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중 축구경기와 김정은의 백마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9.10.18
kim_white_horse-620.jpg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는 남쪽에서 두 가지의 북한 문제가 화제가 됐습니다. 우선 한국 축구대표팀이 15일 평양에서 축구 경기를 했는데, 이게 한국 사람들을 엄청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15일 진행된 축구경기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경기였습니다. 한국의 피파 랭킹은 37위이고, 북한은 113위니까 당초 누구나 한국이 우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자기들이 질 것 같으니까 세계적으로 큰 망신을 당할 수준의 안하무인의 망종짓을 마구 저질렀습니다.

한국 대표팀이 북에 간 날은 14일 오후였는데, 이때부터 대표팀과의 통신이 뚝 끊겼습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지금이 21세기인데, 한 나라의 대표팀이 어느 나라에 갔는데 하루 종일 소식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북한은 지구에 있지 않는 외계 행성입니까?

17일에 대표팀이 돌아온 다음에야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북한은 한국 대표팀을 3시간이나 공항에 감금하다시피 했습니다. 선수단 식사용으로 갖고 간 고기와 해산물이 있는 식재료도 다 뺏고, 고려호텔에 데려가 경비병을 딱 세우고 감금 수준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다음날 경기하려 간 김일성경기장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관중 경기였죠. 그리고 기자단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경기 생중계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세상에 월드컵 예선전 축구 경기를 사람 하나 없는 외진 경기장에서 치르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월드컵 예선전을 중계도 못하게 막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전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북한은 무대뽀 안하무인의 민낯을 전 세계에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경기도 육박전 하는 것처럼 치르고, 경기장 옆에는 북한 축구 관계자들이 몰려들어 시종일관 욕설을 퍼부어 댔습니다.

김일성경기장은 인공잔디인데, 월드컵 경기를 인공잔디에서 치르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래서 남쪽 선수들은 인공잔디에 전혀 익숙하지 않습니다. 생소한 인공잔디에서 뛰지, 옆에서 욕설부대가 맹활약을 하지, 경기에 들어가선 북한 선수들이 축구인지 격투인지 모를 정도로 그냥 무릎으로 까고, 주먹질해대고 하니 한국 선수들은 우세한 기술을 가지고도 0대 0으로 비겼습니다. 한국팀 주장을 맡은 손흥민 선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몸값만 해도 1억 달러로 매겨지는 선수인데, 다녀와서 “부상 안 입고 온 것만 해도 성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북한은 한국 선수단이 돌아갈 때에 경기 장면을 찍은 녹화영상이라고 주었는데, 남쪽에 와서 열어보니 이건 TV에서 도무지 방영할 수 없는 조악한 화질인 겁니다. 그래서 평양에서 치른 남북 국가대표팀 사이의 29년 만의 역사적 축구 경기는 북쪽 사람들도, 남쪽 사람들도 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북한 주민들은 평양에서 남북 축구대표팀 간의 경기가 29년 만에 벌어지는 지도 모릅니다.

이런 저질스러운 행위를 전 세계 면전에서 저지르는 것이 바로 북한입니다. 그러고도 부끄러움도 모릅니다. 하긴 사람도 인격이란 것이 있어야 부끄러움도 아는 법인데, 북한이 잃을 국격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합니다. 이러니 북한 사람들이 해외에 나오면 개무시를 당하는 겁니다.

이렇게 평양에서 전 세계가 혀를 차는 창피한 장면이 벌어지는 동안 이를 지시했을 김정은은 어디에 가 있었을까요? 바로 16일 아침 북한 언론이 대서특필한대로 백두산에서 백마를 타며 놀고 있었습니다.

자기 혼자 간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니 16명이나 데려가 말을 태워 사진을 찍었더군요. 김정은이나 김여정은 어려서부터 말을 탔으니 익숙하다 해도 다른 간부들은 정말 진땀을 흘렸을 것 같습니다. 저도 말을 몇 번 타봤지만, 이거 잘못하면 떨어져 부상을 입기 쉽습니다. 그러니 말을 타는 것은 연습을 좀 해야 하는 일인데, 늙은 간부들이 언제 말을 타봤겠습니까. 김정은을 위한 연출 사진 하나를 위해 말들을 16마리나 싣고 가서 간부들이 부상 위험을 무릅쓰고 사진 촬영에 동원된 것입니다.

김정은이 백마를 탄 사진은 북에선 선전용이었겠지만, 남쪽에선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제일 많은 조롱이 뭐냐면 “백마가 뭔 죄냐”는 겁니다. 김정은의 몸무게가 130~140㎏로 추정되는데, 이건 두 사람의 무게에 해당됩니다. 이 무게를 싣고 백두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했으니 백마가 정말 안쓰럽다는 의미죠. 그 외에도 심한 비난이 많았는데 말이 돼지를 태우고 달리는 진귀한 장면이라는 정도는 양호한 편에 속합니다.

김정은은 말을 타는 연출 사진을 찍은 뒤 삼지연 건설 현장을 찾아선 “나라 형편이 적대세력의 집요한 제재 압살 책동으로 어렵다”며 “미국 등 반공화국 적대세력이 강요해온 고통은 이제 고통이 아니라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힘으로 우리의 앞길을 헤치고 계속 잘 살아나가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결국 또 나온 말이 자력갱생입니다. 70년 넘게 여러분들이 지겹게 들어온 그 말입니다. 자력갱생의 결과가 뭔지는 제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실 겁니다.

아니 그러기에 전 세계의 비난을 받으며 왜 핵무기는 기어코 만들어서 제재를 자초합니까? 핵무기를 멋대로 만들면 전 세계 각국이 가입한 유엔에서 제재 조치를 내린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입니다. 핵무기 만들 때 제재를 한다고 하니 제재 해볼 테면 하라며 기세 좋게 만들더니 정작 제재를 하니 고통이니 분노니 운운하죠. 만들 때 다 각오한 것 아니었습니까?

그러니까 그 고통을 풀려면 핵무기 내려놓으라는 것인데, 자기는 절대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니 그 고통과 분노의 근본 원인은 따져 놓고 보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김정은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또 희망 없는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돼 저는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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