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항행 모험가와 북한 어민들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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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일본 홋카이도의 무인도 주변에서 발견됐던 북한 목선(木船)에 걸린 금속판. '북한인민군 제854군부대'라고 적혀 있다.
지난달 일본 홋카이도의 무인도 주변에서 발견됐던 북한 목선(木船)에 걸린 금속판. '북한인민군 제854군부대'라고 적혀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어렸을 때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책을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공상과학소설의 선구자인 쥘 베른이 145년 전인 1872년에 쓴 이 책은 필리어스 포그라는 영국 신사가 80일 동안 세계를 한바퀴 도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신사는 친구들과 80일 동안 전 세계를 돌 수 있다며 전 재산을 걸고 내기를 하죠. 그는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육지로 인도를 가로지른 뒤 배로 홍콩, 일본을 거치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횡단한 뒤 뉴욕에서 배를 타고 영국에 돌아옵니다.

80일에서 1초도 안 남긴 시점에 극적으로 도착하는 걸로 끝나는데, 아무튼 소설이 긴박하고 재미있어 지금도 수없이 팔리고 영화도 여러 개 나왔습니다.

이 소설이 나올 당시만 해도 세계를 80일 동안 일주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고 그러니까 공상과학소설가가 이런 책을 쓴 게 아니겠습니까. 한편으로 당시 19세기 후반은 전기를 발견하고, 증기기관차가 달리고, 증기선으로 대양을 가로지르기 시작하는 등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진보할 때였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인류는 지구를 80일 동안 돌 수 있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죠.

그로부터 이후 100년 동안 인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지구 둘레가 4만㎞ 좀 넘는데, 지금은 사람이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돌면 10시간 정도 걸립니다.

참고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는 바로 미국 정찰기 에스아르-71입니다. 40대인 저만 해도 어렸을 때 노동신문에 “미제놈들이 에스아르-71을 우리 상공으로 비행시켰다”는 기사가 며칠에 한번씩 나왔습니다.

이 정찰기는 음파보다 무려 3.32배 빠른 속도로 나는데 시속으로 치면 1시간에 4000㎞ 넘게 갑니다. 이렇게 빠르면 미사일로도 요격 못합니다.

정찰기로는 10시간이면 지구를 돌지만 여객기는 그렇게 빨리 가봐야 비효율적이라 음파속도에 못 미치는 속도로 운항합니다. 여객기로 지구를 한 바퀴 돌면 하루 정도 걸릴 겁니다.

배를 타고 지구를 돌면 얼마나 걸릴지는 잘 모르겠는데, 며칠 전에 프랑스의 프랑수아 가바르라는 34살짜리 남성이 42일 16시간 40분 35초 만에 단독 요트 세계일주를 마쳤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요트라고 하면 발동기가 없는 그냥 돛배를 떠올리면 됩니다. 이 배를 타고 프랑스를 떠나 지구를 한바퀴 돈 뒤 42일 만에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항해 경로를 보니 남미 대륙 남단을 지나 호주와 남극 사이를 항해한 뒤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프랑스로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전체 항해 거리는 4만 2500㎞인데, 얼추 지구 둘레 길이와 비슷하네요. 이 남성은 단독 요트 분야에서 세계 일주 신기록과 함께 7일 15시간 만에 무동력 배를 타고 태평양을 최단시간에 항해하는 기록을 세웠고, 또 24시간 동안 돛으로만 1576㎞나 가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항해 전 기간 돛으로만 평균 시속 50㎞ 이상으로 항해했고 태평양에선 시속이 65㎞를 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돛 단 배로 북한에서 자동차가 가는 속도보다 더 빨리 갈 수 있을지 저는 그냥 감탄만 할 뿐입니다.

이 남성은 무동력 요트를 타고 80일 안에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에게 수여되는 ‘쥘베른상’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뗏목을 타고 80일 안에 지구를 한 바퀴 항해해 이 상을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쥘베른 상이란 것이 재미있습니다. 이 상은 누가 기록을 세웠는지는 크게 따지지 않고 바다에서 무동력으로 80일 안에 세계를 돌기만 하면 상을 줍니다. 왜냐면 항해 기록 수립에는 날씨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새 기록을 세운 사람은 어쩌면 자기 노력보다는 하늘의 선물을 받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프랑스 남성이 신기록을 세운 것도 항해 내내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가 항해할 때 요트의 위치와 이동 구간은 위치추적 장치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이 프랑스 남성이 탄 배가 그냥 요트는 아닙니다. 발동기만 없다 뿐이지 최신 과학기술이 총 집약된 최신 요트이고, 태풍을 만나도 가라앉지 않게 설계됐습니다. 설사 고장 나서 표류해도 위치가 추적이 되기 때문에 구조대가 직승기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태평양에 무모하게 자기 목숨을 내건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늘날 지구에서 제일 위험한 항해를 하는 사람은 이런 모험가가 아니라 바로 북한 어로공들입니다. 올해에만 벌써 80척 이상의 난파 목선이 일본으로 밀려와 발견됐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북한 배들이 쓰는 발동기가 50년 전에도 썼을지 말지 하는 낡은 기술이 적용된 중국산 발동기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그런 발동기를 쓰는 나라는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발동기로 먼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 어로공들과 같은 용기라면 세계 기록을 벌써 몇 번이고 갱신하고도 남았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과연 목숨 걸고 싶어서 겁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위에서 강제로 장군님 지시라며 과제를 내리먹이니까 어쩔 수 없이 나가기 싫어도 나가는 것입니다.

일제 시기 어부들을 칠성판을 지고 살았다고 하는데 100년도 더 지난 지금도 북한 어민들은 칠성판을 지고 살고 있습니다. 남들은 발동기 없이 대서양 태평양을 가로지르면서도 목숨을 내걸지 않는데, 북한 어민들은 고작 물고기 몇 마리에 목숨을 내겁니다.

사람의 목숨 값이 이렇게 차이가 나서야 되겠습니까.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갓집 개보다 못하다고 하는데, 김정은 치하에서 사는 북한 어민들은 개는 고사하고 생선 몇 마리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빨리 망하고 북한 사람들도 좀 제대로 생명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사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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