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공간에서 벌어진 사이버 시민혁명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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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다중접속임무수행게임(MMORPG) '리니지2M'이 27일 출시됐다.
모바일 다중접속임무수행게임(MMORPG) '리니지2M'이 27일 출시됐다.
사진-연합뉴스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게임 이야기 하려 합니다. 한국에는 올해에만 게임 몇 개 팔아서 20억 달러 넘게 번 회사가 있습니다. 이번에 이 회사가 리니지2m이라는 게임을 출시했는데, 하루에 무려 1000만 달러 넘게 팔렸습니다. 이 게임은 인터넷에서 서로 역할을 분담해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인터넷이 없는 북에선 아마 할 수가 없을 겁니다.

리니지 게임에서 유명한 사건은 ‘바츠해방전쟁’이라는 전쟁입니다. 오늘 굳이 게임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이버상의 가상의 게임 공간에서 혁명도 일어나고, 폭군과 이에 맞서는 백성들의 싸움도 일어난다는 사실이 재미도 있고 주는 교훈도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 공간에는 여러 나라들과 비교할 수 있는 서버라는 공간이 있고, 사람들이 어떤 서버를 선택해 들어가면 거기서부터 게임 등급을 높여나가게 됩니다. 최고 등급은 70등쯤 됩니다. 이렇게 등급이 높아야 무기도 좋은 무기를 사고 방어력도 높아집니다. 이걸 높이려면 동물이나 괴물을 죽여야 하는데, 그걸 죽이려면 사냥터라는 곳에 들어가야 합니다. 등급을 높이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수백 명씩 팀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츠라는 공간 즉 바츠라는 가상의 나라다 이렇게 보시면 되는데, 그 공간에서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바츠라는 공간을 지배하는 가장 큰 무리는 드래곤나이츠, 일명 디케이라는 혈맹입니다. 이 혈맹은 수백 명이 가입돼 있는데, 수백 명은 또 몇 십 명씩 자신들의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중대 안에 소대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소대장, 중대장 이렇게 다 있습니다. 이 디케이가 워낙 전투력이 세서 리니지라는 게임에선 최강이었습니다. 디케이는 바츠의 여러 성을 점거하고 다스리게 되는데 몇 년 동안 장기집권하게 됩니다.

물론 이건 다 가상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실제 현실 세상에선 한 명 한 명의 게임하는 사람들이 다 있는데, 같은 혈맹끼리 날짜를 정해 어느 도시에서 모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대전에서 모이자 하면 전국 각지에서 사는 부대원들이 모여 술도 마시고 우애를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터넷 안에서 만나도 누군지 아니까 더 반가운 게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디케이라는 동맹이 힘이 커지니까 자기 영지에서 사는 다른 게임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높이 매깁니다. 사냥터에 들어올 때도 아무나 못 오게 하고, 길목을 지키고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2004년 디케이 혈맹은 모든 영지의 세율을 10%에서 1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혈맹이 아닌 다른 게임하는 사람들은 돈을 더 내야 합니다. 결국 그들은 반발을 하다가 온라인에서 반기를 듭니다. 디케이에 맞서 ‘붉은혁명’이란 혈맹이 처음 반기를 드는데, 이에 여러 혈맹이 힘을 합칩니다. 폭군 혈맹과 여러 힘없는 혈맹의 싸움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런데 디케이라는 혈맹이 장기집권하며 많은 세금을 모아 그걸로 또 등급을 높였기 때문에 다른 혈맹은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다른 서버에서 게임하던 사람들의 정의감이 발동합니다.

누군가 바츠 해방전쟁에 참전하자며 피 끓게 만드는 독립선언문 비슷한 것을 올렸습니다. 쉽게 말하면 스페인에 내전이 일어났을 때 세계 각국에서 지원 전사들이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츠라는 공간에 가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키웠던 등급을 포기하고 등급 1에서 시작합니다. 갑옷과 무기는 벗어던지고 내복만 입은 상태라는 의미에서 내복단이라고 합니다. 독재자의 부대 디케이 전사들은 등급이 50~60 정도 되니까 전투가 붙으면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집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무려 20만 명의 다른 공간에 있던 게임 사용자들이 바츠라는 서버에 몰려갑니다. 다른 공간에서 등급이 50~60 정도 되던 매우 등급 높은 사람도 기꺼이 바츠에서 1등급으로 시작합니다. 장군이 다른 나라 해방전쟁에 전사로 참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죽으면 또 나서고 죽으면 또 나서고.

아무리 강한 디케이라고 해도 몇 백의 전사들인데, 이렇게 20만 명이 인해전술로 달라붙으니 밀리기 시작합니다. 수개월의 전쟁 끝에 디케이는 모든 성을 빼앗기고 어둠의 성으로 도망가 고립됩니다. 그런데 시민군이 승리하자 내분이 발생합니다. 공을 서로 나눠먹겠다고 싸우다가 결국 자기들끼리 싸움이 붙은 겁니다. 이렇게 싸움이 벌어지자 어둠의 공간에서 숨을 죽여 살던 디케이가 다시 반격을 시작했고 분열된 시민군은 도망갑니다.

디케이 사령관은 시민혁명에 가담한 사람을 모두 척살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시민혁명 가담자들은 하루에 수백 명씩 눈에 띄는 대로 죽어갔습니다. 그 와중에도 죽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하는 유격부대도 있었습니다만 분열되니까 이길 수 없습니다. 독재자가 다시 권력을 잡았습니다. 물론 이건 다 인터넷 안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현실 세상 얘기를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바츠해방전쟁은 인터넷 공간에서 폭군에 대응해 일어난 최초의 시민혁명이라는 점에서 큰 이목을 끌었습니다.

요즘 게임이 이렇게 실감이 납니다. 인터넷 켜놓고 게임을 하면 내가 진짜로 그 가상의 세상에 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리니지라는 게임이 북한에 들어간다면 북한 사람들이야 말로 가장 용감한 시민군이 됐을 것이라 봅니다. 김정은의 독재에 기를 못 펴고 사는데, 인터넷 공간에선 시민 혁명도 하고, 장렬히 전사도 하고, 연좌제 같은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대리만족하는 겁니다. 당연히 김정은 체제는 그게 무서워 이런 게임 허용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인터넷 세상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을 보면서, 이것이 북한에서 현실로 일어났으면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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