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판이한 추석풍경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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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mming.jpg 추석을 하루 앞둔 9월 30일 오전 광주 북구 영락공원에서 시민들이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추석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올해는 1일이 추석이어서 남쪽에선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닷새나 휴식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라 이번 추석 풍경은 그 어느 때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남쪽에 와보니 추석 연휴에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고 하던데,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살다보니 그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북한이야 추석이 와도 하루 쉬고, 멀리 갈 형편이 못되니 산소도 주변에 쓰고, 산소에 가도 당일 갔다 오는 게 고작이죠. 그런데 남쪽은 도로도 좋고 차도 집집마다 있으니 추석이면 고향을 찾아 이동합니다. 서울과 경기권에 2,000만 명 이상 사는데 이들이 경상도, 전라도의 고향으로 대이동을 시작합니다. 고향에 가서 부모님 뵙고, 일가친척이 모여 제사를 하면서 모처럼 온 가족 친척이 모이는 때가 추석입니다. 모두들 이동하다보니 추석날에는 기차표 예매하기도 어렵고, 고속도로 나가면 차가 꽉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차로 가려면 평소엔 한나절이면 가지만 추석 때는 아침 일찍 나가야 밤에 도착하기 일쑤입니다.

그랬던 추석 풍경이 올해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상황이라 정부에서도 추석에 될수록 이동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지방에 있는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오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정부의 방역 지침에 협조하는 차원도 있고, 또 오고 가다가 코로나 옮기면 정말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수십 명씩 모여 봐야 또 마스크 쓰고 답답하게 보내야겠죠. 마스크 벗었다가는 수십 명씩 옮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남쪽에선 코로나 환자가 매일 100명~200명 사이에서 새로 발생하는데, 이렇게 온 나라가 우르르 몰려다니면 하루 확진자 1,000명이 넘는 사태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러면 걷잡기 어려워집니다.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벌초도 대행을 시킵니다.

50달러 정도 부쳐주면 그 마을에서 대신 부탁받은 묘지에 가서 풀을 베어주는 것인데, 올해 벌초 대행에 맡긴 숫자가 사상 최대라고 합니다. 하늘에 있는 조상님들도 이런 상황을 어쩔 수 없이 이해해 주겠죠.

추석 때는 전통 시장이 대목을 맞았습니다. 시장에 가서 한 보따리씩 사서 고향에 가고, 또 고향에선 수십 명이 모이니 먹을 것을 잔뜩 사고 그랬는데, 올해는 모이지 않으니 추석 특수도 사라졌습니다. 해마다 시댁에 가서 그 많은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해야 했던 며느리들은 어쩌면 그런 부담이 사라져서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 종일 꽉 막힌 도로에서 운전하느라 고생했던 남편들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문화가 습관이 되면 우리의 전통 추석 풍경도 점점 확 바뀌어 가겠죠.

그런데 북한은 자기들이 코로나가 없다고 하니 억지로 이동을 막을 필요까진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동네 뒷산 산소에 올라가는 정도야 눈감아주지 않을까요.

남쪽은 코로나가 추석 풍경을 바꾸는데, 북한은 김정일이 추석 풍경 많이 바꾸어놓았죠. 김정일이 나무 한 그루 없는 도시 주변 산에 묘지만 가득하다며 무조건 묘를 깎으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 아마 2002년이었을 겁니다. 평양에선 2004년부터 실시됐는데, 봉분을 깎아 15cm 높이 이상으로 만들고 묘비는 세우지 말고 눕혀놓으라는 지시가 떨어졌죠. 그래서 북한에선 묘지를 깎느라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함경북도에서 얼마 전에 온 탈북자를 만나 들으니 함경도 촌에선 이제야 묘지를 깎느라 법석인다고 합니다. 그 지시가 하달된 지 벌써 18년째가 됐는데, 농촌은 땅도 많고 산에 그나마 나무라도 있으니 지켜지지 않다가 김정일이 죽고도 벌써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당의 방침이라며 묘지를 낮추라고 난리를 치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황해도에선 지금 거꾸로 묘지를 다시 높이고 있다고 합니다. 황해도는 벌방 지대라 묘지들이 빤히 보이니 김정일이 봉분을 낮추라 할 때 다 깎았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죽고 10년이 넘고 이제는 단속도 느슨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조상님 묘를 15cm로 만들 수 있냐 하면서 추석이나 한식에 올라가 다시 묘지에 흙을 씌우는 겁니다. 황해도에선 묘지를 원상 복구하는 바람이 부는데, 함경도에선 이제야 묘지 낮추라 난리를 치니 뭐 손바닥만한 땅에서 김정일의 지시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 셈이죠. 하긴 맨날 무슨 방침이라고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내려오니 아래 사람들이 언제 묘지까지 관심 가질 여유가 있을까요.

김정일 살아 있을 땐 또 화장을 장려하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내몰았죠. 대도시에는 화장터들이 만들어져 있긴 합니다. 돈 50만 원과 기름 15리터 내면 화장을 해준다고 하는데, 이것도 북한에선 완전 엉터리죠. 화장터 사람들이 시신을 불태울 때 기름이 드니 시신 10구가 들어오면 3구만 태우고 유골함 10개에 나누어 담아 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리고 남은 기름과 돈은 자기들이 챙기고 화장하지 않은 시신은 몰래 산에 묻어버리는 그런 비리들이 벌어지죠. 그것도 모르고 유족들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유골을 조상 유골인줄 알고 받아선 산이나 강에 가서 뿌리고 제사를 합니다. 한국 같으면 중형을 받을 범죄들이 버젓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보곤 화장을 하라고 강제로 시키고는 자기들은 정작 죽어 미라가 돼 으리으리한 궁전 꾸려놓고 누워있으니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왜 김일성, 김정일은 화장 안합니까. 만민 평등의 사회를 만든다고 하고선 다른 나라 왕족들도 차마 하지 못하는 짓을 부끄럼 없이 하고 있습니다.

오늘 추석과 관련돼 이러저런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 75년의 분단과 올해 확산된 코로나 때문에 남과 북의 추석 풍경은 너무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통일이 되면 어떤 추석 풍경이 생겨날지도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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