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의 대표사례, 타도제국주의동맹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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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8일 북한 청년학생들이 ㅌ.ㄷ(김일성이 처음으로 조직했다는 공산주의조직) 결성 80주년을 맞아 횃불을 들고 평양시내를 행진하며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2006년 10월 18일 북한 청년학생들이 ㅌ.ㄷ(김일성이 처음으로 조직했다는 공산주의조직) 결성 80주년을 맞아 횃불을 들고 평양시내를 행진하며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7일, 토요일은 타도제국주의동맹, ‘ㅌㄷ’ 창건일입니다. 옛날엔 크게 기념했지만, 김정일 김정은까지 3대째 세습이 이뤄지면서 무슨 기념일도 엄청 많아져 ㅌㄷ는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 같더군요. 예전엔 ㅌㄷ가 우리 민족 현대사의 기점이 되는 날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당 창건 70주년이니, 노동당의 뿌리라고 하는 ㅌㄷ도 많이 다루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진실을 알고 보면 정말 화가 나실 겁니다. ㅌㄷ는 사실 북한 선전 당국에 의해 조작된 수많은 역사 중 왜곡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김일성이 1926년 화전의숙을 다닐 때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했다고 가르치죠. 그런데 1926년이면 김일성이 고작 14살, 우리 나이로 쳐도 15살입니다. 15살 소년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죠.

그래서 쭉 살펴봤더니 ㅌㄷ란 것이 북한에서 1968년 출판된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이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그 이전엔 전혀 이름도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북한에서 김일성 우상화는 1946년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때 벌써 김일성 전기가 출판됐습니다. 그리고 1968년까지 무려 22년 동안 김일성을 찬양하는 책이 숱하게 나왔지만 타도제국주의동맹은 언급되지도 않았습니다.

김일성이 진짜로 공산주의 단체를 15살에 설립했다면 대단한 일이고, 그건 잊어버릴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또 자랑하지 못할 일도 아닐텐데 왜 22년이나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딱 보면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보통 이런 경우를 보면 100% 다른 공산주의자가 설립한 것을 김일성이 결성한 것처럼 둔갑시켜 조작한 사례가 나옵니다. 물론 남의 업적을 가로채면 그나마 낫기도 하죠. 아예 없는 사실을 조작한 경우도 많으니 말입니다.

1930년대 전후 타도제국주의동맹 약자로 ㅌㄷ로 불렸던 조직이 있나 중국 공산당 기록들을 뒤져보니, 이런, 있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직은 장춘 서쪽에 있는 회덕현 이통현 일대의 한인 농촌에서 당시 활동을 했던 이종락이 만든 조직입니다. 이종락이 결성한 길흑농민동맹 산하에 바로 ㅌㄷ가 있었습니다. 아하, 그걸 보니 딱 답이 나옵니다.

이종락은 북한 인민들이 다 아는 사람입니다. 변절자의 상징이죠. 1938년 김일성 부대를 찾아와 투항을 권유하다가 김일성이 직접 처형했다고 가르치는데, 누가 처형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빨치산 찾아다니다 처형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종락은 1931년 일제에게 체포돼 투항하기 전까진 아주 이름을 쟁쟁하게 날리던 공산주의자였죠. 특히 그는 김일성을 이끌어준 은인입니다.

김일성이 1926년에 화전의숙을 다니다 중퇴한 것은 아버지 김형직이 죽어 뒷바라지를 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북에선 김형직이 앓아죽었다고 하는데 사실 김형직은 공산주의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반공주의자였다고 합니다. 하긴 김형직이 기독교 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에도 기독교 학교 교사도 지냈으니 공산주의를 싫어한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김형직은 만주에 와서 한의원을 차리고 살았는데, 32살 때 공산주의자들에게 약을 지어주지 않아서 화가 난 공산주의자들이 총으로 쐈는지 때려 죽였는지, 아무튼 죽였답니다.

아버지를 잃고 생계가 막막한 김일성은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주마골이란 대장이 지휘하는 무장부대에 들어갔는데, 이들은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로 자처하면서 좀 잘사는 집을 털고 사람을 죽이던 사실상 마적단이었습니다. 이들 패거리에 대한 원한이 하도 자자하니 민족주의 독립단체인 정의부에서 1928년에 조선혁명군 9중대장인 이종락을 보내서 주마골 일당을 토벌했습니다.

이때 김일성이 이종락에게 사로잡힙니다. 이종락이 딱 보니, 같은 민족주의자였고 공산주의자의 총에 맞아 죽은 김형직의 아들이 공산비적 패거리에서 심부름하고 있으니 불쌍한 거죠. 16살이니 세상 물정 알았겠습니까. 저도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이종락은 김일성을 봉천에 있는 평단이란 중학교에 입학까지 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이 공부를 할 마음이 없어 얼마 안가 퇴학당했는데 아버지의 친구들이 다시 길림육문 중학교에 입학시킨 것이죠. 거기서도 김일성은 반일 시위에 참가했다가 1929년 가을 체포됐고, 1930년 5월 출소합니다.

김일성이 감옥에서 나와 갈 데가 없자 찾아간 사람이 바로 이통현 고유수, 회덕현 오가자를 근거지로 활동하면서 당시에 조선혁명군 길동지구 사령관으로 맹활약하던 이종락이었습니다. 이종락은 김일성을 반갑게 대원으로 받아주었죠.

이처럼 이종락은 당시엔 김일성이 하늘처럼 따르던 혁명 선배이자 은인이고, 형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이종락을 김일성이가 쏴죽이죠. 정치란 것은 아무나 못합니다. 김일성에게 그런 독한 기질이 있으니 나중에 남로당 다 죽이고, 연안파, 소련파 다 죽이고, 그리고 마지막엔 자기와 같이 빨치산과 지하활동 같이 했던 갑산파까지 다 죽여 버렸습니다. 과거를 잘 아는 사람, 반항할 사람을 다 죽여 버리고는 역사를 왜곡해 위대한 인물로 둔갑한 뒤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시키고 죽을 때까지 편히 살았던 것이죠.

김일성은 이종락의 혁명업적도 다 가로챘습니다. 그가 결성한 타도제국주의동맹과 조선혁명군을 자기가 만든 것으로 둔갑시켰는데, 물론 자기 입으로 그랬다고 하진 않았죠. 1968년쯤 되니 아첨꾼들이 온갖 혁명 역사를 다 김일성의 덕이라고 갖다가 붙이기 시작했는데, 김일성은 모르는 척 했죠. 속으론 잘한다 잘한다 했을 겁니다.

조선로동당의 역사는 이처럼 파면 팔수록 악취가 심합니다. 제가 오늘 아주 조금 팠을 뿐이지만, 듣고 보니 어떻습니까. 하나만 기억하십시오. 오늘은 ㅌㄷ 창건일이 아니라 ㅌㄷ 조작일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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