페르시아라 불리던 국가가 지배하던 때인데, 이들의 국교가 조로아스터교라는 종교였습니다. 빛을 숭상하는 종교였는데, 이들이 춘분이 되면 지금의 우리 차례상과 비슷하게 상과 음식을 놓고 제를 지냈습니다. 이 조로아스터교가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을 지나 중국에 넘어왔고 신라까지 왔습니다. 아마 우리의 차례상 풍속은 모름지기 조로아스터교의 영향과 중국의 영향을 같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유교가 번창하면서 차례상 문화는 아주 확실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저는 북에 있을 때 음력설이나 추석을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이라고 배웠는데, 이렇게 바깥세상에 나와 보고서야 이것이 아시아 유교권 고유의 명절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북한은 왜 이런 교육을 시키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다 같이 쇠는 명절이라고 하면 주체성이 떨어져 보일까봐 그런 것일까요?

그런데 요즘 각국에서 유교 문화가 쇠퇴하고 사라지면서 추석 풍경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한국만 봐도 기독교인들은 차례상을 펴놓고 절을 하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를 경계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절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인 숫자가 한국 인구의 25%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급속하게 퍼지면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과거엔 음력설이나 추석 명절에 장손의 집에 모여서 엄청난 음식을 만들어놓고 제사하는 것이 당연시 됐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이걸 진짜 싫어합니다. 요즘은 선을 볼 때도 여성들이 상대가 장남인지, 제사를 지내는 집인지를 아주 중요하게 봅니다. 제사를 지내는 집 장남이면 결혼하려 하지 않습니다. 맏며느리가 1년에 두 번 정말 며칠씩 고생하면서 수십 종류의 음식 만들고, 설거지하고 이런 것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집들에서 이제는 음력설과 추석 제사상을 최대한 간소하게 차리는 게 뚜렷한 사회적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너희들은 제사상을 더 차리지 말라는 노인들도 많고, 제사상을 차리더라도 제사상 차리는 대가로 며느리에게 수고비로 수천 달러씩 돈을 주는 집도 많아졌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아마 이런 것을 잘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북한은 상다리 부러지게 차릴 재료만 많다면 그깟 음식 만드는 게 뭐가 문제야, 먹을 거만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집이 다수일 겁니다. 그런데 여긴 꼭 추석이나 음력설이 아니더라도 늘 고기나 음식이 넘쳐나니 추석에 다 먹지도 못할 것을 굳이 그렇게 만드느라 고생해야 하냐는 생각이 강합니다.

또 추석날은 모두가 고향에 가니 도로가 꽉 막혀서 좀 멀리 떨어진 고향집에 가려면 하루 종일 도로에서 운전하느라 고생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며느리들은 또 내려가서 음식하고 설거지하고 이런 것을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추석에 가긴 가야하는데 남성이나 여성이나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은 듯 합니다. 점점 추석을 부담으로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고, 이렇게 가다간 한 두 대만 지나면 추석 풍경이 확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석날 고생하며 굳이 고향에 가기보단 차라리 즐거운 여행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추석 연휴 직전에 인천공항에 가면 사람으로 미어터집니다. 3일 추석 연휴에 주말까지 끼우면 나흘이나 닷새의 휴식일이 생기는데, 이 기회에 외국 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우스갯소리로 추석에 조상 잘 만나 진짜 조상덕을 본 사람들은 제사 안하고 인천공항에 가고, 조상 덕을 하나도 못 본 사람들이 집에서 지짐이 부치고 음식상에 절을 하고는 집에 와서 아내랑 싸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뭔 말이냐 하면 조상이 재산을 많이 물려주어 잘 사는 집은 돈이 많아서 해외여행을 다니고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은 국내에 남아 꼼짝없이 제사를 지낸다는 말인데, 물론 일반화하긴 어려운 말입니다. 돈 많다고 다 여행가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어 해외여행 갈 수 없는 사람도 매우 적으니 말입니다.

추석에 방송에서 꽉 막힌 고속도로가 나오는 것을 보면 나는 저런 고생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문뜩 북녘 고향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렇습니다. 17년을 남쪽에서 살다 보니 추석에 고향을 가보고 싶어도 못 가봅니다. 아마 그게 한이 돼서 통일이 되면 죽을 때까지 추석 연휴에 꼬박꼬박 고향에 갈 것 같습니다. 제 제사상 차려줄 자식은 없으니 저의 가문의 추석은 저에게서 끝나겠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제 입장에선 추석이 별 것도 아닌 것 같긴 한데, 저랑 사정이 다른 여러분들만큼은 이번 추석이 가족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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